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임시의정원은 1919년 4월 11일 공화국의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10개조로 된 임시헌장을 제정했다. 제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한다'고 밝히고 제3조에서는 '인민은 남녀·귀천·빈부의 계급이 없는 일체 평등함'을 선언했다. 임시헌장 이후 임시정부 헌법은 1944년까지 여러 차례의 개정을 거쳐 근대적인 헌법의 형식을 갖춰나갔다. 그리고 1948년 제헌 헌법의 근간이 됐다.
제헌의회의 다수 의원은 의원내각제를, 이승만은 대통령제를 고집했다. 의원 다수가 주장한 의원내각제와 이승만이 집착한 대통령제의 타협의 결과가 대통령 간선제였다. 이후 이승만은 재선을 위해 전쟁의 난리 속에서 대통령 직선제를 강압적으로 관철시켰고, 1954년의 사사오입 불법 개헌에서는 국무총리제를 폐지함으로써 의회중심제적 요소를 제거하고자 했다.
이후 4·19혁명 후 제2공화국 헌법은 내각제를 도입했으나 내각제 정부는 박정희 군사 쿠데타로 무너졌다. 박정희 정권에게 의회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였고 박정희는 제헌의회 때부터 존재했던 의회 중심과 대통령 중심의 갈등에서 확실하게 대통령으로 권력의 축을 이동시킨 장본인이다.
의회 중심의 정치를 비효율과 분열의 소모적 정치의 표상으로 격하시킨 반정치주의의 장본인이 박정희인 셈이다. 한국에서 대통령제는 이승만 독재를 유지하기 위한 제도적 도구에 불과했고 박정희 집권 이후 이는 더욱 강화됐다.
박정희 정권은 공화당이라는 유례없이 기율이 강한 정당을 조직했고, 정부는 청와대와 집권당의 양 축에 의해 운용됨으로써 당청 관계는 비교적 수평적으로 유지됐다. 이러한 균형은 1969년 3선 개헌으로 깨졌다. 한국 대통령제에서 3선 개헌은 청와대 중심 정치의 기원인 동시에 집권당에 대한 청와대 우위를 결과한 결정적 계기였다.
청와대 중심의 권위주의적 통치는 제1공화국 때 기틀을 닦고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을 거치면서 확대·강화되었다. 이후 청와대로 상징되는 비서실 권력은 민주화 이후에도 점점 강화되었다. 김대중 정부 때는 청와대 정원이 4백 명을 넘었고, 노무현 정부 때는 5백 명을 넘었다. 지금의 청와대는 비서실과 국가안보실, 경호처 등을 합치면 거의 1천 명에 달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 때 김기춘 실장이 '왕 실장'으로 사실상 국정을 장악한 경우를 굳이 예로 들지 않아도 한국의 청와대는 너무 비대한 최고의 권부가 되었다. 국회 운영위원회가 열릴 때마다 청와대 민정수석의 국회 출석 문제는 여야의 최대 정치적 쟁점으로 떠오르곤 한다. 민정수석은 박정희 정부가 3선 개헌을 달성하고자 만든 대표적 권력기관이라는 사실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최근 자유한국당이 장관 임명에 항의하는 의원총회를 청와대 앞으로 달려가서 개최하는 희화적 장면도 연출되고 있다. 청와대 대 야당의 대치는 민주적 대의제에서 정상적이지 않다.
지금의 청와대의 장관급 비서실장과 차관급 수석비서관이 사실상 내각과 집권당 위에 군림하는 권력운용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실상 청와대에 장차관급의 내각이 존재하는 형국이다. 박근혜 정권 때 가장 많이 나온 지적 중 하나가 국정운영 방식의 변화였다. 이는 당청관계에서의 청와대의 압도적 우위와 내각이 국무총리보다 청와대 수석들의 눈치를 살피는 왜곡된 정치구조의 비판이 핵심이었다.
정권을 막론하고 거의 체질화되고 고착화된 청와대 우위의 구조는 과감히 개혁할 필요가 있다. 민주화 이후 정부를 지칭하는 말은 6공화국,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 등 다양하다.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는 그 정부의 성격과 지향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정부의 별칭보다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등으로 불리는 것에 더 익숙하다.
대통령제가 갖는 특징이라는 측면 이외에 책임과 권한이 지나치게 대통령에게 집중되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집권당의 이름을 딴 정부로 불리는 게 민주적 의회제에 더욱 부합하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지난 대선에서 국무회의 중심의 정부운영과 책임 있는 정당정부 실현은 문재인 후보의 공약이었다. 즉 문재인 정부가 아닌 '더불어민주당 정부'로서 여당이 청와대 여의도 출장소가 아닌 명실상부한 집권당(ruling party)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게 하겠다는 약속이었다. 이는 내각과 여당을 집권세력의 축으로 하는 책임정치의 제시였고 1987년 개헌의 핵심 어젠다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의 몰락은 청와대 중심의 폐쇄적 만기친람 정치에서 오지 않았던가.
내각과 당이 제 역할과 목소리를 찾아야 한다. 사법개혁은 물론 외교·국방·안보, 입법과 사법 정책을 청와대가 주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민주주의의 제1요체인 책임정치의 측면에서 봐도 선출직 권력이 아닌 비서실 권력이 대통령의 통치권을 대신하는 것처럼 비쳐진다면 이는 아무리 목적이 선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아닌 민주당 정부의 정권 명칭이 민주적 정부 운영에 부합하지 않을까. 물론 선거를 전후한 정당의 이합집산과 당명 변경이 없다는 전제가 있어야 되는 일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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