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그린스펀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은 미국의‘10년 호황’을 지휘해온 ‘세계 경제대통령’으로 존경받아 왔다. 그러나 권좌에 너무 오래 있으면 오욕을 피할 수 없는 것인가. 마침내 공화당과 조지 W.부시 행정부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퍼부어온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가 다음주 상원 금융위원회에서 증언을 앞두고 있는 그린스펀에게까지 신랄한 독설을 날렸다.
크루그먼 교수는 7일(현지시간) 뉴욕 타임스(NYT)의 고정 칼럼을 통해 "그린스펀은 공개적으로는 뭐라 하든 많은 이들이 그를 당파적 추종자(Partisan Hack)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면서 “그런 이들 중에는 공화당 사람들도 있으며, 그들은 그린스펀이 부시가 제안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지지할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엄격한 교장'이 '관대한 삼촌'이 됐다**
크루그먼은 이날‘그린스펀은 거장이 아니라 통속적 예술가인가’(Is the Maestro a Hack)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다음주 상원에서 그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이러한 생각이 사실인지 아닌지 결정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크루그먼의 비판은 주로 부시의 감세 정책과 적자 재정이 그린스펀의 평소 소신과 정반대임에도 그린스펀이 이를 지지하고 있다는 대목에 모아졌다.
크루그먼은 “그린스펀이 무책임한 부시의 정책을 합리화할 길을 찾거나 사실상 아무 의미도 없는 델피 신전의 신탁 같은 발언 뒤에 숨는다면, 역사는 그를 남한테는 어려운 선택을 촉구하면서 자기 자신은 어려운 선택을 거부한 사람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몰아붙였다. 그는 “이번이 앨런 그린스펀이 자신의 명예를 보존하고 나라를 파산에서 구하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크루그먼에 따르면, 그린스펀 의장은 빌 클린턴 정권시절 건전재정의 주창자로서 정치인들에게 재정적자 해소와 부채상환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역설했었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집권한 후에는 ‘딴 사람’이 되었거나 ‘본색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우선 그린스펀은 "미국의 재정흑자가 너무 많고 부채상환을 너무 일찍 하지 않아도 되니 세금을 줄이자"고 의회에 촉구함으로써 부시의 감세안에 결정적 지지를 보냈다. 그린스펀은 그후 재정이 적자로 돌아섰음에도 감세안을 영구적으로 하는 부시의 계획을 지지했다. 크루그먼의 표현을 빌면,‘엄격한 교장’이 ‘관대한 삼촌’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미국 재정은 '재앙적 수준'에 도달**
크루그먼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재정은 '재앙적 수준'에 도달했다. 부시 행정부는 집권 첫해에 감세정책을 표방하면서 2004회계연도 재정흑자 규모를 2천6백20억달러로 예상했다. 이것이 다음해 예산안에서는 2004회계연도에 1백40억달러의 적자가 생길 것이라고 바뀌더니, 올해 예산안에서는 2004회계연도의 재정적자폭이 사상최대 규모인 3천70억달러로 부풀려졌다.
이에 대해 부시 대통령은 “경기침체와 전쟁 때문에 적자가 불가피하게 됐다”고 변명했다.
크루그먼은 그러나“경기침체와 전쟁 때문에 매년 5천7백억 달러의 손실이 생긴다는 게 말이 되냐”면서 “부시는 이미 1년전부터 경기침체와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꼬집었다.
부시는 2005년 경에 재정이 흑자로 돌아설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이제는 이라크 전쟁 비용을 제외하더라도 '영구 적자'가 될 것으로 바뀌었다는 게 크루그먼의 지적이다.
중앙은행 총재는 정치논리가 아닌 경제논리에 충실할 때 '경제대통령'이라 불리는 법이다. 그린스펀에 대한 크루그먼의 비판은 그린스펀이 경제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원칙'을 상실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의 표출이라 하겠다. 그린스펀의 다음주 상원 금융위원회에서의 대응이 주목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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