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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금자리주택, 4대강보다 졸속…현장조사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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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금자리주택, 4대강보다 졸속…현장조사 전무"

[현장] 서울 내곡 보금자리주택지구 주민공청회

"국가가 우리의 재산권을 제한했지만 우리는 이곳이 보금자리라고 느끼면서 살아왔습니다. 우리의 보금자리를 파헤쳐 놓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든다고요? 국가는 항상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라고 하지만 사실은 없는 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그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닙니다. 저희들의 요구는 '사람'이 다시 도시계획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이번 분위기에서는 더는 못할 것 같습니다. 저도 나름대로 이 분야에 오래 몸담고 있었던 몸으로서 그런 식으로 말씀을 하시면 앞으로 어떻게 계획을 진행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 짓지 마!"


결국 고성이 터져 나왔다. 지난 1월 29일 열린 서울 내곡 보금자리주택지구의 환경영향평가 초안 관련 주민공청회는 주민들의 성토장이 되었다. 환경영향평가 결과만을 가지고 논의하기 위해 모인 자리라는 사회자의 만류도 주민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기엔 역부족이었다. 주민들은 보금자리 사업과 관련해 시행사의 말을 듣는 '공청회'가 아닌 주민들의 말을 듣고 가는 공청회를 요구했다.

주민들의 요구가 단순 억지는 아니다.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해제해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항상 민감한 계획이었다. 서울에 얼마 남지 않은 녹지지구를 개발하는 데 따른 환경 문제가 있었고, 수십 년 동안 재산권을 제한당하며 살아온 주민들을 설득해야 할 책임도 있다.

하지만 정부는 여느 때처럼 '속도전'으로 나갔다. 지난해 8월 보금자리 주택지구 지정이 제안됐고 불과 한달 뒤 사전환경성검토 협의를 완료했다. 주택지구로 지정된 때가 지난해 12월 3일이었고 일주일 뒤에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이 접수됐다. 또한 SH공사는 내곡지구 조경설계 현상공모를 지난 18일 내고 접수 기한을 불과 3일 뒤인 21일로 정했다. 김영란 강남서초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4대강 사업도 이렇게 빨리 진행하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 29일 서울 서초의 한 중학교에서 열린 내곡 보금자리주택지구 환경영향평가 초안 공청회에서 SH공사측 발언이 시작되려하자 일부 주민들이 일어나 발언권을 요구하고 있다. ⓒ프레시안(김봉규)

"지금 도시계획으로는 기존 주민들 사생활 보호도 힘들어"

공청회는 시작부터 소동을 겪었다. SH공사 측이 내곡지구 도시계획이 담진 자료 화면을 스크린에 띄우자 주민들은 검토할 수 있는 문서를 달라고 요구했다. SH공사 관계자가 "공청회에는 일반적으로 별도의 자료를 나눠주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주민들에겐 지난 8일 무산된 주민설명회 당시 받은 1쪽의 지구계획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발표자로 나선 김영란 사무국장은 "(사전환경영향평가의) 주민공람이 끝나면 다시 공청회를 하겠다고 지정 고시하고 14일 이후에 일정을 잡는 게 통상적"이라며 "주민들에게 500쪽이 넘는 평가서를 동사무소나 구청에 앉아서 보라고 하고 있다. 주민 의견을 제대로 협의하고자 만든 단계인데 요식적으로 하는 것은 주민을 우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국장은 "특히 SH공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조경설계 현상공모가 올라가 있는데 주민 의견을 묻기도 전에 설계 공모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기만적"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환경영향평가의 용역을 맡은 한창무 (주)건화 이사는 "시행사가 홍보나 주민들의 의견 청취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주민들의 요구 없이도 공청회가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주민들이 아는 건 자신들의 마을과 50미터 간격을 두고 4000여 세대의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사실 뿐이다. 시행사는 일정량의 녹지를 보전하는 친환경 설계를 약속하지만 주민들이 청계산과 대모산 대신 '아파트 빙벽(氷壁)'을 바라보고 살아가야 한다는 건 바뀌지 않는다.

한 주민은 "환경영향평가법을 보면 자연환경뿐 아니라 생활환경, 사회환경, 경제환경에 대한 평가도 들어가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아파트가 들어서면 우리 주민들이 교통문제나 배기가스로 인한 오염 문제 등이 심각한데 이러한 내용에 대한 평가는 왜 없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주민은 "통경축(조망 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시각적으로 열린 공간) 확보의 경우에도 공사 측은 청계산 쪽만을 강조할 뿐 다른 마을 입장에서는 이야기 하고 있지 않다"며 "도시계획을 보면 기존 마을에서는 사생활 보호조차도 기대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공사 측 관계자들은 "여기는 환경평가서 검토를 위해 모인 자리"라거나 "피해가 가지 않을 수는 없지만 이해와 협조를 구하기 위해 계속 논의할 것"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이에 일부 주민들은 "남의 사유지를 뺏어 SH공사 장사하게 만드는 게 민주주의 국가냐", "정부가 하는 일이 서민을 살리자고 하는 개발이 맞냐"며 격한 어조를 띄기도 했다.

▲ 내곡지구 주민들은 SH공사가 기존 주민들을 무시한 도시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프레시안(김봉규)

환경평가서 초안 2005,2006년 자료 그대로 인용…현장조사 한 번 없어

환경영향평가서 초안도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김영란 국장은 "공사 측은 그린벨트 훼손지 복구율이 9%라고 하지만 개발지구 밖에서 이루어지는 복구 작업으로 생색내는 것"이라며 "보금자리 주택 사업은 필요하지만 훼손비율이 20% 이내에 머무는 청계산 인근 지역에 보금자리를 지을 이유는 없다"고 비판했다.

김 국장에 따르면 평가서 초안은 2005, 2006년 당시 자료를 출처 없이 그대로 인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곤충류에 대한 내용은 아예 누락되어 있고, 미세먼지 등 공기대책이나 훼손지 복구 대책 등이 일반적인 설명에 그치고 있다.

김 국장은 "그 급하다는 4대강 사업도 최소한의 동식물 조사를 마쳤는데 그린벨트 내 주택지구를 조성하면서 현장조사 한 번 없이 이럴 순 없다"며 "인근에 서식하는 말똥가리의 경우 공사가 시작되면 주변으로 알아서 흩어져 살 거라고 하는 식이 대표적"이라고 지적했다.

이강오 녹색서울시민위원회 사무처장은 "위원회에서도 내곡동에 고층 아파트를 짓는 것에 대한 반대 의견을 국토해양부와 SH공사에 보내고 있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얼마 전 바람직한 도시 모델로 제안한 스웨덴의 말뫼와 같은 도시도 3~4층 건물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을 비교해 봤을 때 SH공사가 제시하는 계획은 지속 가능한 방향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노윤철 내곡동 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환경영향평가서의 토대가 된 2005년 자료에는 일부 파충류가 누락되어 있는 정도가 아니라 현재 서식하고 있는 맹꽁이, 두꺼비, 살무사 등에 대한 언급이 아예 없다"며 "본안 협의에 앞서 실측조사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며 주민만큼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이 없으니 심의의원으로 위촉하면 직접 나서서 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창무 이사는 "2005, 2006년 자료는 당시 국민임대주택 건설을 추진하면서 작성된 자료로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환경영향평가서는 초안에 불과하며 차후 현장조사 등을 거쳐 본안에서는 누락된 부분을 보충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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