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범 감독의 '악질경찰'을 별다른 정보 없이 보면 놀라게 마련이다. 그의 '악질경찰'은 현재 대한민국이 풀어야 할 큰 숙제들이라 할 세월호와 삼성을 다루기 때문이다. 이정범 감독은 언뜻 무관하게 보이는 세월호와 삼성을 솜씨좋게 만나게 한다. 그리고 이 감독은 대한민국의 거악 삼성을 뿌리채 뒤흔들 정도의 거대한 힘이 세월호를 필사적으로 기억하는 사람들과 세월호 세대에 참회하려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고 보는 것 같다.
예컨대 부패와 비리를 일삼던 악질경찰 조필호(이선균 분)가 자신이 가진 모든 걸 걸고 감히 태성(삼성의 앞자만 바꾼 것으로 삼성에 대한 강력한 은유)의 오너를 겨냥할 마음을 먹게 만든 건 미나(전소니 분)의 자살이었다. 불우한 삶을 사는 미나는 그러나 단짝이자 세월호에서 숨진 친구를 늘 가슴에 묻고 산다.
태성 비자금 증거 인멸사건에 휘말린 미나는 조필호와 태성 직원들의 행태에 절망한 채 "이런 것들도 어른이라고"라는 말을 남기고 옥상에서 뛰어 내려 목숨을 끊는다. 그런 미나를 태성의 오너인 정이향(송영창 분)은 780원짜리 인생이라고 조롱한다.그리고 영화 후반부에 조필호는 "780원짜리 인생은 없어"라고 말하며 정이향을 사살한다. 정이향을 사살한 조필호는 압송되는 차안에서 죽은 미나를 보는데 미나는 조필호를 보고 웃는다. 나는 '악질경찰'이 조필호로 대표되는 어른 세대의 세월호 세대에 대한 절절한 속죄(贖罪)이자 통렬한 참회라고 느꼈다.
세월호 참사의 주요 증거물인 폐쇄회로(CC)TV DVR(Digital Video Recorder·영상 저장 녹화장치)의 조작 가능성이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에 의해 제기된 지금( 관련기사 : 세월호 영상, '사라진 3분' 찾으면…어떤 의혹 풀리나), (사)4.16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가〈세월호참사 특별수사단〉설치와 전면재수사를 위한 국민 청원을 시작했고 이미 1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청원에 응한 지금, 우리가 세월호 침몰의 실체적 진실 규명에 다시 힘을 모아야 하는 까닭은 간명하다.
단언컨대 세월호 침몰의 실체적 진실 규명 없이는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세월호가 사고로 침몰했고 국가기관들의 총체적 무능과 우연의 결합으로 구조에 완전히 실패한건지, 세월호의 출항과 침몰과 구조와 언론통제의 전 과정에 국가기관들의 조직적이고도 악마적인 계획과 음모와 실행이 있었던건지를 밝히지 않고 세월호를 덮고 잊자는 건 제2, 제3의 세월호를 예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국가는 주권자인 국민의 생명과 신체와 재산을 보호할 절대적 의무를 진다. 주권자인 국민이 떼죽음을 당한 세월호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 정부의 고의 혹은 과실 여부를 가리고 그에 따라 제도 정비와 책임자 처벌을 하는 건 주권자에 대한 국가의 최소한의 도리이자, 국가의 존재 이유다.
1980년 5월 광주가 있었기에 1987년 6월 항쟁이 있었던 것처럼, 세월호가 있었기에 촛불혁명이 가능했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 설치와 전면재수사에 즉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칫 미적대다 세월호 세대로부터 영화 속 대사 그대로 "이런 것들이 어른이라고" 같은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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