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통화위원회가 12일 콜금리를 현행 수준으로 동결키로 한 뒤 낙하산 인사로 내려온 금통위원들을 향한 한국은행내 분위기가 상당히 험하게 돌아가고 있다. 박승 한은총재까지 공개석상에서 우회적으로 금통위원들을 비판하고 나설 정도다.
박승 총재는 12일 금통위 회의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금리를 올리면 국민과 기업이 심리적 패닉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한 금통위 회의 직전의 전윤철 부총리 발언과 관련, "미국의 경우에는 정부 인사가 금리관련 발언을 하면 오히려 재무부가 나서 말리고 항의한다"고 전 부총리 발언에 대한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박 총재의 발언중 특히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이어 나온 금통위원 관련 발언이다.
박 총재는 "일본이나 영국 중앙은행의 경우에는 제도상으로는 독립성이 낮으나, 재무부가 금통위원의 절반을 임명할 수 있으면서도 그 자리에 관료를 보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는 금통위원 자리를 마치 공무원들의 순환보직 정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 발언은 한은 독립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다 보니 나온 의례적 발언으로 가볍게 보아넘길 수도 있다. 역대 한은 총재치고 이런 푸념을 털어놓지 않은 이는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한은에서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현행 금통위원들에 대한 박 총재의 불만 토로가 아니냐'는 식의 해석이 지배적이다.
한 한은 관계자는 "이번 금리인상을 둘러싼 논의 과정에 금통위원들이 해도 너무 하는 게 아니냐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며 "노조에서 지난 4월 낙하산 인사를 문제삼아 금통위원 취임 반대 시위를 벌였을 때만 해도 '지나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으나 이번 금통위원들의 통화정책 결정 과정을 보면 그럴 만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일각에서 현 금통위원들은 역대 최악이라는 얘기까지 하고 있을 정도로 금통위원들의 재경부 의존성향이 심각하다"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재경부 출장소'라는 소리를 다시 듣게 되지 않을까 우려될 지경"이라고 탄식했다. 그는 "하다 못해 민주당까지 작금의 심각한 부동산 투기의 부작용을 우려해 금리 인상을 앞장서 주장한 마당에 이번에 금통위원들이 보여준 태도는 너무 안이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한은 내부에서는 한은 출신의 김모 금통위원을 가리켜 '외로운 섬'이라 부르고 있다"며 "현재 금통위가 어떤 식으로 운용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극명한 예"라고 말하기도 했다.
금통위는 이날 회의후 향후 추이에 따라 금리를 올릴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밝혔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연내 금리인상은 물건너갔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한 외국계 펀드매니저는 "정부가 이번에 금리인상 불가 요인으로 꼽은 이라크전 발발 위험성은 연말까지 계속되는 등 외부변수의 불확실성은 계속될 게 확실한 만큼 연말 대선때까지 금리인상은 불가능해 보인다"며 "한은의 독립성은 아직 먼 장래의 과제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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