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 출마선언을 앞두고 있는 정몽준 의원을 대단히 곤혹스럽게 만들 게 틀림없는 외신이 31일 날아들어왔다. "정 의원이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려면 이에 앞서 현재 보유중인 현대중공업 주식을 모두 팔라"는 현대중공업 노조의 주장에 강한 힘을 실어주는 외신이다.
현재 보유주식 매각을 거부하고 있는 정몽준 의원에게 두고두고 부담이 될 외신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60)이다.
***블룸버그 시장, 시민 압력에 굴복해 보유주식 전량 매각키로**
세계 최고 권위의 블룸버그통신을 창업한 데 이어 지난 1월 2일 108대 뉴욕시장에 취임한 '세계적 뉴스메이커'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은 30일(뉴욕 현지시간)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블룸버그통신 주식을 전량매각한 뒤 매각대금 일부를 자선단체에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자신이 키워온 블룸버그통신과의 완전단절이다.
블룸버그 시장의 이같은 결정은 그러나 그의 '개인적 용단'에 따른 것이 아니다. 시민들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다.
뉴욕타임스 30일자 보도에 따르면, 뉴욕시 이해상충위원회는 블룸버그 시장에게 현재 보유하고 있는 수천만달러 상당의 주식 및 헤지펀드 투자분을 모두 매각 또는 회수하도록 촉구하는 결정을 내렸다. 위원회는 이밖에 블룸버그 시장이 뉴욕시 발행채권 인수자를 선정하는 데 관여할 수 없으며 케이블TV 사업자 결정에도 참여해선 안된다고 못박았다.
이같은 결정은 블룸버그통신을 창업해 큰 돈을 벌어들인 블룸버그 시장이 시장 업무수행을 통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내려진 것이다.
존경받는 뉴욕시민들로 구성된 이해상충위는 이같이 민감한 윤리 문제를 결론짓기 위해 블룸버그의 시장취임일인 지난 1월 2일부터 지금까지 8개월간 논의를 계속해 왔었다. 이 과정에 이해상충위 위원중 하나인 베니토 로마노는 그가 속한 윌키 파 앤드 캘러허가 블룸버그 시장 보유 회사와 계약을 맺고 있다는 이유로 주요 결정과정에서 배제되기도 했다.
위원회는 블룸버그 시장이 특정기업 주식을 보유할 경우 뉴욕시의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 관련기업의 이해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있는 만큼 보유주식의 매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블룸버그 시장이 50만달러 상당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웨이스트 매니지먼트라는 회사는 뉴욕시 쓰레기 운반용역의 3분의 1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블룸버그 시장에게 뉴욕시 발행 채권의 인수자 선정작업에 관여하지 말도록 한 것은 블룸버그그룹의 주식 20%를 갖고 있는 메릴린치에 대한 특혜시비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블룸버그 시장은 이같은 이해상충위원회 결정에 승복했다. 위원회 결정이 나오자 뉴욕 시장실 대변인은 "블룸버그 시장이 보유주식의 전량 매각을 포함, 이해상충위가 촉구한 사항을 그대로 이행할 것이며 주식매각대금 중 일부는 자선단체에 기증하고 일부는 투신사에 넣는 방법으로 이해상충 논란을 없앨 것"이라고 밝혔다.
***블룸버그 시장은 월가의 살아있는 신화**
블룸버그 시장은 누구보다 블룸버그 통신에 대한 애정이 짙다. 자신이 맨손으로 창업, 오늘날 세계경제계를 쥐락펴락하는 절대파워로 키워온 기업이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시장은 월가의 살아있는 신화중 하나이다.
194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테드포트에서 태어난 그는 존스홉킨스대학,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을 거쳐 솔로몬 브라더스에 입사, 38세가 되던 1980년에는 회사내 다섯명의 파트너 중 하나가 될 정도로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그러나 1981년 솔로몬 브라더스가 필브로사에 매각되면서 해고될 위기에 처하자, 즉각 사표를 내던지고 4명의 부하직원과 함께 금융정보 제공회사인 블룸버그 통신을 창업했다.
창업 당시 주위에서는 모두 이를 말렸다. 2백년 전통의 영국 로이터통신이나, 월스트리저널을 발행하는 미국 다우존스그룹의 다우존스 마켓 같은 공룡들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블룸버그통신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블룸버그는 그러나 보란듯이 블룸버그통신을 세계 제1의 경제전문 통신기업으로 일구어냈다. 98년 2월에는 경쟁자인 로이터통신이 블룸버그통신의 정보를 훔친 사실이 드러날 정도로, 블룸버그통신은 이제 세계 경제정보시장을 완전장악하기에 이르렀다.
블룸버그 회장은 이같은 성공에 힘입어 대통령 지망자의 등용문으로 불리는 뉴욕시장 선거에 도전해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고, 지난 1월 당당히 제108대 뉴욕 시장에 취임했다.
하지만 그가 뉴욕 시장에 취임한 이래 시민들은 그가 기업인 출신이며 현재도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주식을 팔아 한점 의혹없이 시정에 임할 것을 압박했고 블룸버그 시장도 30일 마침내 이 압박에 굴복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공은 이제 정몽준 의원에게 넘어왔다**
뉴욕 시민과 블룸버그 시장간의 이같은 힘겨루기와 블룸버그 시장의 승복은 우리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최근의 두차례 잇따른 총리인준 부결을 비롯해 연말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후보자격 검증작업을 하는 과정에 우리 사회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공직자 윤리' 문제가 중차대한 현안으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윤리 문제는 차기대통령을 희망하는 이들을 비롯해 모든 공직 희망자들에게 적용되는 문제이나, 블룸버그 시장의 보유주식 전량매각 결정은 특히 재벌 2세 출신인 정몽준 의원에게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몽준 의원 역시 지금 보유주식 매각압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정 의원에 대한 보유주식 매각압력은 그가 고문이자 최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 노조에 의해 제기됐다. 지난 92년때처럼 현대중공업 직원들이 대선운동에 휘말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며, 그러기 위해선 정 의원이 대선 출마 선언을 하기에 앞서 보유중인 현대중공업 주식 11%를 전량매각하라는 주문이었다.
정몽준 의원은 그러나 이같은 요구를 묵살했다. "절대로 현대중공업을 선거에 끌어들이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입장은 밝혔으나 주식매각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태평양 건너 뉴욕에서 블룸버그 시장이 보유주식 전량 매각과 매각대금 일부의 기부를 발표함에 따라 정몽준 의원은 앞으로 더욱 거센 보유주식 매각 압박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개 시장이 된 기업인도 보유주식을 전량매각한 마당에 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기업주식을 보유하고 있어서야 되겠느냐는 압박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면 결단도 내릴 줄 알아야**
더욱 블룸버그 시장은 자신이 직접 기업을 일군 창업자로, 부친으로부터 주식을 물려받은 정 의원에 비해 기업에 대한 애정이 더 크면 컸지, 적을 리가 없는 인물이다. 정 의원으로서는 더욱 부담이 가는 대목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정 의원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보유주식을 매각하겠다"고 밝힐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일국의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인물이라면 "대통령이 되면"이라는 식의 전제조건을 붙여선 안된다는 지적이 많다. 기왕 도전할 바에야 국민들이 의혹을 가질 사안들에 대해 깨끗히 '결단'을 내릴 줄 알아야 한다는 주문이다.
과연 정몽준 의원이 블룸버그 시장의 교훈에 따라 보유주식을 전량매각, 재벌 2세라는 최대 핸디캡으로부터 자유로와질 수 있을지 예의주시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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