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는 중기적으로 우리나라같은 '강세통화 자산'을 선호할 게 분명하다. 미국경제를 예의주시하긴 해야 하나, 그렇다고 부화뇌동할 필요는 전혀 없다."(한국은행 정책담당 책임자)
"부화뇌동하면 외국계만 떼돈 번다. IMF사태후 한국경제의 크게 달라진 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재정경제부 금융담당 책임자)
경제정책 유관부처 책임자들이 일관되게 하는 말이다.
미국증시가 연일 급락하자 국내 금융시장도 연일 출렁이고 있다. 민간경제연구소 등에서도 비관적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는 좌불안석이다. 아무리 "부화뇌동 말라" 해도 믿지 않는다.
과연 어느 쪽 말을 믿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부화뇌동 말라"는 정부측 주장에 믿음을 가질 때이다. 정부 말이래서가 아니다. IMF사태후 달라진 우리의 실체에 대해 스스로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올해 우리나라 펀더멘탈은 세계최고**
한국은행은 우리나라 경제예측기관중 가장 보수적 전망을 하는 곳이다. 또한 통계청에서 넘어온, 가공되지 않은 로 데이타(raw data)를 직접 만지는 유일한 기관이다.
한은은 그런데 올해 하반기 GDP성장률을 경제예측기관중 가장 높은 6.8%로 잡고 있고, 올해 연평균 성장률이 6.5%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요즘 미국 금융위기가 확산되고 있음에도 "아직 전망치를 수정할 생각은 전혀 없다"는 게 한은 고위 정책관계자의 말이다.
"요즘 미국증시에 따라 국내주가가 급등락을 거듭하고 있으나, 중기적으로는 미국 금융위기때문에 도리어 우리나라 주가가 오를 공산이 크다. 지금 지구상에는 우리나라보다 매력적이고 안전한 투자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비록 요즘 며칠동안 외국계가 보유주식을 팔고 있으나 그 액수도 아직 미미한 편이고, 그들은 대신 선물을 사들이고 있다. 앞으로 우리 경제전망을 좋게 보고 있다는 증거다."
이 관계자는 외국계가 우리 금융시장을 좋게 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다음 두가지로 설명했다.
"첫번째는 우리나라의 전례없이 튼튼한 경제 펀더멘탈(경제기초여건)이다.
우리나라는 올해 중국(7.5% 예상)과 더불어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장을 할 게 분명하다. 우리 대기업들과 금융기관들도 올해 사상최대 순익을 올릴 게 확실하다.
국가와 기업의 자금사정도 더없이 양호하다. 외환보유고가 1천1백억달러를 넘어서 세계4위다. 대기업들이 비상시를 대비해 비축해 놓은 이익잉여금만 1백87조원에 달한다. 즉각 끌어다쓸 수 있는 현금만 수십조원을 갖고 있다. IMF사태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철저한 준비태세다.
요즘 원화의 급속한 평가절상으로 수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으나 이 또한 과거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석유화학이나 섬유는 고전이 예상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수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모바일폰, 평면TV, 자동차 등은 가격경쟁력이 아니라 기술경쟁력으로 승부, 빠르게 시장을 확대시켜 나가고 있다.
이처럼 튼튼한 경제여건을 갖춘 나라가 지구상에 몇개나 있겠나. 외국계가 어떻게 우리나라를 빠져나갈 수 있겠는가."
***"돈은 '강세통화 자산'으로 몰려드는 법"**
이 관계자는 두번째 이유로 우리나라의 '강세통화 자산'을 꼽았다.
"요즘 원화가 평가절상되자 수출업계는 아우성이나, 금융측면에서 보면 도리어 외국계 유인요소가 커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외국계는 최근 원화가 1백몇십원 평가절상되자 그만큼 '환차익'을 거두었다. 그 사이에 주가가 떨어지긴 했으나 주가하락에서 입은 손실보다 환차익에서 본 이득이 더 크다.
우리나라의 경제 펀더멘탈이 다른나라들보다 좋다 보니, 앞으로도 원화는 계속 평가절상될 것이라는 게 지배적 관측이다. 이처럼 계속해 '환차익'이 예상되는데 과연 외국계들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겠는가. 또한 빠져나가고자 해도 갈 곳이 없다.
돈은 기본적으로 '강세통화 자산'으로 몰리게 마련이다. 최근 대만이나 싱가포르보다 우리나라 원화의 평가절상률이 높았던 것도 우리나라 실물경제가 대만이나 싱가포르보다 좋기 때문이다.
금융은 실물경제를 선행해야 마땅하다. 그럴 때에만 금융이 실물이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금융은 실물경제를 선행하기보단 발목을 잡는 양상이다.
우리 경제의 달라진 면에 주목하며, 스스로 믿음을 갖고 대응할 때이다."
***"부화뇌동하면 외국계만 떼돈 벌 것"**
재경부 고위 금융책임자도 마찬가지 지적을 했다.
"돈들이 은행으로 몰리고, 은행은 이 돈을 갖고 채권 사들이기와 가계대출만 하고 있다. 주식형 수익증권은 쳐다도 안보고 있다.
물론 증시의 최대변수인 미국경제는 좋지 않다. 그러나 미국경제가 나쁘다고 해도 당초 3%쯤 되리라던 성장률이 1~2%수준으로 낮아지는 수준 정도일 것이다. 금융공황같은 파국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다.
이럴 때는 우리 경제의 펀더멘탈에 믿음을 갖고 증시에 들어와야 한다. 만약 국내 투자가들은 빠져나가고 외국계가 우르르 몰려들면 과거에도 수차례 경험했듯 외국계들만 수조, 수십조원의 떼돈을 벌 것이다.
정부가 민간에게 주식에 투자하라 마라 할 때는 지났으나, 민간 경제주체들이 스스로 판단을 내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때다."
***외국언론의 호의적 시선**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월가 등 외국의 시선도 최근 호의적으로 바뀌고 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4일 "과거 질시와 모방의 대상이 됐던 일본경제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를 바래왔던 한국의 소망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은 물론 최근에는 역전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높게 평가했다. 월가에 가장 영향력이 큰 언론매체인 WSJ의 이같은 호평은 세계투자가들에 대한 한국시장에 대한 투자 권고로까지 해석가능하다.
이 신문은 "이같은 한국경제의 성과는 5년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경제분야별로 탄력성을 갖춘 데다 수출지향적인 경제모델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과는 달리 수출과 내수간의 조화를 이루고 노동시장도 안정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골드만삭스 증권 홍콩지점의 김선배 연구원은 "한국의 경우 노동시장의 탄력성이 외환위기로 얻어낸 최대수확"이라며 "제조업이 부진한 반면 서비스부문은 꾸준히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건축부문에서도 일본이 무의미한 도로, 교량건설 등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의 경우 생산성이 뛰어난 주택건축이 꾸준히 유지돼 노동시장에도 큰 힘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부동산 가격 폭등과 가계부채 증가로 인해 거품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으나, 최근 들어서는 신용대출사업의 마진이 지급불능 규모를 충분히 만회하고 있어 이같은 우려가 다소 진정된 상태라고 밝혔다.
WSJ는 "이밖에 한국 금융권에서는 가장 안전한 대출인 모기지 비율이 높아지고 있어 아시아국가들 가운데 부실대출 비율이 가장 낮은 국가가 됐으며, 최근 일본 등 전세계 증시폭락 사태에도 불구하고 한국증시가 상대적인 호조를 나타내고 있는 것은 경제 펀더멘탈의 향상을 반증한다"고 분석했다.
***미국경제 전망은 아직 부정적이긴 하나...**
이같은 전망에 대해 시장 일각에선 아직은 조심스럽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대형국영기업의 한 자산운영자는 "24일(현지시간) 미국증시가 금융주의 반등으로 8천선을 회복했으나 월가의 '인위적 시장개입' 냄새가 난다"며 "아직 미국증시가 바닥에 도달했다고 보기에는 이른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본격적으로 기업부실이 금융부실로 전가될 것이고 미 금융기관들의 분식회계 공모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대규모 손해배상 사태도 예상됨에 따라 최소한 석달동안은 미국 금융주가 맥을 못출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그는 그러나 국내 증시와 관련해선 "현 국내 주가 수준은 외국 등과 비교할 때 양호한 편"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정부는 이럴 때일수록 별 효과없는 증시 수급대책을 내놓기보다는 외국증시와 한국증시를 차별화하기 위한 투명성 제고장치를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내 대형시중은행의 자금운영 담당자도 "최근 외국계의 시장전망을 집중적으로 모니터링한 결과, 미국의 신뢰가 깨진 데다가 미국산업의 성장엔진이 꺼진 만큼 미국경제가 다시 회복 궤도를 타려면 3년정도가 필요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며 "고객자산을 가장 보수적으로 운영해야 할 의무가 있는 은행들이 공격적으로 증시에 참여하기엔 아직 시기상조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시장 참여자들도 한국경제의 펀더멘탈이 IMF사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인해지고 상대적으로 투명해졌다는 대목에 대해선 동의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일희일비하며 부화뇌동하기보다는 우리 경제의 펀더멘탈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며, 우리 경제주체들이 외부위기에 얼마나 능동적으로 대처하는가에 따라 시장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게 지배적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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