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혜란 여사'가 2002년 7월4일 또다시 감옥에 갇혔다. 99년 7월16일 감옥행에 이어 정확히 3년만의 일이다.
구속 사유도 3년전과 똑같은 특가법상의 알선수재 혐의다. 3년전에는 "요로에 말해 경기은행의 퇴출을 막아주겠다"며 4억원을 받았다. 이번에는 분당 파크뷰 아파트의 건축허가를 사전에 내주며 업자로부터 1억원을 받은 혐의다.
이번 사건을 접한 세간의 반응은 한마디로 '어이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같은 사람에 의해 같은 '권력형 범죄'가 3년만에 되풀이될 수 있느냐는 허탈감이다. 변화하지 않는 권력부패 메커니즘에 대한 강한 분노다.
***권력에서 나온 '주혜란의 힘'**
3년전인 99년 7월16일 임창렬 경기지사, 주혜란 경기지사 부인이 이철희·장영자 사건 이래 처음으로 부부가 함께 수뢰혐의로 감옥에 갇혔을 때 일이다.
세간에서는 '임창렬지사 부인 주혜란'이냐 '주혜란 남편 임창렬'이냐는 설왕설래가 있었다.
당시 경기은행 퇴출을 막기 위해 서이석 행장이 준 뇌물액수가 임창렬 지사는 1억원이었던 데 반해, 주혜란씨는 4억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서 행장은 검찰조사를 받는 과정에 "임 지사보다 주 여사쪽 빽이 더 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진술하기도 했다.
뇌물액수로만 따지면 경기도지사이자 김대중 대통령 신임이 두터웠던 남편보다 4배나 센 '주혜란의 힘'은 과연 어디서 나온 것이었나.
당연히 권력이었다. 그러나 당시 검찰은 '힘의 원천'을 밝히지 않았다. 검찰이 과연 몰라서였나.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케 하는 증거들이 당시 곳곳에서 나왔었다.
한 예로 주혜란씨가 구속된 직후 그녀가 출간하려던 자서전 초록이 언론에 공개됐다. 여기를 보면 몇 가지 간과하기 힘든 대목이 읽힌다.
그녀는 우선 자신이 임창렬지사와 재혼을 하게 된 배경과 관련, "귀국후 김대중 총재로부터 그(임창렬)가 아주 똑똑하고 능력있는 사람이니 꼭 결혼하라는 말을 듣고 결혼을 결심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녀는 또 97년 외환위기당시 "김대중 대통령후보가 재협상을 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리자, 캉드쉬 IMF총재 부인이 나에게 전화를 해 '김대중 후보가 이런 말을 했다는데 사실이냐'고 물어왔다. 나는 '김 후보는 국제관계에 대해서는 잘 아는 사람이라 그런 말을 했을 리 없다. 아마 참모들이 표를 의식해 한 말일 것'이라고 말했다"고 적고 있다.
주혜란씨는 이외에 자신의 구속 전에 정국을 밑둥채 흔들었던 옷로비 사건때 문제의 의상실 라스포사에 출입한 사실이 밝혀지는 등 권력과의 커넥션을 강화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음을 보여주었다.
때문에 당시 정치권 등 권력집단내에서는 검찰 수사과정에 '주혜란 리스트'가 나오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 어린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주혜란씨는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돼 1년6개월의 실형과 7천만원의 벌금을 받고 수감생활을 하다가 얼마 뒤 풀려났다. 이에 앞서 함께 구속됐던 남편 임창렬씨는 받은 1억원이 대가성 입증이 어려운 정치자금이라는 이유로 풀려났다.
***3년만에 똑같은 범죄 저지른 지독한 도덕적 불감증**
여기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임창렬 부부 석방 당시 권력의 반응이다.
임창렬 지사는 구속된 지 81일만에 석방됐다. 그러자 그가 구속되자마자 전광석화처럼 그를 제명한 뒤 지사직 사퇴를 종용했던 국민회의가 그를 즉각 복당시켰다. 이같은 여권의 태도 돌변은 그의 석방 한달전 청와대를 예방했던 국민회의 중진에게 김대중 대통령이 "임 지사의 구속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라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가 나돌면서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임 지사는 정치적으로 복권됐고, 지난달말까지 지사직을 유지했다. 임 지사 석방 얼마뒤 뒤따라 나온 주혜란씨도 지사 부인으로 컴백했다.
그로부터 2년이 흘러 임 지사가 퇴임한 이틀 뒤인 7월2일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 알선수재 혐의로 주혜란씨를 소환해 긴급체포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체포사유는 분당 파크뷰 아파트 건축허가 사전승인이었다. 분당 파크뷰는 M고교 인맥을 중심축으로 하는 특정지역 정치세력들이 모여 크게 한탕해 먹은 사건으로, 이번 6월 지방선거에서의 민주당 참패에 결정적 작용을 한 사건이다. 여기에 주혜란씨도 한다리를 걸쳤던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경기도지사 부인에 불과한 주씨가 건축허가 사전승인이라는 도정 업무에 직접 관여했다는 대목이다. 남편에게 부탁해 승인을 내준 것인가, 아니면 직접 자신이 심어놓은 도청내 인맥을 통해 승인을 내준 것인가. 검찰이 반드시 규명해야 할 대목이다.
정확한 진상이 어떻든 간에 도지사 부인이 도정에 직접 관여했다는 대목만 갖고도 임창렬 지사는 도덕적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재 민주당원인 임창렬 전 지사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또하나의 도덕적 불감증이다.
***자신의 발목에 족쇄 채우는 부패청산 특별법 필요**
주혜란씨의 두차례 감옥행이 의미하는 바는 중차대하다. 권력집단내 뿌리깊게 박혀있는 '도덕적 불감증'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극명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도덕적 불감증은 비리혐의로 한번 감옥에 갔다오는 것을 마치 '정치적 훈장'처럼 여기는 한국의 권력풍토에서 기인한다. 한 외국인 저널리스트는 한국을 '정치범죄자들의 천국'에 비유하기도 했다. 해방후 일제청산을 못한 데 따른 필연적 귀결이기도 하다.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4일 기자회견을 통해 몇가지 제안을 한나라당측에 했다. 한나라당측은 이를 '정치적 술수'로 규정하며 제안을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노 후보의 제안중 하나만은 한나라당도 받아들여야 한다. '부패청산 특별입법' 제정이 그것이다.
노 후보는 부패청산을 위한 특별입법에 ▲ 국정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등에 대한 인사청문회 실시 ▲ 대통령 친인척과 고위 공직자 비리를 전담하는 비리조사 특별기구(특검) 설치 ▲ 일정액 이상 후원금 기부시 수표사용 의무화 등을 포함한 정치자금법 개정 ▲ 부패문제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 또는 연장 등을 포함하자고 제안했다.
이 제안은 노무현 후보의 창작물이 아니다. 그동안 부패사건이 터질 때마다 시민단체와 재야법조계, 학계 등이 일관되게 요구해온 근원적인 부패척결 장치이며 한나라당도 종종 주장해온 내용이다. 이 문제만은 이번에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어떤 형태로든 만나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
***국민은 '말' 대신에 '제도'를 원한다**
한나라당은 오는 8.8 재보선과 연말 대선 때도 '부패정권 심판'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 예정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회창 후보는 또 기회가 날 때마다 "집권하면 역사상 가장 깨끗한 정권을 만들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믿고 싶다. 그러나 역대 모든 정권도 똑같은 얘기를 했다. 착한 우리 국민은 양치기 소년에게 너무 많이 속아왔다.
그러기에 국민은 '말' 대신에 '제도'를 원한다. 진실로 깨끗한 정권을 만들겠다면 지금 즉각 제도를 만들라. 스스로의 이권에 발목을 잡을 살벌한 감시장치를 만들라. 우리 정치권이 '도덕 불감증'이라는 너무도 중증의 마약중독 상태에 빠져있는 만큼 국민은 웬만한 감시장치에는 눈도 돌리지 않는다. 축구가 4강 신화를 이룩했듯, 전세계 정치권에서 4강 수준에 들만한 지독한 부패통제 장치를 만들라. 이것은 국민의 명령이다.
'주혜란 여사'가 99년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일이다.'활빈단'이라는 이름의 시민단체가 갇혀있는 주씨에게 선물을 보냈다. <신사임당 일대기> 3권과 때밀이수건이었다. 마음의 때를 벗기라는 주문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후 주씨는 똑같은 죄목으로 다시 감옥에 갔다. 우리 지도층에 만연한 도덕적 불감증이 때밀이수건 같은 도덕적 힐난 갖고는 치유될 수 없을 만치 심각한 중증이라는 증거다.
지금 우리 정치권은 '도덕적 암'에 걸려 있다. 국민 눈 속이기식 대증요법으로 대처하려다간 정치권은 끝내 암으로 궤멸할 것이다. 지난번 지방선거때 이미 국민의 1차 경고는 나왔다. 2차, 3차 경고도 곧 나올 것이다. 이 경고를 무시하는 정치세력의 생명은 설령 집권하더라도 그다지 길지 못할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