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SKT)이 마침내 정부를 눌렀다.
KT(구 한국통신) 주식인수를 둘러싸고 정부와 벌였던 한달여의 신경전 끝에 사실상의 정부의 백기항복을 받아낸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SKT의 KT지분 인수를 백지화하라는 지시를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빚어진 결과다. 또하나의 레임덕(권력누수) 증거이다.
SKT는 이번 승리를 계기로 앞으로 주력사업부문을 '통신.금융 복합그룹'으로 재편한다는 야심찬 마스터플랜을 그린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된다.
***"한달전 강경입장은 정통부가 당한 데 따른 감정적 대응"?**
양승택 정보통신부장관은 3일 출입기자단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SK텔레콤이 KT지분 11.34%를 보유하면서 경영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재무적 투자로 간주할 수 있다"며 더이상 이를 문제삼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어 "S텔레콤이 KT에 대해 경영권을 행사하려 한다면 공정거래법상 주식매각 명령 등 여러가지 제도적 제재장치가 마련돼 있어 불가능할 것"라고 덧붙였다.
양 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SK텔레콤이 지난 4월말 KT지분을 매입한 직후 취했던 강경입장과 크게 다른 것이다. 그는 지난 4월24일 "이번 KT지분 매각은 성공적이었으나 SKT의 막판 돌출행위로 빛이 바랬다"며 "SKT가 KT주식을 처분하지 않으면 정부정책에 정면도전하겠다는 의사로 간주될 것"이라고 펄펄 뛰었었다.
양 장관은 당시 손길승 SK회장이 내놓은 1.79% 지분 양도 제안에 대해서도 "1.79% 정도는 관심도 없다"며 "SKT는 2대주주로 내려갈 때까지 주식을 처분해야 한다"고 구체적 매각규모까지 요구했다. 양 장관의 이 말은 현재 KT의 2대주주인 템플턴투신운용의 지분이 4.4%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에 SKT가 매입한 KT지분 11.34% 가운데 7% 이상을 매각하라는 주문에 다름 아니었다.
한달여만에 이처럼 입장을 180도 바꾼 데 대한 양 장관의 해명은 궁색했다.
그는 "특정 기업이 KT지분을 대량으로 획득하지 않도록 KT지분 매각방안을 마련했으나 SK텔레콤이 이를 무산시키는 바람에 정통부가 당하는 꼴이 된 데 따른 정책집행담당자로서의 감정적 문제였다"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그후 냉정하게 문제를 따져본 결과 SK텔레콤이 KT 경영권을 넘보는 것이 이슈라는 판단을 내렸으며, 이같은 경영권 획득은 여러가지 제도적 장치가 있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해명했다.
양 장관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지난 4월말 KT가 해법으로 내놓았던 KT와 SKT간 주식맞교환(스왑)에 대해서도 "엄청난 세금 문제 등 어려움이 많다"면서 "단시일내에 하라마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상철 KT사장은 지난 4월24일 기자간담회에서 "SKT가 최근 KT 민영화 과정에서 확보한 KT지분(11.34%)과 KT가 보유하고 있는 SKT 지분(9.27%)을 서로 맞바꾸는 주식 맞교환(스왑)이 바람직하다" 며 SKT에 대해 주식스왑을 제안했었다. 이 사장은 "SKT는 이번 KT 지분참여 목적으로 삼성 견제와 주식 물량부담 해소를 들었다"며 "결과적으로 삼성측 참여를 막았고 주식 물량부담도 KT와 주식 스왑을 하면 해소된다"고 말했었다.
이같은 전후상황을 고려할 때 양장관의 이날 발언은 사실상의 완전한 백기항복이었다.
***SKT, '통신.금융 복합그룹'으로의 전진 시작**
정부의 이같은 백기항복을 지켜본 KT등 이해당사자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씁쓸하다는 것이다.
KT의 한 고위관계자는 "월드컵 기간동안에 자금과 조직을 총동원해 여론몰이에 성공한 SKT의 일방적 판정승"이라고 평가하며 "그러나 SKT가 KT의 경영권을 장악하게 되면 전체통신시장의 86%를 장악하게 돼 정부가 독점정책과 통신정책을 포기하는 꼴이 되는만큼 경영권 장악은 결코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KT지분 참여를 막판까지 추진하다가 여론에 밀려 이를 포기했던 삼성그룹의 관계자는 "한 나라의 핵심기간산업인 통신시장을 한 기업에게 독점케 한 행위는 앞으로 두고두고 문제가 될 것"이라며 정부대응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SKT는 이같은 주변의 반응에 노코멘트로 일관하는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내부적으론 당초 예상보다 빨리 이 문제를 풀 수 있게 된 데 대해 크게 자축하는 분위기다.
한 관계자는 "월드컵 기간중 SKT가 광고나 길거리응원 등에서 선도적 역할을 해 우리 기업에 대한 일반의 이미지가 크게 좋아진 대목도 정부의 이번 결정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며 "앞으로 주력시장에서 전념할 여건이 갖춰진 만큼 유무선 통합 등 통신사업의 도약을 위해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SKT는 최근 포탈업체인 라이코스를 인수하는 등 유무선 통합을 서두르는 한편, 현재 2천만명에 달하는 자사카드 회원을 겨냥한 카드사업 진출을 본격화하는 등 '통신.금융 복합그룹'으로 변신하기 위한 물밑작업을 착착 진행중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와 관련, SKT가 수년내에 성숙산업인 석유화학등의 사업부문을 정리한 뒤 성장산업인 통신.금융 부문에 주력하기로 내부방침을 정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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