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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약속을 믿지 않았지만 그들은 지켰다"

국내외 네티즌이 '우리'에게 보내는 3편의 편지

25일 결승진출이 좌절된 후 본지 게시판에는 독자들의 수많은 메일이 쇄도했다.

멀리 캐나다 벤쿠버에서도 왔고, 중견의 독자들도 글을 보내왔다. 이번 월드컵 대회가 우리에게 '무엇'이었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케 하는 주옥같은 글들이었다. 정말 우리 국민은 착한 국민, 지혜로운 국민, 정많은 국민이라는 사실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여러 글들 중에서 세 편의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

***"차라리 지기를 원했습니다"**

"90분 내내 울었습니다.
한국선수들이 너무도 불쌍했습니다.
너무도 힘들었던 지난 경기들로 젖먹던 힘까지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너무도 애처러웠습니다.

저는 축구가 뭔지도 잘 모릅니다.
다만 축구선수들의 혼신을 다해 뛰며 그 혼신의 힘 뒤에는 얼마나 힘들고 지친 아픔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속 저 밑바닥부터 올라오는 뭔가를 차마 말로써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남의 나라 이곳 캐나다 벤쿠버에서 첨으로 동포애를 실감시켜주고 한국인임에 자부심을 안겨준 한국축구 선수 오빠들께 마음속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이디 혜민이의 '차라리 지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는 이번 월드컵으로 참 많은 우리 힘을 보았다"**

"25일에 벌어진 독일 대 한국전.

나는 하도 마음을 졸이는 스타일이라서 혈압 올라갈까봐 경기도 띠엄띠엄 보았고, 독일이 먼저 공을 넣어 1대 0이 된 이후에는 경기를 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에는 온통 경기생각 뿐이었다. 이럴 때는 화도 막 나는 법이다. 도대체 축구가 뭐길래 이렇게 한달 내내 사람 애를 태우나....

결국 15분 남짓한 짧은 시간에 또하나의 기적은 벌어지지 않았고, 한국은 독일에게 결승 티켓을 넘겨주어야만 했다.

솔직히 아쉽다. 사람 욕심 끝이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불만은 없다. 한국팀 쉬지도 못하도 너무 지쳐 있었지만(그런 모습이 역력했다) 그래도 90분내내 쉬지 않는 모습이 훌륭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 후의 담담하게 악수하는 모습도 훌륭했다. 우린 당초의 목표를 300% 초과 달성한 것이다. 16강 - 8강 - 4강!

더욱 놀랐던 것은 우리 국민들이었다. 쓴 잔을 마셨지만 결코 화를 내거나 하지 않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흔쾌히 자신들의 축제를 만드는 모습이 텔레비젼에 비쳤다. 저 밝은 얼굴들.

아, 저거구나... 이것은 동원도 아니고, 정치적 무엇도 아닌 축제의 열기였다. 그것을 증명하는 때였다. 정말 완벽히 12번째 축구전사를 자처한 국민들에게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이번 월드컵을 보며 한국전사들만큼 가치가 빛났던 것이 바로 국민들의 성원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광기라고 보일만큼 획일적이고 주체할 수 없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온국민이 같은 옷을 입고 너나할 것 없이 거리로 뛰어나온다는 것은 세계사에 유례 없는 일일 것이다. 돈주고 동원을 해도 그렇게는 못한다). 하지만 그 기운을 잘 다스려준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더러운 피파의 행태나 반쪽월드컵, 테러염려, 제3세계 노동자문제가 불거져 나오는 월드컵이었지만 국민의 힘을 확인한 것은 이번 월드컵의 최대 성과가 아닌가 한다.

"우리는 이번 월드컵으로 참 많은 우리의 힘을 보았다. 그 힘을 오래도록 간직해 나가도록 하자."

(아이디 zuhan의 '잘 싸웠다~")

***"그들의 약속을 믿지 않았지만 그들은 지켰다"**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1달 동안 꿈을 꾼 기분.
그 출발은 "한국의 첫승과 16강 진출의 염원을 반드시 이룩하겠습니다"로 해서 "세계를 놀라게 할 것입니다"라는 점점 도발적이고 간 큰 약속을 던진 한 네덜란드인의 호기어린 눈빛으로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의 뒤에서 입술을 꽉 깨문 23명이 그렇게 서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별로 기대하지 않았었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그 동안 투지와 열정과는 거리가 먼 성적이 무리한 약속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전에도 이들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뛰었고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지만 결과는 언제나 그들을 외면했다.

"이번에도 분명 열심히 뛸 것이다. 그들은 나라 사랑으로 똘똘 뭉친 대한의 건아들 아닌가 말이지"

그렇다. 나는 그랬었다. 23명의 지축을 울리는 발걸음은 분명 계속 이어질 것만은 확실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16강 진출에는 물음표를 달았다.
그런 나에게 끊임없이, 집요할 정도로 16강을 이야기해왔다. 꿈이 아니라 현실로 보여주겠다는 약속을 과감하게 던졌다.

시계 바늘은 약속 시간에 늦은 이를 뒤에서 떠밀어 대듯이 빠르게 돌아갔고 느긋하게 일상에서 안주하고 있는 나의 심장에 들어와 박혔다.

60억 세계인이 시선이 박힌 이곳. 반세기 식민지 그늘과 동족의 살육 현장에서 피비린내가 아직 가시지 않은 이곳 이 땅 대한민국이 전 세계 신문 1면에 등장하던 날. 바로 그날이다.

기억하는가? 첫 승이라는 약속을 지키려고 이를 악물고 뛰던 그들을 말이다. 5천년 역사와 조상들의 피로 만들어진 그들의 몸에서 품어져 나오는 '독기'를 말이다. 그 순간 그들이 내건 약속보다는 5천만 국민들과 하나 되어 뛰는 그 벅찬 감동이 심장을 떠뜨릴 것 같았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뿌듯함이고 몸떨림인가.

끝내 이들은 월드컵 4강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그들의 약속인 16강을 넘어서 말이다. 사람들은 열광하고 전 세계는 경악했다. 어떤 이들은 우리를 욕했고, 또 어떤 이들은 경외로운 눈빛으로 가장 화려한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월드컵 4강이라는 성적도 좋지만 그 보다 더 소중한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 작은 돌맹이에 만족해서 정녕 큰 보물을 찾아내지 못하는 우를 범해선 안되겠다. 월드컵 4강의 신화는 작은 돌맹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 역시 전후 세대, 아니 한참 후인 새마을 운동이 막 시작될 무렵에 태어났으니까 어쩜 건방지게 시간을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만은 안다. 결코 우리의 역사가 순탄하지 만은 않았다는 것을.

언제 우리가 이날처럼 모든 국민이 한 자리에 모여 기뻐하고 목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쳤던가. 세대를 초월하고 이념을 초월해서 그냥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같은 목소리를 냈던 적이 있었던가. 기억 못한다. 내 삶이 짧아서가 아니라 보고 듣고 배운 것에 의해서도 그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오직 하나 "대한 독립 만세"의 함성만이 있을 뿐이다.

"오 필승 코리아. 대~ 한민국"은 "대한 독립 만세"와 같은 간절함이 아닐까.

우리는 이제 내일을 이야기하고 있다. 대한민국 축구의 내일을 말이다.
그러나 좀 넓히자. 우리가 오늘 이룩한 것 월드컵 4강 신화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의 하나됨과 뜨거운 민족애가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언제라도 우리는 하나될 수 있음을.

이념과 반목의 그늘을 벗겨내는 날 우리는 더 큰 역사의 무대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지금 행복하다. 아직은 없지만 언젠가 생겨날 나의 아이들에게 해 줄 또 하나의 이야기가 생겨서 말이다. 아이들에게는 어제가 되겠지만 오늘의 그 감격과 기쁨을 그대로 전할 수 있도록 이 흥분과 살떨림을 오래도록 간직할 것이다."

(아이디 구성국의 '그들의 약속을 믿지 않았지만 그들은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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