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선 2차 녹취록'의 눈길을 끄는 대목중 하나가 '홍일-홍걸 갈등설'이다.
최씨는 녹취록 곳곳에서 김대중대통령 장남 김홍일씨와 3남 김홍걸씨 사이에 적잖은 갈등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이들 형제를 둘러싸고 가신 및 권력층인사들이 무리지어 별도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2000년초 정몽구 회장과 정몽헌 회장 사이의 후계싸움, 이른바 '현대사태'가 터졌을 때 세간에서는 이를 '왕자의 난'이라 불렀다. 이같은 시대착오적 갈등은 현대그룹의 위기를 증폭시킨 불행한 결과를 낳았다.
정가에서는 홍일-홍걸 갈등을 정치판의 '왕자의 난'에 비유하고 있다. 아울러 현대사태때 가신들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형제간 갈등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듯, 이번 갈등에도 가신 및 권력층인사들의 상반된 이해관계가 개입되면서 갈등을 증폭시키는 작용을 했던 게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연장선상에서 현재 수감돼 있는 김은성 국정원 제2차장과 권노갑 전 고문 사이의 팽팽한 신경전도 새로이 조명되고 있다.
'왕자의 난'의 진실은 무엇인가.
***김홍일의원, "갈등이 아니라 장남으로서 해야할 일을 했을뿐"**
최근 정가 일각에서는 "김홍걸이 귀국을 거부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특히 최근 김홍일 의원이 국내에서 일방적으로 자신을 폄하하는 해명을 하고 있는 데 대해 김홍걸씨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때문에 내주 중순이 될 것으로 예고된 김홍걸씨의 귀국 및 검찰 출두가 늦어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흘러나오고 있다.
최규선 2차 녹취록이 공개된 지난 7일 이후의 일이다. 김홍일 의원측이 자신이 관련된 부분에 대해 상당 부분 사실임을 인정하고 적극 해명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김의원측이 적극 해명에 나선 대목은 2000년초 김홍걸씨가 최규선등과 사업을 하려 했을 때 이를 극구 말렸다는 대목이다. 김의원측은 8일 이와 관련, "김홍걸이 2000년초 석재사업 등 3개 사업을 하려 시도했던 게 사실"이라며 "대통령 아들이 사업을 한다면 세간의 여론이 나빠질 게 뻔해 장남으로서 사업을 말렸다"고 말했다.
김의원측은 또 연초부터 신병 치료차 미국에 나가있던 김의원이 지난달 귀국시 김홍걸씨와 함께 돌아오려 했으나 실패했다고 덧붙였다. 김홍걸씨와 접촉을 가졌으나, 두 사람 사이가 원만치 않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김홍걸 사업 진출과 관련된 김의원의 해명은 나름대로 강한 설득력을 갖는다. 대통령 아들이 직접 일선에 나서 새로 사업을 벌인다는 것은 누가 보기에도 모양새가 좋은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2000년 6월 청와대 가족회의때 김홍일 의원은 김홍걸씨의 사업 시작에 극구반대했고, 김대통령도 이 의견에 따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최규선, "권력투쟁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김홍일의원이 사업을 말린 배경에 대한 최규선의 해석은 다르다. 그는 일종의 권력투쟁에 따른 '견제'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씨가 녹취록과 별도로 A4용지에 작성했다는 그의 자필 메모에는 이같은 시각이 곳곳에 노정돼 있다.
"김홍걸씨와 나는 2000년 2월 사우디아라비아 알 왈리드 왕자로부터 10억달러를 투자 받아 벤처투자 회사를 만들기로 했다. 우리의 회사는 사장이 내가 되고, 회장은 알 왈리드, 홍걸씨는 애널리스트가 되기로 합의했었다. 대통령은 알 왈리드 왕자의 서신과 홍걸씨의 이야기를 듣고 회사 설립을 승낙했고 2000년 7월 알 왈리드 왕자 방한에 맞춰 회사설립을 발표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김홍일 의원이 사생결단으로 반대했다. 김홍일 의원은 현 민주당 최고위원 K씨, 현 공기업 사장 K씨 등을 앞세워 나를 협박했다. 특히 최고위원 K씨는 그해 5월 김희완씨와 나를 압구정동의 한 카페로 불러 "네가 강행하면 나라가 절단 난다. 홍걸씨도 청와대를 나와 버려 어르신, 여사님 고충이 크다"고 말했다. 김홍일 의원은 권노갑씨를 만나 "아저씨, 제발 최규선이 보고 홍걸이 회사 하지 말라고 말해주세요"라고 말했다. 이것은 권 고문이 나에게 전해준 말이다. 특히 김은성 국정원 2차장은 권 고문에게 나와 홍걸씨에 대한 온갖 거짓정보를 보고했다.
당시 갈등구조는 나, 권노갑, 김홍걸, 이희호 여사를 한 축으로 하고 김홍일, 김은성, 정성홍이 반대축이었다. 김은성은 2000년 7월8일 두차례에 걸쳐 나를 양재동 자신의 안가로 불러, 온갖 협박을 했다. 이후 위의 회사설립 계획은 무산됐지만 나와 홍걸씨는 형제 이상으로 똘똘 뭉쳤다."
'최규선 2차 녹취록'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그(김홍걸씨)도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홍걸이도 형들에게 치여가지고 한국에 나와 있기도 싫다고 했습니다. 홍걸이 말을 듣고 이권을 들어줄 어느 고위 공직자도 없었을 겁니다. 그들도 다 알고 있고, 홍일이, 홍업이 눈치보느라 홍걸이를 도와주겠습니까. 홍걸이도 형에 대한 불만을 많이 얘기했구요."
"나는 김박(김홍걸씨)이 안쓰럽고, 나도 불쌍한 놈이었고, 김박도 거기서 소외되었던 사람 아닙니까. 우리가 서로 끌어안고 위로하고 위안이 되면서 왔는데, 홍일이 형이 또 서울에 들어옵니다. 어떤 장난을 칠지 몰라요. 만약에 이런 장난이 이루어지면 공개됩니다. 모든 게 공개될 겁니다."
***2000년 6월 청와대 가족회의후 갈등 증폭**
최규선의 이같은 주장은 상당부분 자의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2000년초 최규선이 알 왈리드 사우디왕자와 김홍걸을 끌어들여 추진하고자 했던 벤처투자회사는 당시 증시상황을 고려할 때, 최규선 입장에서 보면 성사만 되면 수천억, 수조원을 거머쥘 수 있는 일확천금의 기회로 비쳤을 게 분명하다.
최씨가 벤처투자 사업을 추진하던 2000년 2월만 해도 코스닥시장은 '묻지마 투자' 열기가 대단했었다. 만약 이같은 상황에 알 왈리드라는 세계적 투자가로부터 10억달러라는 거액을 유치하면 천문학적 거액을 만질 수 있으리라는 환상이 가능했던 시기였다. 묻지마 투자의 진원지였던 미국의 나스닥이 급락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몇달 뒤인 2000년 5월의 일이다. 따라서 독자적으로 거액을 벌 수 있는 사업을 김홍일의원이 막는다는 것은 최규선이나 김홍걸 입장에서 봤을 때 '견제'로 비쳤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김홍걸 입장에서 보면 국내에서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던 김홍일, 김홍업 형들과는 달리 미국에서 변변한 직업 하나없이 지내야 했던 자신이 모처럼 혼자 힘으로 사업을 하려는 데 견제를 받고 있다는 억하심정도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사업무산후 나와 김홍걸은 형제 이상으로 똘똘 뭉쳤다"는 최규선의 증언은 이같은 추정을 뒷받침해주는 한 증거다.
그러나 입장을 바꿔 김홍일의원이나 청와대 등의 입장에서 본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김의원측 주장대로 만약 대통령 아들인 김홍걸씨가 벤처투자계에 뛰어들었다면 야당을 비롯한 여론의 따가운 비판을 면하기 힘들었을 게 명약관화하다. '대통령이 벤처대국 운운한 게 결국은 아들을 도우려 한 게 아니냐'는 식의 비난이 쏟아질 게 분명했다. 따라서 김홍일의원의 저지는 논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정당한 것이었다 할 것이다.
문제는 그러나 그 이후 과정에서 목격된다. 김홍걸 사업건은 2000년 6월 청와대 가족회의에서 부결됐다. 또한 당시는 이미 주가가 폭락하던 시점이었다. 상식적으로도 벤처투자 사업에 뛰어들 때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후 김홍걸이 보인 모습은 이같은 상식과 어긋하는 것이었다.
최근 드러난 포스코의 타이거풀스 주식 고가 매입 의혹은 청와대 가족회의후 김홍걸의 '독자행보'를 보여준다. 포스코 유상부 회장과 김홍걸, 최규선이 포스코 영빈관에서 회동한 날자는 2000년 7월31일이다. 김홍걸은 이 자리에서 벤처사업 자문을 구했다. 또한 이들이 만날 때 이희호 여사는 자신의 글씨가 새겨진 도자기를 유회장에게 선물했다. 어떤 형태로든 이 여사가 자신의 유일한 친 혈육인 김홍걸씨의 사업을 돕기 위해 관여했다는 의혹을 낳기에 충분한 증거다.
김홍걸은 청와대 가족회의후 미국에서 귀국하더라도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아 대통령부부를 애태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홍일-홍걸 갈등이 얼마나 심각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홍걸의 친 어머니인 이희호여사가 어떻게 해서든 아들의 돌아선 마음을 돌리기 위해 노심초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규선이 자필 메모에서 "당시 갈등구조는 나, 권노갑, 김홍걸, 이희호 여사를 한 축으로 하고 김홍일, 김은성, 정성홍이 반대축이었다"고 주장한 대목이 비록 과장되긴 했으나 전혀 사실무근만도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것이다.
***권노갑과 김은성 간의 치열한 암투**
그러면 다음 관심사는 과연 당시 갈등구조가 권노갑 고문, 김홍걸, 최규선, 이희호 여사를 한 축으로 하고 김홍일 의원, 김은성 국정원 2차장, 정성홍 경제과장을 다른 한 축으로 하는 대립각을 형성하고 있었는지이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권노갑 고문으로 대표되는 동교동 구파와 김홍일 의원 세력 사이에 전선이 형성돼 있었고, 이같은 갈등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정이 가능하다.
실제로 지난해 3대 게이트가 터지면서 이른바 '쓰리 K(3K)'로 상징되는 권력실세 연루설이 제기됐을 때, 정가 일각에서는 권노갑 고문과 김은성 국정원 2차장 사이의 갈등설이 나돌았다.
지난해 12월24일 김은성 2차장이 진승현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금감원 감사를 중단시키고 그후 진씨 도피를 도운 혐의로 구속됐다. 구속되기 일주일전 김차장은 지병을 이유로 병원에 입원하면서까지 구속을 피하려 했으나 끝내 구속을 피할 수 없었다. 이와 함께 김차장의 오른팔이던 정성홍 국정원 경제과장도 1억원을 받고 진승현씨를 김홍일의원에게 소개하는 등 진씨를 도운 혐의로 구속됐다. 이들은 지난 1월 실형선고를 받았다. 이례적으로 신속한 법적 조처였다.
김은성 차장 등은 이 과정에 강력저항했다.
김차장 측근인 정성홍 경제과장은 지난해 12월 검찰조사과정에 '특수사업비'를 언급, 동교동계를 바짝 긴장케 만들었다. 지난 2000년 4.13 총선직전에 고위인사로부터 특수사업비를 만들라는 지시를 받고 진승현으로부터 2억원을 받아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이다. 정과장이 말한 특수사업비란 4.13 총선자금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동교동계가 정과장 발언에 바짝 긴장한 것은 4.13총선 자금조달을 총책임맡은 인사는 다름아닌 권노갑 고문이었기 때문이다.
이어 김은성 차장도 권노갑 고문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김차장은 지난 4월21일 재판장에서 보내는 탄원서 형식을 빌어 권노갑, 김홍걸, 최규선 3인의 깊은 유착관계를 폭로했다.
"최규선에 대해서는 2년전(2000년)에 이미 문제점을 종합해 청와대에 보고한 바 있고, 대통령께서는 국정원이 책임지고 최규선을 조치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김홍걸씨나 권노갑씨는 제가 허위정보를 만들어 유능한 사람을 죽이려 한다고 임동원 원장님과 저에게 노발대발했습니다. 심지어 차장을 바꿔야 한다고까지 하여 제가 당시 임원장께 사의를 표명하고 권노갑씨와 김홍걸씨를 만나 담판까지 지은 적이 있습니다.
작년에는 무기구입사업까지 관여하여 제가 강력히 견제하였더니 김홍걸씨와 최규선은 청와대 민정과 검찰을 시켜 제 뒷조사까지 한 바 있습니다."
김차장의 이 탄원서는 상당 부분 사실에 기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제로 최규선도 2차 녹취록에서 "특히 김은성 국정원 2차장은 권 고문에게 나와 홍걸씨에 대한 온갖 거짓정보를 보고했다"고 주장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김차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탄원서에서 지금 세간을 뒤흔들고 있는 이른바 '파크뷰 특혜분양' 사실을 폭로, 동교동계를 압박했다.
"지난해 4월 분당 파크뷰 아파트가 1백대 1로 분양되었는데 고급공무원, 판검사, 국정원 간부 등 1백30여 가구가 특혜분양되었습니다. 저는 극비리에 해당자들에게 통고해 해약시켰습니다. 사회적 물의를 최소화하기 위한 저의 판단이었습니다."
파크뷰 특혜분양은 최근 조사과정에 동교동계의 거목인 김옥두의원이 연루되는 등 파장이 크게 확산되고 있다.
이렇게 김차장과 권노갑 고문간 알력이 계속되다가, 지난 3일 권고문은 마침내 5천만원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권고문의 구속 역시 김차장이 진승현에 대한 금감원 로비를 부탁하는 대가로, 김차장이 5천만원을 대신 전해줬다는 진술에 기초한 것이었다. 권고문의 구속 소식을 접한 동교동 구파는 "진승현이 노래부르고 김은성이 장단 맞추고 검찰이 춤을 추고 있다"고 강력반발했으나 별무소용이었다.
결국 김은성 차장에 의해 권노갑이란 거목이 찍혀넘어간 꼴이다.
***본질은 권노갑과 김홍일 갈등?**
이같은 권노갑-김은성 갈등과 관련, 여러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개중에는 김은성 차장이 구속으로 인해 여러가지 개인사적 비극을 경험하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병보석 등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데 대한 권력층 전반에 대한 반발이라는 해석도 있다. 실제로 김차장은 탄원서에서 "제 딸이 결혼식을 끝내고 당일 파혼이라는 엄청난 화를 입고 심장병과 노이로제로 폐인이 됐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다른 일각에서는 이번 두 사람의 갈등을 김차장의 후견인격인 김홍일의원과 권고문간의 파워게임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여권내부 동향에 밝은 한 관계자는 "2000년 4.13 총선과정에 목포 공천 건을 둘러싸고 권노갑 고문과 김홍일 의원간에 상당한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대통령의 지시로 96년 내심 눈물을 머금고 자신의 지역구를 김홍일 의원에게 물려주었던 권 고문은 2000년 선거에서는 몸이 불편한 김 의원이 전국구로 빠지는 대신 그 자리를 자신의 아들에게 공천해주고 싶어했다 한다. 자신의 가문을 정치명문으로 만들고 싶어했던 셈이다. 그러나 김의원이 이 제안을 거절하면서 권씨와 김홍일의원 사이에 틈새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특히 이같은 갈등은 권씨가 지난해 '대세론'을 앞세워 이인제 후보를 민주당내 차기 대권주자로 강력 옹호하는 과정에 한층 증폭된 것으로 알려진다. 일설에는 권씨와 이 후보가 차기정권 재창출을 협의하는 과정에 "정권 재창출을 위해선 DJ를 세번은 밟고 올라서야 할 것"이라는 논의가 있었고, 이 사실이 권력 상층부로 알려지면서 권씨와 DJ 일가 사이는 회복불능 상태로 벌어졌다고 한다
요컨대 작금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의 본질은 권력의 향배까지도 포함하는 권고문과 김홍일의원간 오랜 갈등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최성규 도피의 배후는?**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앞으로 시간이 답해줄 것이다. 진실은 언젠가는 반드시 밝혀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한가지 짚어야 할 대목은 최규선의 2차 녹취록 중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주장의 사실여부다.
"최성규씨에겐 김홍일 의원이 후견인입니다. (김 의원의) 국회 보좌관이었던 이만영 비서관과는 아주 막역한 사이입니다. 그래서 이만영 비서관은 권력핵심의 돌아가는 내용도 다른 수석 비서관들보다 잘 파악할 수 있고, 상대하는 사람들 또한 일반 비서관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최규선의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현재 DJ정부의 최대의혹인 최성규 전 경찰청 특수수사과장의 미국도피건과 관련해 권력핵심부가 깊숙이 관여한 게 아니냐는 중대한 의혹이 제기된다.
앞으로 이명재 검찰이 반드시 규명해야 할 핵심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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