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들어 '규제 샌드박스 허용' 1호가 한 달 만에 선정됐다. 하지만 첫 사례 4건 가운데 3건은 안전, 윤리 등의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어 '졸속 허용' 논란이 제기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
문 대통령은 12일 국무회의에서 "규제 샌드박스 제도 시행 한 달이 안 돼서 첫 승인 허가가 난 것은 규제 혁신에 대한 기업들의 높은 기대와 정부의 지원 의지가 손뼉을 마주친 결과"라며 속도전을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규제 샌드박스는 혁신 경제의 실험장"이라며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 건강에 위해가 되지 않는 한 선 허용, 후 규제하자는 것이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11일 허용한 규제 샌드박스 안건 1호는 △국회 등 도심에 수소충전소 설치 허용 △비의료기관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유전자 검사 범위 확대 △버스에 LED 패널을 부착해 디지털 광고 허용 △전기차 충전 콘센트 임시 허가 등 네 가지이다. 이 중 전기차 충전 콘센트 사업 허용을 제외한 나머지 세 가지 사항은 이해관계가 충돌하거나(수소차 충전소), 윤리 문제가 불거지거나(유전자 검사), 안전 문제가 있는(디지털 버스 광고) 등 민감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신청한 도심 5개 지역 수소차 충전소의 경우, 지역 주민들이 설치를 기피하는 문제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수소라고 하면 수소 폭탄을 연상하여 위험하게 여기는 분이 많은데, 알고 보면 그렇지 않다"고 직접 안전성 홍보에 나서고 있지만, 주민들이 의견 수렴 절차를 요구할 가능성이 남는다. 수소차 충전소 설치비는 30억 원~35억 원에 달하지만, 정부가 한 곳당 15억 원씩 현대차를 사실상 세금으로 지원한다는 점도 논쟁거리다.
주식회사 마크로젠이 시도하는 유전자 검사 확대는 개인 정보 보안이나 의료 영리화 문제가 있다. 정부는 현재 체질량지수, 콜레스테롤, 혈압, 탈모, 노화, 피부 탄력, 비타민C 농도, 카페인 대사 등에 한해 유전자 검사를 허용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전립선암, 대장암, 위암, 폐암, 간암, 파킨슨병, 뇌졸중, 골관절염, 관상동맥질환 등 13개 질환으로 검사 허용 범위가 늘어난다.
버스에 LED 패널을 부착해 디지털(동영상) 광고를 허용하는 안은 '교통 안전'에 대한 우려로 그동안 허용되지 않았다. 버스 광고가 다른 운전자나 보행자의 주의를 산만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규제 혁신에는 이해관계나 가치의 충돌이 따르고, 개별 사례에 대해서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논란만 반복해서는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다"고 반박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허용 사례들에 대해 "나는 솔직히 이번 규제 샌드박스 승인 사례들을 보면서 지금까지 우리 나라에서 이런 정도의 사업이나 제품조차 허용되지 않아서 규제 샌드박스라는 특별한 제도가 필요했던 것인지 안타깝게 여겨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경제계에서는 더 대규모의, 더 신속한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규제 샌드박스 심의 절차가 신청 기업 입장에서 또 다른 장벽이 되지 않도록 관계 부처가 친절한 안내자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며 "기업의 신청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정부가 먼저 규제 샌드박스 사업을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관계 부처에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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