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업계의 대부 이민화(49)의 '벤처연방 신화'가 붕괴했다.
한때 회사 자산가치를 3조원대까지 키웠던 이민화의 메디슨 그룹이 29일 파산, 또다시 '무(無)의 상태'로 돌아간 것이다.
메디슨은 이날 조흥은행에 돌아온 기업어음 만기도래분 등 22억원을 결제 못해 최종 부도처리됐다. 메디슨의 총 차입금은 28일 현재 3천82억원. 이 가운데 지급보증 등을 제외한 단순차입금은 2천4백72억원으로 단기차입금만 1천7백90억원에 달했다. 메디슨이 막판에 얼마나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려 왔는가를 보여주는 증거다.
***금융을 몰랐던 벤처의 말로**
메디슨 파산 소식은 아직까지 뚜렷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벤처업계에 또하나의 암울한 소식이었다.
이민화 전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벤처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민화 회장이 28일 저녁 몇몇 친구들과 만나 부도 사실을 알리며 이제 모든 것을 버리고 초심(初心)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며 "결벽증이라 할 정도로 매사에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려한 이회장의 좌절은 남의 일로 보이지 않았다"고 벤처업계의 우울한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아르헨티나같은 국가가 무너지는 데에는 40년이 걸렸지만 기업이 쓰러지는 데는 2년이면 충분하다는 사실을 절감할 수 있었다"며 "메디슨의 몰락은 금융을 몰랐던 벤처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의 말 가운데 '금융을 몰랐던 벤처의 말로'라는 대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메디슨의 흥망성쇠를 설명하는 데 있어 이보다 정확한 지적은 없기 때문이다.
***벤처업계의 선구자 이민화**
이민화 전회장은 벤처업계의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그는 국내에 벤처라는 단어조차 낯설던 시절인 지난 85년 자신이 연구원으로 재직하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AIST)의 초음파연구팀에서 개발한 초음파 진단기를 무기로 후배 3명과 함께 메디슨을 설립했다.
메디슨의 초음파 진단기는 세계 의료기시장에서도 인정받아 성장을 거듭했다.
메디슨 계열사의 의료기기 생산액은 국내 총 의료기기 생산의 50%, 총수출액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메디슨은 국내 의료기기 부문에서 독보적 성공을 거두었다.
이민화 전회장은 95년 벤처의 불모지였던 한국에 벤처기업협회를 설립해 벤처업계의 연대와 기반 확충을 위해 앞장서 일한 주역이기도 했다.
벤처기업협회장 재임시 그는 스톡옵션, 벤처기업 특별법, 벤처빌딩, 실험실 창업제도, 코스닥 창설, 프라이머리 CB0(채권담보부증권) 제도 등 각종 벤처활성화 정책을 마련해 벤처산업 약진의 토대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IMF위기직후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될 위기에 처한 아래아한글살리기운동, 벤처나눔 운동, 한국기술거래소 설립 등 많은 일을 했고, 이 공을 인정받아 지난 99년에는 아시아위크지에 의해 '아시아 밀레니엄 리더 20인'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진정한 벤처인이었고, 젊은 벤처인들의 우상이었다.
***평화은행, 중앙종금 인수 추진**
그러나 벤처기업들에 대한 '묻지마 투자'가 진행된 99년부터 이민화의 '벤처정신'이 변질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해일처럼 몰려드는 자금홍수에 휘말려 본연의 벤처정신을 잃고 문어발식 기업확장에 몰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민화는 이때부터 메디슨을 모기업으로 하는 계열사 확장에 나서는 한편,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벤처기업들에까지 손을 뻗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한때 메디슨 그룹은 계열사 24사를 거느리고 자산가치가 3조원에 달하는 '벤처 재벌'로 성장했고, 이와 별개로 투자한 기업 숫자만 40여개사에 달할 정도로 팽창을 거듭했다.
이 과정에 그는 자신의 뿌리인 메디슨의 기술개발을 도외시했다.
그결과 99년 메디슨은 신제품을 개발,생산하지 못해 매출이 급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회장은 이를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제품 몇개를 더팔아 몇푼을 버는 것보다는 계열사 하나를 더 만드는 것이 돈을 버는 데 더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그결과 메디슨그룹은 금융권 부채가 그룹 전체의 매출액보다 많아지는 위기구조에 함몰됐다.
2000년 4월부터 상황이 급변했다.
미국의 나스닥 거품 붕괴를 시작으로 한국의 코스닥시장도 폭락에 폭락을 거듭했다.
매출보다 부채가 많은 메디슨그룹의 위기구조가 문제점으로 부각됐다. 당연히 은행등 금융권은 메디슨에 대한 대출을 꺼리기 시작했다.
심각한 위기국면의 도래였다.
이회장은 이때 하나의 해법(?)을 생각해냈다.
유동성이 문제면, 금융기관을 인수해 서구식 투자은행 또는 벤처캐피탈을 만들면 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었다. 일종의 '사(私)금고적 발상' 이었다.
이때부터 이회장은 부실 금융기관 인수에 적극 나섰다.
2000년 7월 손을 댄 곳은 중앙종금이었다. 중앙종금은 당시 부도상태로 새로운 주인을 찾고 있었다. 이회장은 중앙종금에 2백억원을 출자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주주들의 거센 반대로 실패로 돌아갔다.
그다음 그가 인수협상을 벌인 곳은 평화은행이었다.
그는 평화은행의 김경우 당시 행장을 만나 당시 주당 1천원대에서 헤매고 있던 평화은행 주식을 액면가 5천원에 벤처기업들이 사들이겠다는 화끈한 제안을 했다. 당연히 김행장은 큰 관심을 보였고, 액면가로 매각할 경우 평화은행에 투입한 공적자금을 손실없이 회수할 수 있는 정부도 호의적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평화은행 인수는 그가 회장으로 있던 벤처기업협회 산하 벤처기업들의 자금난이 심화되면서 현실화될 수 없었다.
***메디슨 부도는 벤처업계의 IMF사태**
2001년 들어서도 자금난은 더욱 심화됐다.
그는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국내외 계열사들의 지분을 매각하고, 심지어는 자신의 강남 대치동 사옥까지 매각
하는 등 필사적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한번 '잃어버린 시장의 신뢰'는 돌이킬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지난해 10월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메디슨 회장에서 이사회의장 직으로 물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디슨은 활로를 찾지 못했고, 마침내 1월29일 최종부도를 내고 공중분해될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벤처정신을 잃고, 일확천금을 노린 투기장에 뛰어든 결과였다.
채권단의 한 임원은 이민화 신화의 붕괴를 이렇게 분석했다.
"지난 2000년도 일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메디슨은 잘 나가던 국내 벤처재벌의 대명사였다.
하루는 3백억원을 대출해달라고 왔다. 여신규정에 따라 메디슨의 장부를 까보았다. '으악' 소리가 절로 날 정도였다. 말이 벤처기업이지, 일종의 투자금융회사였다.
매출액보다 부채가 많았고, 매출액보다 투자액이 많았다.
'이 회사는 아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런 식으로 회사를 운영하다가는 외부상황이 조금만 나빠져도 곧바로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IMF때 제조업 재벌들이 뼈저리게 경험했던 교훈이다.
제조업 재벌의 대안이라고 자처하던 벤처 재벌들의 최대실수는 IMF사태의 교훈을 망각했다는 사실이다. 유동성 위기는 제조업 재벌에게나 해당되지, 자신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졌던 것이다.
메디슨 그룹의 부도는 벤처업계의 IMF사태이다.
이민화 회장은 결국 벤처로 일어서 투기로 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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