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어 올해도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와 신년기자 회견에서 부동산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부동산에 관한 문재인 대통령의 태도는 영혼의 단짝이라 할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참여정부 당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동산에 관해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고 부동산 문제의 원인과 해법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있었다. 부동산 투기와 정면대결을 벌였던 고 노 전 대통령이 한 말 중에 지금까지 회자되는 명언이 "강남이 불패면 대통령도 불패다"라는 것이다.
틈만나면 부동산에 대해 발언했던 고 노 전 대통령과 달리 문재인 대통령은 부동산의 'ㅂ'자도 꺼내지 않는 모양새다. 이유를 모르니 합리적으로 추정을 할 수 밖에 없다. 퍼뜩 드는 생각이 문 대통령이 부동산을 잘 몰라서 발언을 극히 조심하는 것 아닐까하는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처럼 중대한 영역에 대해 대통령이 정통하지 않다고 해서 신년사나 신년기자 회견시에 함구하는 건 정말 이상하다.
그 보단 청와대가 정무적 판단에 근거해 의도적으로 부동산 이슈를 외면했을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즉, 현 청와대 참모들이 참여정부 당시 고 노 전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서 부동산 투기와 전쟁을 벌인 것이 '득' 보다 '실'이 훨씬 컸다는 판단 아래 문 대통령이 부동산에 관해서는 일체의 발언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진언을 했고, 이를 문 대통령이 수용했을 가능성이 더 큰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그 해 정부의 정책기조를 주권자들에게 설명하는 신년사 및 신년 기자회견시에 부동산에 대해 일체 언급하지 않는 이유를 내가 정확히 알 길은 없다. 다만 부동산을 곧 경제로 인식하는 시민들 중 부동산이 없는 시민들은 부동산의 'ㅂ'자도 꺼내지 않는 문 대통령을 곱게 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작년 지방선거 이후 하락하기 시작한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은 여름과 가을을 거치면서 수직으로 곤두박질했다. 그 시기는 7월 초부터 9월에 걸쳐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 비이성적 폭등을 거듭한 기간과 일치한다. 서울의 아파트 가격 폭등을 촉발시킨 결정적 계기는 정부의 종부세 개혁 후퇴 발표였다. 나는 대통령 지지율을 폭락시킨 가장 큰 원인이 '최저임금 인상'이 아니라 '부동산 가격 폭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정이 이렇다면 올해 신년사와 신년기자회견시에는 문 대통령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로 고통받고 실망한 시민들을 곡진히 위로하고, 정부의 과오를 겸허히 인정한 후, 부동산공화국과 정면대결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는 것이 백번 옳았다. 모두 알다시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부동산의 소유 여부 및 소유한 부동산의 위치가 신분을 결정짓는 나라가 된 대한민국에서,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 전임 정부들 보다 더 폭등한 상황에, 부동산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대통령을 보는 시민들은 대통령이 현실과 서민들의 삶을 너무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래서 문 대통령을 우리들의 대통령이라고 믿고 지지하는 걸 주저하게 되지 않을까? 내가 염려하는 건 오직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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