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여자 있는 건물, 포클레인 덮쳐"…공포의 용역 다원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여자 있는 건물, 포클레인 덮쳐"…공포의 용역 다원

'1000억대 횡령' 다원그룹 회장 체포로 돌아본 폭력 철거의 역사

"여자들만 있던 가게 건물을 포클레인으로 허물고 덮쳐 (여자들이) 돌더미에 깔리고 대못이 박혀 비명을 지르는데 철거 용역들은 폭력으로 끌어내려고만 했습니다. 결국 먼저 끌려나온 식구들이 달려들어 돌더미를 파헤쳐 간신히 빠져나왔습니다만, 거의 실신 상태였고, 입원해 봉합 수술을 했습니다."

지난 2011년 11월 11일, 북아현동 뉴타운1-3구역에서 곱창집을 운영하던 '전직 사장님'이 25일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철거업체 다원그룹 피해자 증언 대회'에서 발표한 피해 사례다. 1980-1990년대 악명을 떨쳤던 '철거 폭력'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도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추진한 뉴타운 등 재개발 사업의 이면에서다. 지금도 서울 곳곳은 제2의 용산 참사가 터질 수도 있는 화약고다.

조직적 철거 폭력의 역사와 다원그룹의 뿌리

이 같은 철거 폭력과 관련해 다원그룹이라는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며 주목받고 있다. 재개발 사업장에서 철거 등을 대행해 왔던 다원그룹 이금열 회장이 1000억 원대 횡령으로 6개월째 도피하다 지난 22일 검찰에 의해 붙잡혔다는 소식 때문이다. 이 회장에서 시작된 '철거 비리' 의혹이 이명박 정부 시절 정관계 비리 의혹인 이른바 '함바 비리' 급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 비리보다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철거 폭력의 구조적 작동 방식과 이를 근절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이다. 용산 참사 사례처럼, 철거 용역 업체가 세입자 등 원주민들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고 자극하는 사례는 현재 진행형이다.

▲ 2009년 1월 서울시 용산 재개발 보상 대책에 반발하던 철거민과 경찰, 철거 용역 직원 등이 대치하던 중 화재로 철거민 5명, 경찰 1명이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뉴시스

조직적인 철거 폭력의 역사는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전두환 정부와 서울시는 1982년 '불량 주택 지역' 정비 방안을 내놓고 '합동 재개발 방식' 활성화 대책을 쏟아낸다. 1983년부터는 대한주택공사(현 LH) 등 정부 산하 공기업이 본격적으로 합동 재개발 방식 사업에 뛰어든다. 지역민들이 재개발조합을 만들면 서울시는 건설사를 선정해주고 각종 혜택을 부여하는 등, 도시 재개발을 집중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못사는 한국'이 아니라 '잘사는 한국'을 세계인에게 보여주겠다는 취지로 벌인 '재개발판'에서 일부 사람들은 30평짜리 땅을 내놓고 21평짜리 아파트 분양권을 받아갈 수 있었지만, 막대한 이윤의 대부분은 당시 재벌 건설사들이 가져갔다. 건설사를 거느린 재벌 기업들이 서울 시내 금싸라기 땅을 꿰차고 거대한 빌딩을 올리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도시 정비'를 위해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았다. 정부는 합동 재개발 방식을 무작정 밀어붙였다. 1983년에만 서울 지역에서 구로, 천호, 청운, 옥수, 신당 등 13개 구역이 합동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됐다. 무리한 추진과 허술한 제도의 틈새를 비집고 각종 편법, 탈법, 불법이 판을 치기 시작했다. 1988년 열린 5공 청문회에서 여야 합의로 제출된 진상 조사 리스트에는 '철거 재개발 관련 비리'가 올라왔다. "빈민 지역의 전면적인 철거와 대규모 도시 재개발 사업으로 철거민들을 도시로 방황케 했고 이권 개입을 통해 권력 측근들은 부를 축적"한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도시 미관 정비' 등의 이름으로 도시 곳곳에서 철거 폭력이 자행됐고, 급기야 폭력배 출신들이 참여하는 철거 전문 업체가 등장하게 된다. 이들은 재벌 기업과 철거민 사이에 끼어들었다. 재벌 기업에는 '윤활유'가 됐고 철거민들에게는 '악몽'이 됐다.

1980년대 후반 서울 재개발 철거판에서 어슬렁거리던 혈기 왕성한 10대 말단 직원이 있었다. 그가 바로 이금열 회장이다.

철거 용역 회사의 시초는 1986년 12월 설립된 입산개발로 알려져 있다. 철거업이라는 '블루오션'에 뛰어든 입산개발은 1989년 8월 언론에 등장한다. 서총련 소속 대학생 20여 명이 서울 동작구 사당2동 재개발 지역 철거 현장 사무소의 입산개발 용역 직원들을 습격한 사건이었다. 당시 폭력적이고 무자비한 철거 방식으로 악명을 떨치던 입산개발 소속 용역들은 흥분한 나머지 "대학생들이 세입자와 짜고 공격했다"며 세입자들을 끌어내 집단 구타를 했다고 한다.

1990년, 입산개발 출신들이 나와서 만든 회사가 적준토건(이하 적준)이다. 적준은 설립과 동시에 악명을 날리며 1990년대 중반부터는 재개발 지역 철거 업무를 독점하다시피 했다. 이금열 회장은 적준에서 활동하다 적준이 1998년 다원그룹으로 바뀌면서 다원그룹의 실세가 된다. 당시 이금열 회장의 나이는 불과 28세였다.

1998년 '다원건설 사법 처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펴낸 '다원건설(구 적준용역) 철거 범죄 보고서'는 철거 업체의 메커니즘을 이렇게 분석했다.

"적준의 성공으로 조직폭력배들은 철거 용역 회사라는 합법적인 사업을 통해 영리를 추구할 목적으로 이를 위해 자신들의 조직을 활용하여 지역 깡패들을 끌어들여 철거 회사를 만들어간다. 적준이나 입산 등지에서 일을 배운 폭력배들이 동네 건달들을 모아 한탕을 노리며 신생 용역사를 설립하여 조합과 결탁하게 되는 것(…)."

이원호 '용산 참사 진상 규명 및 재개발 제도 개선 위원회' 사무국장은 "현재 개발 현장에 나타나는 철거 용역 업체들은 대부분 입산과 적준의 주요 임원들이 분화해 세운 업체들"이라며 "'비계, 구조물 해체 공사업'이라고 하는 철거업 관련 도급 순위 1위인 다원E&I는 구 적준용역이고, 도급 2~3위권인 참마루건설은 다원에서 분화했으며, 용산 4구역에서 (용산 참사) 문제를 일으킨 호람건설은 다원에서 분화한 참마루에서 다시 분화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 다원은 2013년 7월 19일 현재 서울 시내 25개 재개발 정비 구역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박세열)

현재 서울 지역 재개발 현장을 섭렵하고 있는 업체는 다원, 참마루, 삼오진, 유에스, 호람, 대길공영, 비조, 태형E&C, 세경D&C, 우진미래로 등이다. 이들의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입산개발이 나온다는 게 이원호 사무국장의 주장이다.

1000억 원대 횡령 혐의를 받고 도피하다 체포된 이금열 회장이 운영하는 다원그룹은 13개 계열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가족 기업'으로도 불린다. "폭력 조직에서처럼 형과 아우의 관계로 맺어져 사실상 족벌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모습을 비꼰 것이다. 실제 다원그룹의 주요 계열사를 살펴보면 주요 임원들이 서로 긴밀하게 엮여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체포된 이금열 회장은 새날의 주요 주주 명단과 새날C&P 주주, 다원E&C 임원 명단 등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회장은 다원E&C, 새날 등을 설립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회장의 동생인 이중열 회장은 다원E&C 공동대표이사, 다원환경 공동대표이사, 다원E&I 대표이사 등에 이름을 올렸다. 박건호 씨는 다원E&I 주요 주주며 다원환경 공동대표이사다. 이들 계열사의 주주 및 주요 임원 명단에는 한 명이 두세 개의 직함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다원은 2013년 7월 19일 현재 서울 시내 25개 재개발 정비 구역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다원E&C의 경우 2011년에는 약 220억 원, 2012년에는 약 12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철거 업체의 특성상 재개발 사업 등 일감이 있을 때 매출이 크게 뛰는 탓이다. 시민단체 등에서는 다원그룹의 1년 매출액을 약 1000억 원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 철거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사진은 홍대역 인근 거리에서, 마포구청에서 고용한 용역 직원들이 노점상 정비를 위해 포장마차 철거를 시도하자 한 노점 상인이 오열하는 모습(2009년 12월 18일). ⓒ연합뉴스

조폭식 '가족 기업' 철거 용역 업체가 작동하는 방식은?

다원과 같은 철거 용역과 노동 현장에 들어가는 용역은 비슷한 일을 하는 것 같지만, 다른 방식의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지난해 컨텍터스라는 경비 용역 업체의 폭력 사태가 발생하면서 용역 업체의 실태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졌지만, 용산 참사로 새삼 불거졌던 철거 용역 업체 실태는 비교적 덜 주목을 받았던 게 사실이다.

이원호 사무국장은 "노동 현장에서 나타나는 용역 업체들이 경비 업무를 하는 경비 업체라면 재개발 현장에 들어오는 용역 업체는 철거 업무를 하는 건설 업체들"이라고 설명했다. 즉 재개발 현장에서 사업을 하는 업체는 '경비업(경찰청 관할)'을 주요 업무로 하는 것이 아니라 '비계, 구조물 해체 공사업' 면허를 가진 '철거업(국토교통부 관할)'을 주요 업무로 한다. 그러나 철거 용역 업체도 '경비'를 한다. 철거업을 기본으로 하지만, 경비업 면허를 가진 별도 계열사를 운영하는 방식이다. 즉 철거 회사 산하에 있는 경비 회사 역시 철거 회사와 함께 움직이게 된다.

이들의 평소 업무나 행태는 "양아치"에 가깝다고 한다. 이원호 사무국장은 "지역에 이주관리사무소를 만들어 현장을 어슬렁거리며 이주를 종용하는 현장 관리 직원은 '함바' 등의 이권을 노린 지역 폭력배들, 혹은 '양아치'들이 맡게 된다. 철거업체의 오너는 직접 이들(폭력배 등)의 매개체가 돼 움직인다. 용산 참사가 있었던 용산 4구역의 경우도 용역 업체는 '호람'과 '현암'이었으나 실질적으로 지역 이주관리사무소에 상주하며 주민들을 괴롭히던 이들은 원래 그 용산 지역의 폭력배들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세입자나 철거민들을 이주시키고 조합이나 기업으로부터 커미션을 받는다. 이날 증언 대회에 참석한 김포 신곡6지구 상공철대위 조규승 위원장은 "욕을 하도 듣다보니 만성이 돼 나도 욕을 곧잘 하지만, 사무소에 있는 (철거 용역 업체) 직원들의 그런 상스러운 욕은 처음 들어봤다. 자기 어머니·할머니뻘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듣도 보도 못한 쌍욕을 한다"고 말했다. 그런 방식으로 겁을 줘 세입자 등 철거민의 이주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대놓고 불법을 저지르기도 한다. 신곡6지구의 경우 다원그룹 소속 직원들을 조합원으로 만드는 등, 불법적인 도시개발조합을 구성한 것이 드러나 법원에서 조합 설립 인가가 취소됐다. 시행사인 새날(다원그룹 관련 회사)이 부도 처리되면서 신곡6지구 도시개발사업은 중단됐다. 현재 이곳은 폐허가 된 채 방치돼 있다. 사실상 쫒겨난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조규승 위원장의 증언이다.

"2008년 5~6월 무렵이었다. 다원 쪽 젊은 직원들이 250명, 우리는 25명, 평균 나이 50이 넘었다. 죽어라고 싸웠다. 포클레인에 올라타고, 막았다. 한 달은 싸운 것 같다. 심지어 사람이 부족해 공장에서 키우는 개까지 데려와 싸웠다. (…) 폭력에 당하는 것보다 더 화나는 게 있다. (당국에서) 불법임을 알면서 눈감아주는 게 더 화난다. (철거 용역들은) 사람 한둘 죽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폭력과 구타는 일상이다. 철거 용역도 부모 형제가 있을 텐데, 그렇게 죄의식이 없을까…. 일당 받기 위해 나온 철거 용역도 그렇지만. 이금열과 같은 이런 자들이 (폭력 철거) 방법까지 가르쳐 주면서 하는 것은 매우 큰 문제다."

철거 과정에서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발생한다. 이 사무국장은 "행정대집행 등 현장에서 퇴거의 강제 집행은 법원 집행계에서 직접 모집하는 형식을 취하나, 실제로 모인 용역들은 일선에서 밀려난 조폭(조직폭력단)의 후예들로 전반적으로 철거 업체의 관할 아래 선을 대어 모집한다"고 주장했다. 쉽게 말해 '조폭' 출신들이 '일일 공무원'이 돼 철거를 집행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재개발 현장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집행을 막으면 '업무 방해'가 된다. 공무원들은 이 같은 시스템에 대해 사실상 눈을 감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철거업체 다원그룹 피해자 증언 대회'에서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가가 철거 용역 폭력의 구조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개발로 이익 보는 핵심 이유? 사람 쫒아내는 게 너무 쉽기 때문"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인 미류 씨는 "15년 전에 (다원 관련) 보고서가 나왔지만, 다원은 여전히 철거를 하고 있다. '사람을 쫒아내는 것은 인권 침해'라는 말을 하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지, 살던 사람을 건물에서 나가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쉬운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재개발로 이익을 보게 되는 핵심적 이유는 사람을 쫒아내는 게 너무 쉽기 때문이다. 실제 이익을 보는 게 늘 소유권자인 것도 아니다. 이 구조에서 이익을 보는 사람은 따로 있다. 용산 참사 때도 삼성, 대림, 포스코 등 대형 건설사의 문제점이 지적된 적이 있는데, 아무런 수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모두 아는 사실이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원호 사무국장은 "한국의 대표적 철거 폭력 업체인 다원그룹 회장의 비리가 회장 등 개인의 횡령 비리 사건으로 마무리되거나 현재 구속 기소된 세무 공무원 몇몇의 뇌물 비리로 끝나서는 안 된다. 이금열 회장은 재개발 조합에 철거 용역비 10%를 리베이트로 건네는 관행을 최초로 도입한 인물이라고 한다"며 "이번 수사는 다원이 담당했던 사업 구역들 전반으로 수사를 확대해 개발·철거 사업 비리의 정관계 커넥션을 파헤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증언 대회가 열린 25일은 다원(구 적준) 용역이 지른 불을 피하다 사망한 전농동 철거민 고 박순덕 씨의 16주기 추모 기일이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