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북한 사회는 '강성대국을 위한 속도전 속에 경제적 합리성이 압도당한' 형국이다. 북한인권단체 '좋은벗들'(이사장 법륜 스님)의 '2009 북한 사회 동향보고회'에 따르면 그렇다.
좋은벗들은 2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2009 북한 사회 동향보고회'를 열고 올해 주민들이 어떤 변화와 혼란을 겪었는지 식량 상황부터 인권 및 체제 관련 동향에 걸쳐 포괄적으로 보고했다.
"경제 개혁? 과거로의 회귀인가"
주목을 끈 것은 경제 개혁과 관련된 부분. 올해 북한은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을 목표로 과학·군사 등의 분야에서 다양한 대내외적 조치를 단행했다. 주민들을 '150일 전투'에 동원시키고 시장을 강력하게 단속하면서 화폐 개혁을 실시하는 등이 그것이었다.
토론자로 나선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이에 대해 "정치적 논리가 경제적 합리성을 압도했다"고 규정했다. 당국의 이념적 구호들에 경제 개혁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자취를 감췄다는 뜻이다. 각종 '개혁' 정책에 대해 "보수화와 과거 회귀 경향이 짙고, 경제개혁적인 분위기는 후퇴하고 있다"고도 평가했다.
양 교수는 4월 20일부터 9월 16일까지 진행된 '150일 전투'를 1974년 있었던 '70일 전투'와 비교하며 "지금은 전투에 필요한 물자가 부족하기 때문에" 당시와 상황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좋은벗들의 보고에 따르면 '70일 전투' 때에는 자재 및 식량의 공급이 원활했고 술, 고기, 떡 등 격려성 배급이 있었지만 현재는 자재도 자체적으로 조달해야 하며 식량난도 심하다.
달러화 영향, 시장 의존 심해져
양 교수는 화폐 개혁에 대해서 "북한은 원화가 자취를 감추고 달러화가 지배하는 상황"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때문에 화폐 개혁만으로는 변화가 있을지 미지수이며 "일자리를 늘리든 재정을 확충하든 개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에 대한 단속 역시 소비재 시장만을 단속하고 있을 뿐 기업, 무역회사가 연관되어 있는 생산재 시장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이러한 과거회귀적 개혁들로 인해 화이트였던 시장을 블랙(암시장)으로 만들면서 양극화를 불러일으킨다"며 "단속을 받는 사람은 더욱 위축되고 단속을 하는 사람들만 수혜를 보는 구조가 된다"고 설명했다. 또 "이제 시장에 뛰어들 수 없는 사람들이 불법의 세계로 빠질 것"이라며 범죄 비율이 높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영수 서강대 교수도 "2009년 북한 사회의 특징은 '국가 주도의 싹쓸이'라며 주민들은 이에 화가 나서 '울렁울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북한의 모습을 '전투와 속도, 통제와 단속, 달리기와 고이기(아부, 뇌물)'로 압축했다. 북한 당국이 '위로부터의 개혁'을 위해 전투와 속도를 강조했으며, 문제점을 하나씩 뽑지 않고 '제초제'를 뿌리듯 한꺼번에 통제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북한 주민들의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심해지면서 '누가 더 싼 곳에서 사서 비싼 곳에서 파느냐'가 중요해졌다"며 그것을 '달리기'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힘 있는 간부들에게 고이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화폐 개혁 이후… '시장 혼란'
좋은벗들은 지난달 30일 화폐 교환이 시작되자 '계엄령 내린 도시마냥 조용했다'고 전했다. 이후 일부 주민들이 추궁을 피하려고 10만 원 이상의 돈을 태우거나 버리는 등 혼란이 이어졌으나 시장은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로 계속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발제자로 나선 법륜 스님은 "화폐 개혁으로 사회적 혼란이 크다. 시장 운영이 잠시 중단되어 식량·생필품 구입에 차질이 빚어졌고 교환 시기 동안 물가가 평균 2~3배로 폭등했다. 어렵게 돈을 모은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설명했다.
9일 고시된 국정가격에 의하면 이발비는 종전 300원이었던 것이 10원으로, 청진-회령간 버스비는 종전 450원에서 60원으로 100:1 화폐 교환 비율에 비해 파격적으로 높게 책정됐다고 좋은벗들은 전했다.
곡물가도 폭등했다고 한다. 시장이 통제된 상황에서 지난 1년간 곡물가는 높은 가격(쌀값 기준 1800원~2000원)에서 안정돼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단행된 화폐 개혁 조치로 2~3배가량 치솟았다.
법륜 스님은 "일부 가난한 주민들은 1인당 500원씩 지급되는 배려금에 기뻐했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구 화폐 처분에 대한 당국의 감시와 처벌이 계속되고 장사 단속을 하는 데 불만을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객관적인 상황 보고'에 집중하겠다고 밝힌 법륜 스님은 보고회 말미에 "제도적으로는 사회주의 유지하더라도 시장을 합법화해야 한다"며 북한의 경제 상황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는 "현재 배급이 완벽히 안 되니까 사회주의적인 경제 정책은 어렵고, 시장을 합법화하지 않으면 자생력을 갖기 어렵다.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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