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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정부의 '김상곤 길들이기' 시작됐나?

교육부, 사학 조례 시행 80분 전 '시행 말라' 팩스 한 장 '달랑'

경기도에 있는 A학교법인. 이 법인은 2009년 자신들이 운영하고 있는 고등학교 회계에서 27억 원을 무단 인출해 땅을 샀다가 적발됐다. 도내 B학교법인. 이 법인은 지난해 학교 예산 14억 원으로 아파트를 구입했다가 적발됐다. 도내 C학교법인. 이 법인의 모 이사장은 지난 2011년 교사를 채용하는 과정에서 1300만 원의 뒷돈을 받았다가 들통이 났다.

경기도 최철환 교육의원이 경기도교육청(김상곤 교육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서 드러난 '사학 비리 백태'다. 경기도의회가 지난달 14일 통과시킨 '사학기관 운영 지원·지도 조례(사학 조례)'가 시행된다면, 이 같은 부정 행위가 드러난 학교에 대해 혈세 지원을 중단하는 등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그러나 교과부는 8일 이 사학 조례 재정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다. 도교육청을 통해 도의회에 '재의 요구'를 한 것이다. "(사학조례가) 법률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 밑바탕에 사학 단체들이 반발하는 부분이 있다(서남수 교육부 장관)"는 것이 이유였다. 도교육청과 경기도의회가 곪은 부위를 도려내자고 하니, 교육부가 '수술이 무섭다'는 환자 편을 들고 있는 상황이다.

교육부의 '재의 요구'는 매끄럽지 않았다.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발생했다. 그간 교육부가 '뒷짐'을 지고 있다가 막상 사학 조례가 시행되려고 하니 허겁지겁 '딴죽'을 거는 모양새다.

교육부, 공포 1시간 20분 전에 팩스 한 장 '달랑'

▲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프레시안(최형락)
지난 4일 밤 10시 40분경 경기도교육청에 한 장의 팩스가 도착했다. 1시간 20분 후인 4일 자정부터 사학 조례의 효력이 사실상 발휘될 것으로 예정된 상황이었다. 이 팩스는 교육부에서 온 공문이었다. "조례의 일부 조항들이 상위법과 상충된다"는 이유로 재의를 요구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밤늦게 도교육청은 분주해졌다. 이어서 11시 30분경, 교육부 관계자가 도교육청을 찾았다. 인편으로 공문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도교육청은 경기도에 보낼 "사학 조례의 경기도보 게재를 철회해 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부랴부랴 작성했고, 11시 40분경에 발송했다. 그러나 이 공문을 받을 공무원은 경기도에 아무도 없었다. 다음날 아침 경기도청에는 사학 조례가 시행된다는 내용이 담긴 경기도보가 기자실 테이블에 깔렸다. 3일간의 혼란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도교육청은 "재의 요구를 받고 공문을 보낸 것이 전날 밤인 만큼 조례를 철회하는 것이 맞다"고 경기도에 요구했지만, 경기도는 하루 종일 혼선을 빚다가 저녁 6시 30분이 돼서야 도교육청에 답신을 보낸다. "효력에 문제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정정 공고가 어렵다는 것이고, 교육부의 '재의 요구'는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대해 교육부가 반발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누구 말이 맞느냐"는 것을 두고 무려 3일 동안 혼선을 겪은 후, 교육부는 8일 "경기도 사학 조례는 효력이 없다"는 법제처 유권 해석 결과를 도교육청에 통보한다. 이에 따라 경기도는 "사학 조례가 철회되었다"는 내용의 정정 공고를 다시 게재했다. 9일 현재 도교육청은 교육부의 의견을 받아들여 경기도의회에 사학 조례 재의 요구를 한 상황이다.

경기도의회는 재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학 조례가 다시 전체회의에서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재의결이 가능한데, 현재 경기도의회는 사학조례에 찬성하는 민주통합당 의원 전원이 찬성해도 3분의 2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최창희 경기도의회 교육의원은 "사학 조례를 처리하기 위해 공청회 등 많은 논의가 공개적으로 있었는데,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교육부가 미리 지적을 해서 재의 요구까지 안 갈 수도 있었지 않느냐 하는 부분에 아쉬움이 있다"며 "이번 혼란은 교육부가 자초한 측면이 있으며 재의 요구를 하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한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교육부의 처사를 비판했다.

박근혜 정부의 '김상곤 길들이기' 시작됐나?

사학 조례를 둘러싼 교육부와 경기도교육청 간의 힘겨루기는 이제 시작이다. 경기도의회는 교육부의 재의 요구를 받아들인다고 밝히며 보도자료를 통해 "사학 조례 사전 검토 과정에서 법제처(처장 제정부)가 준 의견을 모두 반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상위법에 어긋난다며 교육부가 재의 요구를 요청한 점은 안타깝다"고 교육부의 처사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이에 맞서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8일 국회 업무 보고에서 "(사학 조례가) 법률에 구체적 근거 없이 사학들 입장에서 보면 여러 자율성을 침해한 부분이 있다"고 주장하는 등 양측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이명박 정부 교육과학기술부와 힘겨루기를 해 온 김상곤 교육감에 대해 박근혜 정부 교육부가 '딴죽'을 걸며 '길들이기'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사학 조례는 경기도교육청이 주도해 마련하고 발의했던 사안이다.

사학 조례는 사립 학교를 공립 학교와 동일하게 지원하되 △교육청이 외부 전문가를 포함시킨 사학지도협의회를 운영하며 △교육청에 교원 채용을 위탁하는 사학에 교육감이 우선적으로 행정 및 재정 지원을 할 수 있고 △교육감은 사학에 교육 환경 개선 등을 위한 금품을 지원할 수 있으며 △교육감이 사학 기관 운영 전반을 정기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또 △공익 제보자에 대한 불이익 조처를 금지하고, △학교 회계 부정 등의 비리 사실이 발생하면 이를 구성원들에게 알리는 내용 등도 포함돼 있다.

교육부가 문제 삼는 부분은 이 같은 조례가 △사학 운영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고 △교원 채용, 사학 평가 등을 교육감의 재정 지원과 연계해 행정법상 '부당결부 금지 원칙'(상위법 위반 소지)을 위반할 수 있다는 점 등이다.

경기도의 이번 '사학 조례 재의 요구' 파문이 서울시의 사학 조례 제정 움직임에도 영향을 끼칠지 주목된다. 경기도의회가 사학 조례를 수정해 표결에 부칠 가능성도 있지만, 어찌됐든 한번 도의회를 통과한 사학 조례가 부결될 경우 정치적 후폭풍이 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 문제가 쟁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사학 조례'는 왜 만들어졌나?

사학 조례 제정의 '뿌리'는 지난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회는 사학의 전횡을 견제하고 사학 비리를 예방하기 위해 개방형 이사제 및 회계 처리에 있어서 공익 감사제 도입 등의 내용을 담은 사학법 개정안을 열린우리당(현 민주통합당의 전신) 주도로 처리했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지금의 새누리당)은 당시 대표직을 맡고 있던 박근혜 대통령을 앞세워 장외 투쟁에 나서는 등 극한 대결 분위기로 상황을 몰고 갔다. 결국 한나라당은 2007년 누더기가 된 사학법 재개정안 처리를 관철시킨다.

견제 장치가 고장 난 상황에서 사립 학교의 각종 비리는 끊이지 않았다. 일례로 최근 국제중학교의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의 주먹구구식 운영이 드러나 문제가 된 적이 있는데, 당시 "사립학교 내에 사배자 전형 운영 과정을 감시할 수 있는 장치가 있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사학 비리가 근절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사학을 견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사립학교법개정국민운동본부가 출범했다. 그러나 "정치권의 미온적인 태도(김형태 서울시 교육의원)"로 사학법 개정 움직임은 흐지부지됐다. 이에 대해 대안으로 나온 것이 지방자치 차원의 사학 조례 개정 움직임이다.

2005년 '사학법 파동' 당시 사학 이사진의 구성 방식을 제한하는 등 국회의 법 개정이 주요 쟁점이었다면, 2013년의 '사학 조례' 제정 움직임은 자치단체 차원에서 사학 비리를 근절할 방법을 찾아내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지자체판 사학 개혁' 운동인 셈이다. 이 운동의 중심에 현재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있다. 경기도교육청의 영향을 받은 서울시의회도 사학 조례 개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김형태 서울시 교육의원은 "현재 경기도의 사례를 면밀히 보고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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