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 허용,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골자로 하는 노동 관계법을 둘러싼 갈등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표면화됐다.
정치권, 재계, 노동계 등 각 이해주체들은 22일 '다자간 협의체'를 열어 연내 처리를 목표로, 28일까지 개정된 단일안을 도출해 환노위에서 처리키로 합의했다. 그러나 내용상 이견이 워낙 커 최종 합의안 마련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번에 '다자간 협의체'에서 주목할 점은 지난 3자 회담에서 빠졌던 민주당과 민주노총이 협상 테이블 앞에 선 점이다.
여야 노동법 모두 환노위 상정…'다자간 협의체'도 '투트랙'으로 운영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이날 한나라당 안, 그리고 민주당 안, 민주노동당 안을 모두 상정했다.
앞서 한나라당은 노동부-한국노총-한국경영자총협회는 '3자 회담'의 합의안을 토대로 △복수노조 허용 2년 6개월 유예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및 '타임오프제(유급 근로 면제)' 도입에 합의했다. 그러나 민주당과 민주노총은 이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은 △복수 노조 설립 허용 △복수 노조는 연대를 통해 교섭단체 대표를 구성할 수 있으며 이를 노조간 자율로 결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 안을 냈다. 또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노사 자율로 결정을 전제로 △노조 전임자에 급여를 지급하는 행위를 부당 노동행위로 규정하는 조항의 삭제 등의 내용을 담았다.
앞서 이날 오전부터 민주당 소속 추미애 환경노동위원장 주재로 정부, 정치권, 재계, 노동계를 아우르는 '다자 협의체' 회의를 열어 합의안 도출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의미 있는 결론은 내리지 못했지만 '다자간 협의체'는 매일 오후 3시에 열기로 했다.
이날 '다자간 협의체' 회의에는 추미애 위원장, 한나라당 조원진, 민주당 김재윤 환노위 간사, 노동부 임태희 장관, 한국노총 장석춘, 민주노총 임성규 위원장, 한국경영자총협회 이수영 회장, 대한상공회의소 손경식 회장이 참석했다.
추미애 환노위원장은 노동법의 연내 처리에 방점을 찍고 있다. 추 위원장은 회의에 앞서 "접점을 모색해 환노위에서 대안을 도출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6자 모두 양보하고 타협하는 게 불가피하다"고 의지를 밝혔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개정안? 각계 내부 갈등 심각
민주노총 임성규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3자 합의안'을 근간으로 논의하면 노동법은 전 세계에서 없을 초유의 누더기가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애초 한나라당과 정부가 민주당과 민주노총을 배제한 채 합의안을 이끌어내 여야간 노동계-재계간 입장차가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진 탓이다.
이같은 근본적인 갈등과 별개로 '3자회담'의 결과를 토대로 만든 한나라당의 '수정안' 역시 참여자들의 비판에 직면해 있다. "타임오프제 적용 범위에 '통상적 노조 업무'도 넣어야 한다"는 한국노총의 주장이 반영된 것이, 재계의 불만을 사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그리고 한국노총은 한나라당 수정안을 관철시킨다는 입장이지만 경총과 대한상의는 "합의안대로 하자"는 입장으로 일부 반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경총은 "통상적 노조 업무의 기준이 모호하다. 임금을 지급할 때마다 통상적 업무인지 아닌지 별도로 노조와 협상하라는 말이냐"고 주장하는 소속 중소기업이 속속 이탈하고 있는 등 적지 않은 압박을 받고 있다.
'3자 합의'안에 사인했던 한국노총 역시 조합원들의 거센 반발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장석춘 위원장은 이날 '한국노총 조합원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호소문을 발표하고 "더 큰 현장의 혼란이 불가피한 이러한 (합의안 수정) 주장에 동의할 수는 없다"고 못을 박았다.
여기에 정부와 한나라당도 엇박자를 냈다. 노동부 임태희 장관도 이날 "'타임오프제'도 합의한 범위 내에서 결정돼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한나라당 안에 대한 불만을 표하며 재계 쪽 입장을 옹호한 것이다.
민주당도 내부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강래 원내대표는 이날 "다자협의체에서 논의된 안을 상정해야 한다"고 노동 관계법 상정 반대를 주장했지만 추 위원장이 이를 무시해 엇박자가 난 것이다.
노동법 처리, 어떻게 될까?
결국 추 위원장의 말대로 '타협'이 이뤄진다면, 복수노조 허용 유예 기간을 한나라당의 개정안보다 앞당기고, 사업장의 노조 전임자 임금이 합리적인 선에서 보장되는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타협안 도출이 불발될 경우 김형오 국회의장이 한나라당 안을 직권상정하는 방안도 있다. 그러나 지난 1996년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이 노동법을 '날치기'처리한 후 거센 후폭풍에 시달렸던 사례가 재현될 우려가 커 이마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각계의 합의 노력이 무산되고 노동관계법이 1월 1일부터 시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당장 혼란이 올 수 있지만, '연내 처리'라는 촉박한 시간 제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만 시행에 따른 보완 조치 관련 합의 도출이 늦어질수록, 각계 모두 정치적 후폭풍이 거세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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