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이후 정가의 관심은 단연 박근혜와 안철수다. 여당의 명실상부한 지도자이자 차기 대통령후보로 자리매김한 박근혜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언론이 안철수에 관심을 쏟는 것은 안철수의 정치적 비중과 잠재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반증이므로 탓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야권에서, 특히 총선에서 참패한 민주당에서 안철수에 대한 구애가 넘쳐나고, 나아가 경쟁적으로 안철수 띄우기에 나서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이종걸 의원이 발동을 걸었고, 정세균 의원, 박지원 의원 등이 이구동성으로 안철수의 민주당 합류를 촉구했다. 조금 결은 다르지만 김효석 의원도 방송에 나와 안철수의 정치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일련의 발언이 보수언론인 <중앙일보>의 안철수 대선출마 결심 관련 기사를 마치 출발신호로 여긴 듯이 보이는 것은 아니러니하다.
민주당의 전략기획위원장을 지낸 이철희 소장의 안철수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대강 이렇다.(관련기사 바로보기 : 총선에서 '팀킬'한 안철수, 남은 길은... ) 첫째, 여권에서는 이번 총선을 계기로 박근혜가 확고부동한 자리를 차지했고, 둘째, 결국 안철수가 제휴할 곳은 야권이고, 셋째, 박원순식의 시민후보로는 단일화에서 민주당 후보를 이기기 어려우므로 야권재구성에 기여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철희 소장은 다음과 같은 말로 안철수의 참여를 호소한다.
"혼란을 수습하고, 새롭게 정리되는 과정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은 채 대선후보직이란 보상을 기대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안철수가 지금 추구해야 할 것은 자리가 아니라 역할이다."
참 절실한 말이다. 민주당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안철수의 입장에서도 귀담아 들을 말인지는 의문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안철수는 근본적으로 현재의 여야 구도 또는 보수-진보 구도를 거부하고 있다. 지금같은 진영간의 대결이 정치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말도 했다. 심지어 총선 기간 중에 젊은이들을 만나 당을 보지 말고 사람을 보고 투표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주장했다. 유시민이 진작 불만을 표시했고, 이철희 소장도 칼럼에서 본의를 촌탁하기는 어렵다고 눙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여권을 이롭게 했다고 불만을 토로한 그런 정치 행위를 한 것이다.
박근혜가 정치적 입지를 공고하게 다졌다는 사실도 안철수에게는 큰 문제가 안된다. 민주당이 안철수에게 매달리는 이유는 그가 젊은이들과 중간층을 견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안철수 자신이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을 뿐더러 그의 자신감은 여기서 나온다. 안철수가 보기에 박근혜의 인기는 한쪽 진영 안에서 통하는 것이다. 안철수는 우리사회에는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는 부유하는 중간층이 여전히 존재하며, 그들을 잡는 사람만이 나라를 통합적으로 이끌어갈 자격이 있다고까지 보는 것 같다. 박근혜가 눈에 들어올리 없다.
제2의 박원순 모델은 없다는 지적도 그렇다. 사실 제3세력 노선은 박원순 이전에 정몽준이 있었고, 문국현도 있었다. 문국현은 납득할 수 없는 고집을 부려 본인과 야권 모두 어렵게 만들었지만, 정몽준은 꼭 실패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정몽준은 단일화를 통해 결과적으로 민주당 즉 노무현 후보의 승리에 기여했고, 개인적으로도 단일화에 승리할 뻔 했다.
안철수의 정치철학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그가 피력하고 있는 생각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그가 민주당의 구애에 응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당분간 그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 것이므로 그의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야권의 입장은 다르다. 지금처럼 야권의 미래에 대한 담론이 안철수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것은 민주당 자신의 주변화를 재촉할 것이다. 주변화된 민주당은 안철수에게 더욱 매력이 없다. 역설이다.
안철수에 대한 성급한 구애를 중단하자고 해서 누구 말처럼 안철수를 배제해서는 곤란하다. 소통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민주당의 과제는 무소의 뿔처럼 꿋꿋하게 스스로를 혁신하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의 신뢰를 복원하는 것이다. 강해지는 것이다. 강한 민주당과 매력있는 안철수가 만나야 박근혜를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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