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원 선거구를 조정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지난 18일 국회를 통과했다.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의 결정이라는 점만으로도 아쉬움이 크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이번 개정이 지방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특히 의원 정수와 선거구, 선출 방식까지 중앙이 일괄적으로 설계하는 구조는 여전히 ‘지방자치’라는 이름을 무색하게 한다.
이번 개정이 드러낸 가장 큰 문제는 선거구 획정 과정이 지역의 실제 삶과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경북 포항의 사례에서 보듯,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기존 선거구가 분할·재편되면서 생활권이 분절되고, 구도심과 신도심이 단순한 인구 기준에 의해 재조합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는 지역민의 일상적 이동과 공동체의 흐름을 고려하지 않은 채 숫자 중심의 획정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더욱 우려되는 지점은 절차적 정당성이다.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선거구가 변경되면 유권자의 선택권은 물론 후보자의 공무담임권까지 제약될 수밖에 없다.
유권자는 충분한 정보와 시간을 가지고 후보를 판단해야 하고, 후보 역시 공정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촉박한 일정 속에서 이뤄지는 선거구 조정은 이러한 기본 원칙을 흔들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중앙 주도의 획일적 기준은 도농복합도시와 같은 지역의 특수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지역은 생활권, 산업 구조, 인구 구성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보다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인구 비례 원칙만을 앞세운 선거구 획정은 지역 내 갈등을 키우고 대표성의 왜곡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구조가 지속될 경우 정치 참여의 위축도 불가피하다. 자신의 삶과 동떨어진 선거구는 유권자의 관심을 낮추고, 정치가 특정 집단 중심으로 굳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나아가 새로운 인물과 다양한 배경을 가진 후보의 진입을 어렵게 만들어 정치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약화시킨다.
이제는 방향을 바꿔야 한다. 선거구 획정과 의원 정수, 선출 방식에 대한 논의는 지역이 주도하는 구조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단순히 권한을 이양하는 것을 넘어,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공론의 장을 제도화해야 한다. ‘시민의회’와 같은 참여형 플랫폼을 통해 지역민이 생활권과 공동체의 특성을 반영한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지방자치의 본질은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데 있다. 중앙이 설계한 틀에 지역을 맞추는 방식으로는 지역의 미래를 자율적으로 그려나갈 수 없다.
지역의 현실과 목소리를 반영한 선거구 획정, 그것이야말로 정치적 대표성과 민주주의의 신뢰를 회복하는 출발점이다.
정치 분권은 선언이 아니라 실천의 문제다. 더 많은 권한과 책임을 지역으로 이양하고, 주민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할 때 비로소 지방자치는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선거구 획정의 문제는 단순한 제도 조정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이제 그 답을 지역에서 찾아야 할 때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