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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로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고등교육 생태계 붕괴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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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로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고등교육 생태계 붕괴 그리고…

[기고]

대학에서 강의하고 연구하는 강사에게 2월은 특히 바쁜 달이다. 그때는 방학인데 뭐가 그리 바쁘냐고? 그때는 우선 학기 중에 제대로 하지 못한 연구와 새 학기 수업 준비를 해야 하고, 또 방학 중 임금 2주분 외에 들어오는 생활비가 3달 동안 전혀 없으니 단기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연구와 수업 준비에 몰두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아야 하는 시기, 한국연구재단에서 마련한 몇몇 연구지원사업에 계획서를 쓰고 제출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구자 중에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연구자만 있는 게 아니라 강의를 하지 않는 연구자도 있기에 강사·연구자에게 2월은 일 년의 연구 및 기본적인 생활을 결정지을 중요한 달이기도 하다.

올해 2월은 우리 노조(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부산대분회)가 파업농성을 하고 있던(지금도 농성 진행 중이고 2026년 3월 23일 현재 85일차다) 때라 부산대학교 본부 앞 파란 천막에서 동료들과 함께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지원사업에 대한 얘기를 소소하게 나눌 수 있었다. 누군가는 이런 기회가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한 일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연구계획서를 써서 제출한다고 모두가 선정되는 것은 아니니 괜히 준비 안 된 상태에서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하고, 누군가는 그래도 운이 많은 것을 좌우한다며 시도는 하겠다고 하고, 누군가는 이전에 선정된 계획서와 노하우를 공유했다. 선정률은 그중에서도 큰 관심사였다. 새 정부에서 올해 더 많은 과제를 선정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5년 지원하는 A유형도 1년 지원하는 B유형도 실질적인 선정 과제 수가 줄어들었다는 걸 확인하고는 다들 실망하는 분위기였다. 5월에 결과가 나올 텐데, 매해 그렇듯 누군가는 안도의 한숨을 쉴 테고, 누군가는 자괴감을 맛보게 될 테지.

전국 최고 강의료를 준다는 부산대학교에서 강의하는 강사도, 두 학기 이어서 (평균 강의시수 4.7시수를 넘는) 6시수을 맡아 강의했는데도 근로장려금을 신청하라는 연락을 받는 상황이기에 한국연구재단의 사업 신청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하지만 분야별로 선정 과제 수가 정해져 있어서 연구 분야가 겹치는 연구자가 많으면 그 분야에서 탈락자도 많아진다. 탈락하게 되면, 연구자의 연구 의욕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같이 공부하는 동료가 경쟁자로 여겨지게 된다. 그렇다고 아주 드문 주제를 연구하는 이에게 좋은 것도 아니다. 연구 주제가 너무 드문 것이면, 제대로 된 심사자를 찾기 힘들어서 선정되기 어렵다. 태국의 난민 정착촌에 관한 인류학 연구를 심사할 수 있는 사람이 한국에 몇 명이나 될까. 어느 순간부터 연구지원사업의 존재 자체와 선정률, 선정 결과는 연구자들에게 개인적으로 감내해야 할 운명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이런 사업은 특정 연구자 개인을 지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가 없으면 학술생태계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연구재단의 연구지원사업 중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지원사업은 인문사회분야 연구자가, 대학 강사든 아니든, 연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생계를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만든 것이다. 이 제도를 만드는 데, 우리 노조의 역할이 컸다는 걸 아는 사람은 노조 내에서도 많지 않다. 연구재단 홈페이지에 적혀 있는 사업목적을 살펴보면,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A유형은 "단절없는 연구활동을 할 수 있는 연구 안전망을 구축하여 학술연구 토대"를 "강화"하고 "비전임 연구자들이 연구 및 교육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만들어졌다.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B유형은 "인문사회분야 학문후속세대 연구자들이 단절 없는 연구 활동을 할 수 있는 연구안전망을 구축하여 혁신성장의 근간인 학술연구의 토대"를 강화하고 "학령인구 감소 등으로 인하여 늘어나는 대학 밖 비전임 연구자들이 연구 및 교육을 지속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연구자의 기본적인 생활임금이 사회적으로 제공된다면 연구지원 '사업'은 없어도 될 텐데, 우리 사회에 그런 임금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공동체를 위한 연구 지속성 담보를 위해 연구자를 지원하는 사업이 만들어진 것이다.

내가 대학에 들어간 2000년에도 인문학의 위기, 대학의 위기 담론이 있었다. 2005년에 대학원에 들어갔고, 공부를 계속할까 말까를 고민할 무렵인 2007년에 부산대분회가 생겼는데, 그때 당시 분회에서 마련한 '벼랑 끝의 시간강사' 강의를 듣고 노조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무렵 '보호학문분야 강의지원사업'이 만들어졌다. 석사논문을 쓰고 박사과정을 거칠 때 선배들이 그 제도를 활용하는 것을 보고 연구를 계속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최소한의 생계만 보장되면 연구를 계속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2011년 시간강사로 강의를 시작할 무렵에 '시간강사연구지원사업'이 만들어졌다. 2012년부터 노조활동에 참여했는데, 2019년 강사법이 통과되고 현재의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가 만들어졌다. 그 무렵 대학구조조정과 제도변화로 해고되는 강사가 많아져 우리 노조에서 연구재단 책임자들을 설득해서 2020년에 선정 과제수를 눈에 띄게 늘릴 수 있었다. 이후 윤석렬 정부를 거치면서 선정 과제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천막에서 우리는 과연 교육과 연구를 계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서로에게 털어놓는다.

2026년 현재, 국가교육위원회 인문사회특별위원회와 고등교육위원회에서 대학교육과 강사문제, 즉 학문후속세대와 관련된 정책안을 마련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인문사회특별위원회에서는 한국연구재단의 관련 연구지원사업에 대해서도 의견을 낸다고 한다. 우리 노조에서 그 위원회에 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전임교수만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같은 대학에 있어도 다른 자리에 있으면 보이는 풍경이 다른 법이라 정책 제안서에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을지 염려된다. 그나마 다가오는 3월 27일에 만남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부디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를, 무엇보다 이 사회의 연구자들이 연구를 포기하지 않도록,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수의 연구자를 지원할 수 있는 방향으로 관련 정책과 제도가 만들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
ⓒ한국비정규교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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