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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과 김제의 장점이자 단점은 '풍요로움'…지역에 남은 청년들 혼자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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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과 김제의 장점이자 단점은 '풍요로움'…지역에 남은 청년들 혼자 아냐"

프레시안 전북취재본부 연말기획 <전북과 사람> ⑤김제에 눌러 앉은 '오느른' 최 별 전 MBC PD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거센 격랑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혼란 속에 시작된 2025년은 결국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을 거치며 또 한 번의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권력은 교체되고, 국정 운영의 방향도 달라졌지만, 사회 곳곳에 켜켜이 쌓여온 불평등과 구조적 모순은 여전히 지역과 현장을 짓누르고 있다.

전북 역시 예외는 아니다. 지역소멸 위기, 새만금 논란, 교육·환경·노동 현안까지 긴박했던 시간들이 지나고 있는 가운데 그 시간의 중심에는 언제나 그를 헤쳐나가기 위해 온 몸을 던지는 ‘사람’이 있었다.

프레시안 전북취재본부 연말기획 〈전북과 사람〉은 상대적으로 주목은 받지 못했지만 모든 것이 촘촘히 엮여 있는 ‘지방권력의 기득권’ 구조 속에서 홀로 질문하고, 침묵을 거부하고, 불합리를 견뎌 온 이들의 활동상을 다시 불러내 본다. 때로는 고립되기도 하고 지역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눈총을 받기도 하지만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 사회 정의와 상식, 존엄을 지키기 위해 ‘외롭지만 멈추지 않았던 이름들’을 기록하고자 한다. 2025년, 전북을 살았던 사람들의 시간. 침묵 대신 질문을 선택했던 사람들의 한 해를 통해, 우리는 다시 지역 민주주의의 좌표를 확인하려 한다.

▲전북 김제의 폐가를 사들여 콘텐츠를 제작하다 최근에 눌러 살게 된 최별 PD. ⓒ최별PD

외지인으로 전북을 바라만보다 그 한가운데 머물며 사람과 어울리고 풍경을 느리하게 바라 보던 사람이 있다.

사람들은 도시에서 살아온 젊은 여자의 낯선 시골살이를 호기심어린 눈으로 지켜봤지만 이내 그가 보여준 감성에 이끌려 '이게 내가 사는 곳인가'라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젊은 여자는 그렇게 지역과 조금씩 동화되는 듯 하더니 결국 터를 잡고 눌러 앉게 됐다.

유튜브 채널 '오느른' 제작자이자 운영자로 이름을 알린 전 MBC 피디인 최별씨 이야기다.

'오느른' 채널을 소개하는 글에는 '리틀 포레스트를 꿈꾸며 연고도 지인도 없는 김제 땅에 4500만 원짜리 폐가를 구입한 MBC PD의 시골살이 브이로그'라는 설명이 따른다.

최별씨는 이말삼초 청춘을 숨가쁘게 달려오며 대부분 청년처럼 일을 향한 열정과 꿈을 키워나가던 중 '덜컥 사버린 폐가' 덕에 전북 김제와 인연을 맺었다.

젊은 도시여자가 생판 연고도 없는 김제에 스며들어 살다가 지역을 알아가고 거기에 있던 청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지역을 조금씩 바꿔 나가는 모습이 궁금해졌다.

그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질문지를 보내고 얼마를 기다려 답변을 받았다. 그가 보내온 답변에 약간의 토씨만을 바꾼 원문을 그대로 싣는다.

▲최별 PD가 아이와 전북 김제시 죽산면의 들녘 행사장에서 함께하고 있다. ⓒ최별PD

프레시안=처음 전북에 들어와 외지인이라는 시선과 경계가 있었을 것 같다. 또한 김제로 아예 이주한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최별 PD=처음 김제에 왔을 때는 분명히 '외지인'이라는 시선이 있었고, 그 시선이 종종 서운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시선이 꼭 적대적이라기보다는 오랫동안 작은 커뮤니티를 유지해온 지역의 당연한 특성이라고 이해한 것 같습니다.

특히 서울과 김제를 오가면서 타지에서 왔다가 안 되면 떠나가는 사람들이 지방에서는 꽤 많았겠구나를 저도 느끼면서 어쩌면 저 역시 가끔은 외지인에 대한 감각이 생기는 것 같더라고요.

지금은 그저, 오래 머물며 같은 풍경을 보고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남는 게 더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MBC를 퇴사한 이후, 지난 달 드디어 김제로 아예 이사를 왔습니다. 이제야 제가 어떤 결정을 했는지 실감하는 중이고 이왕이면 바쁘지 않게 서울에서와 다르게 제 삶을 어떻게 잘 꾸려나갈 수 있을지 그게 이 지역사회에서는 어떤 역할이 되는지를 차분히 잘 정리해보려고 하는 중입니다. 예전에는 ‘무엇을 해낼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면 요즘은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를 더 많이 생각합니다.

▲최별 PD가 촬영한 전북 김제의 순간들. ⓒ최별PD

프레시안='오느른'을 마무리하고 '밥값하는중'이라는 새 채널을 시작했는데 이 채널을 통해 기록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최별 PD=‘밥값하는중’이라는 이름에는 거창한 의미보다 아주 단순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각자 자기 몫의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들, 그 평범한 노동과 생활이 모여 지역을 만든다는 생각이요. 김제는 뉴스의 중심에 서는 지역은 아니지만 하루하루 성실하게 밥값을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는 곳입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고요.

그냥 중심부에서 스스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못지않게 주변부의 삶도 중요하고,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오느른’을 할 때에는 예쁜 풍경을 통해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곳이 이렇게나 예쁜 곳입니다'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면 지금은 그냥 삶 그대로를 바라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특히 퇴사를 한 가장 큰 이유는 저와 지역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문제의식 때문인지라 앞으로 어떤 콘텐츠를 해나갈지 계속 기획해나가는 중이기도 합니다.

프레시안=김제에서는 어떤 순간들이 특히 놓치고 싶지 않았는지, 그 순간이 서울을 떠나 다시 김제로 돌아오는 데 영향을 미쳤는지, 지금껏 살아보고 경험한 김제는 어떤 곳인지.

최별 PD=김제에서 특히 놓치고 싶지 않았던 순간들은 어쩌면 아주 사소한 장면들이었습니다. 해가 질 무렵 논 위에 남는 빛, 어르신들이 아무렇지 않게 건네는 말 한마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풍경 같은 것들이요. 도시에서도 분명 그런 비슷한 풍경들이 있었을텐데 제가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이지요.

김제에서 1-2년 그런 시간의 흐름을 익히고 나면 도시에서도 그런 것들을 볼 수 있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그런 시간들을 계속 곁에서 보고 싶다는 마음이 MBC를 떠나 다시 김제로 이주하기로 한 선택에도 분명히 영향을 미쳤습니다.

제가 경험한 김제는 어떤 ‘가능성의 공간’이라기보다 사람의 속도를 다시 배우게 하는 장소였습니다. 성과보다 관계가 먼저 오는 곳, 그래서 오히려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곳이었습니다.

프레시안=처음 김제와 인연을 맺은 뒤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역을 바라보는 시선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최별 PD=피디였을 때 저는 어떤 책임감과 의무감에 사로잡혀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제라는 지역에 와서 뜻하지 않게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게되었으니, 이걸 보답해야한다. 그 방법은 로컬재생이다, 라는 생각이었고요.

▲최별 PD가 촬영한 전북 김제의 순간들. ⓒ최별PD

지금은 결국 4500만원짜리 폐가를 만나 어쩌다 이 도시에 정주하게 되었으니 어느 정도 그 책임감을 떨쳐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정을 통해 로컬을 소비만 한 게 아닌게 되었으니까요. 지역을 바라보는 시선도 당연히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예전보다는 좀 더 생활밀착형으로 바라보게 되었다고 할까요. 예를들면 예전의 김제는 저에게 오로지 평야, 사람들과 떨어져 쉬어가는 곳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아이와 남편도 있어서 작은 도시의 인프라와 실제 삶이 이뤄지려면 어떤 기능들이 가능해야하는지를 실질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프레시안=느리고 잔잔함을 좇아 시작한 일이었는데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게 되면서 오히려 처음 의도와 달라지지는 않았는지?

최별 PD=처음에는 느리고 잔잔한 흐름을 기대하며 시작한 일이었지만, 예상보다 많은 관심을 받으면서 환경이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사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관심을 받아서 환경이 달라졌다기 보다는 관찰자적으로 보았을 땐 잔잔하게만 보였던 이 지역의 내부에 들어오고 나니, 또 다른 이곳만의 느리지 않은 속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된 것에 가깝기 때문에 처음의 의도와 많이 달라졌다고 느끼진 않습니다.

다만 조심하게 된 건 있습니다. 지역을 ‘좋은 이야기’로만 소비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제 작업이 누군가에게 부담이나 상처가 되지 않도록 더 많이 고민하게 됐습니다.

속도를 늦추는 게 처음의 목표였다면, 지금은 방향을 잃지 않는 게 더 중요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프레시안=최근 진행 중인 로컬프랜드 사업이나 '오늘의평야' 같은 시도에서는 지역 청년들과 어떤 방식으로 협업하고 있고 어떤 성과나 한계를 느끼고 있는지?

최별 PD=지역 청년들과 가능한 한 수평적인 방식으로 협업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역할을 나누기보다, 함께 기획하고 실패의 과정도 공유하는 방식입니다.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서로가 이 지역에서 계속 질문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성과도 있지만 한계도 분명합니다. 시장의 크기, 지속 가능한 수익 구조, 그리고 결국 남을 수 있는 사람의 숫자 같은 현실적인 벽을 자주 마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도들이 지역에서 혼자 버티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가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프레시안=영상에서도 이웃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의도된 것인지,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인지?

최별 PD=어르신들과의 소통은 특별히 계획된 연출이라기보다는, 이곳에서 생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관계에 가깝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처음부터 ‘촬영’을 했다기 보다는 ‘생활’을 했고 그 생활을 기록한 것에 가까우니, 어르신들이 말을 걸어오실 때 그걸 거부할 이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그분들의 배려가 저를 아이처럼 키웠다고 생각하고요. 저 역시 카메라 앞에서든 뒤에서든, 그분들의 삶을 존중하려고 합니다.

프레시안=지역에 남은 이들, 특히 청년들의 불안을 잘 이해할 것이라고 본다. 경제적 결핍이나 불안한 미래 등이 큰 원인일 수 있겠지만 지역 청년들에게는 지역이 주는 불안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와 관련해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

최별 PD=지역에 남은 청년들의 불안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적 어려움뿐 아니라, ‘성공’을 위해서는 맹목적으로 도시로 떠나는 분위기 속에서 ‘여기에 남아도 괜찮을까’라는 질문을 혼자서 계속 감당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큰 부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불안’이라는 것은 형태가 다를 수는 있어도 모든 개인에게 존재하니만큼 그 ‘불안’이라는 감정에 잡아먹히지 않길 바랍니다.

꼭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떠나는 선택도, 남는 선택도 모두 존중받아야 합니다.

중요한 건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역에 남아 있는 이유를 스스로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전북 김제시 죽산면 논두렁에서 진행한 행사의 청년 스탭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최별PD

프레시안=로컬 콘텐츠·브랜드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 전북, 특히 김제가 가진 강점과 동시에 가장 취약한 지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최별 PD=전북, 특히 김제가 가진 가장 큰 강점은 ‘풍요로움’입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먹거리가 풍성한 지역이고 그게 곧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되려 풍요롭지 못한 곳이 차별화나 특성화에 더 신경을 쓰고 그게 다 지역의 경쟁력으로 이어져온 상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깥에서 봤을 때 전북, 김제는 변화를 원치 않는다고 읽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직접 경험해본 바 좁다면 좁은 이 커뮤니티의 ‘사람의 밀도’가 나쁘지 않고, 관계가 느리게 맺어지지만, 한번 이어지면 쉽게 끊어지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사람들에게 직관적으로 와닿기 어려운 ‘풍요로움’이라는 것을 어떻게 구체화해서 전북, 김제의 무기로 삼을 것인지를 잘 논의해나가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프레시안='오느른' 프로젝트를 마치고 김제를 떠났을 때 가장 마음에 걸리거나 걱정됐던 부분은?

최별 PD=가장 마음에 걸렸던 건, 제가 왔다가 떠나간 사람처럼 느껴질까봐였던 것 같습니다. 제 개인이 그런 사람으로 남는 건 크게 상관은 없지만, 그게 또 의도치 않게 작은 성취로 앞으로 나아가는 지역에게 더 폐쇄적으로 가게 되는 상처가 될까봐 걱정 아닌 걱정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콘텐츠란 학습이기도 하니까, 그것이 전파를 타는 것 역시 꽤나 신경이 쓰였던 게 맞습니다.

그래서 완전히 떠나지 않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방식의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해왔습니다. 기록은 끝났지만 관계는 끝나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돌아옴으로써 하나의 이야기가 제대로 끝났다는 소회는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프레시안=김제 말고도 '이곳에서 살아보고 싶다' 고 느낀 전북 내 지역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최별 PD=최근에 고창 읍내에 가보았는데, 정말 유럽에서나 보던 작은 소도시, 도보권 안에 도서관이 3곳이나 있고, 읍내에 전원주택 단지가 있는 아름다운 마을을 보게되었습니다.

그걸 보고 아이가 좀 더 크면 고창에서 살고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나, 김제보다 더 밑으로 내려가는 일이라 고민 중입니다.

많은 지역이 서울처럼, 조금 더 수도권처럼을 고민하고 있었다면 고창은 일찌감치 그 길보다는 고창의 장점을 살리는 쪽으로 행정을 해왔기 때문에 지금의 모습이지 않을까 싶었고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한편 부럽기도 하고요. 많은 지역들이 고창을 보고 배워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레시안=전하고 싶은 말

최별 PD=지역에서 질문을 던진다는 건 때로는 고립을 감수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문을 멈추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전북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기록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용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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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늘

전북취재본부 김하늘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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