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손혜진의 아름다운 우리가락] 올해, 전통예술은 무엇을 남겼을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손혜진의 아름다운 우리가락] 올해, 전통예술은 무엇을 남겼을까

공연 현장에서 확인한 2025년의 변화와 지속을 위한 조건

필자는 연말이 되면 한 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돌아보며 생각을 정리한다. 기억에 오래 남는 순간은 무엇이었는지 어떤 변화가 눈에 띄었는지 그리고 기대만큼 나아가지 못한 지점은 어디였는지. 2025년의 끝자락에서 전통예술과 문화예술경영 분야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자연스럽게 현장의 풍경도 함께 떠올리게 된다.

올해 전통예술계의 흐름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공연을 둘러싼 질문의 방향이 예전과는 달라졌다는 점이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전통예술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던 질문들이 있다. “관객은 왜 줄어드는가”, “전통예술은 왜 어렵게 느껴지는가”, “젊은 세대와는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와 같은 물음들이다.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지만, 올해 현장에서 체감한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존재의 위기’에서 ‘관객을 만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더 자주 오갔다.

▲ 2025 대전시립연정국악단 송년음악회 로비에서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들의 모습. ⓒ손혜진

관객은 달라졌고, 공연은 먼저 반응했다.

올해 전통예술 공연 현장에서 가장 먼저 느껴진 변화는 관객의 숫자보다 공연쪽의 태도였다. 예전처럼 모든 배경을 미리 설명하지 않아도 공연이 충분히 전달되었다. 관객 역시 누군가의 해설에 의존하기보다 자신이 느끼는 방식대로 음악과 무대를 받아들였다.

대신 공연은 흐름을 더 단정하게 정리하려는 쪽으로 움직였다고 생각한다. 길게 늘어지는 구성보다는 집중할 수 있는 분량을 고민했고 프로그램 역시 ‘전통 레퍼토리를 얼마나 보여줄 것인가’보다는 ‘이 시간을 어떻게 경험하게 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짜여졌다.

필자는 이를 연출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전통예술이 관객 앞에 서는 자세가 달라졌다는 신호에 가깝다고 느낀다.

이런 변화는 국악뿐 아니라 전통무용, 전통연희 등 여러 장르에서 공통적으로 감지되었다. 공연이 끝난 뒤 관객의 반응도 달라졌다. “어렵지 않았다”, “생각보다 편안하게 볼 수 있었다”, “다음에는 다른 공연도 보고 싶다”는 후기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전통예술이 관객에게 다가가는 방식이 조금씩 더 친근하고, 감각적인 언어를 찾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 2025 대전시립연정국악단 송년음악회-김준수 협연. ⓒ손혜진

전통예술도 이제 ‘선택받는 자리’에 서 있다.

이러한 변화는 공연 시장의 환경과도 맞닿아 있다. 전통예술 역시 더 이상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의미가 충분한’ 조건에 놓여 있지 않다. 관객의 선택지는 많아졌고 문화생활을 향유하는 방식도 훨씬 다양해졌다. 그만큼 전통예술 역시 관객 앞에서 스스로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올해 전통예술 현장에서는 이런 고민이 구체적인 시도로 이어졌다. 공연장을 벗어난 공간에서 무대를 열거나 다른 장르와 협업해 접근 방식을 달리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전통적인 형식을 유지하되 전달 방식을 조정하는 시도도 이어졌다. 모든 시도가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전통예술이 지금의 환경을 외면하지 않고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아직은 개인이나 소규모 단체의 노력에 크게 기대고 있다는 점은 아쉽다. 공연이 끝난 뒤 관객과의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구조, 다시 공연장을 찾게 만드는 장치, 전통예술을 일상의 경험으로 연결하는 통로는 여전히 부족하다. 전통예술이 한 번 보고 끝나는 기억으로 남지 않기 위해서는 무대 밖의 고민도 함께 이어져야 한다.

변화 이후에 남은 과제

전통과 현대의 경계는 이미 많이 느슨해졌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얼마나 새로운 형식을 시도했느냐가 아니라 그 만남이 전통예술의 결을 해치지 않으면서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가느냐이다.

올해 현장에서는 이 균형을 고민한 흔적들이 적지 않게 보였다. 어떤 공연에서는 전통예술의 소리와 움직임이 다른 장르와 만나 오히려 더 또렷해졌고 또 어떤 공연에서는 ‘전통’이라는 단어가 관객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구성과 설명이 세심하게 조정되어 있었다. 이는 전통예술이 스스로를 고정된 틀에 가두기보다, 지금의 언어로 자신을 설명하려는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이제 남은 과제는 분명하다. 올해 나타난 변화들이 단발성 시도로 끝나지 않도록 이어질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일이다. 전통예술이 관객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면 그 태도가 계속 유지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협업과 실험이 이벤트로 소비되지 않고 다음 작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구조적인 고민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전통예술은 올해 무엇을 남겼을까

올해 전통예술이 남긴 가장 중요한 변화는 전통예술을 바라보는 질문의 초점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를 먼저 묻기보다 이제는 관객과 어떤 방식으로 만나고 있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질문이 달라지면 현장의 풍경도 달라진다. 변화의 속도는 빠르지 않을 수 있지만, 전통예술이 선택한 방향만큼은 분명해졌다.

올해 전통예술계는 은은하지만 강렬하게 방향을 틀었다. 무대를 구성하는 방식과 관객을 대하는 태도나 전통을 설명하는 언어 등 다양한 변화들이 동시에 나타났다.

다만 이 변화들이 개인의 실험이나 일회성 시도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더 필요해 보인다. 공연을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관객과의 관계로 이어지는 경험으로 설계하는 시도, 전통과 현대를 구분하기보다 관객의 실제 경험을 중심에 두는 기획, 그리고 이러한 시도들이 지속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구조에 대한 고민이다.

전통예술이 과거를 보존하는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의 시간을 관객과 함께 살아가는 예술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이런 질문들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

내년에는 올해 시작된 변화들이 더 많은 현장에서 구체적인 형태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올해의 마지막 칼럼을 마무리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