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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보세요, 한글과 서예가 세계 문화예술 광장의 중심에 우뚝 설 테니까요"

프레시안 전북취재본부 연말기획 <전북과 사람> ②서예 대중화 앞장 김병기 전 전북대 교수

낮기온이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4일 오후 서울 인사동 거리에는 K 컬쳐에 빠져든 외국인들이 삼삼오오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올 겨울들어 가장 추웠던 날이었음에도 관광객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갤러리와 상점을 오가며 활기찬 모습을 보였다.

인사동 거리 중간쯤에 위치한 한 갤러리에서는 전날 개막한 '심석(心石) 김병기 출판기념회와 서예전'이 열리고 있었다.

150여점의 작품에 선보인 전시장 내부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잠시 후에 직접 도슨트(Docent)로 나서 작품설명을 할 작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전시회에 걸린 작품들의 상당수는 김병기 전북대학교 명예교수가 <중앙일보>를 통해 약 3년여간 연재한 칼럼 '필향만리(筆香萬里)'에 소개된 논어의 명구들이다.

▲서울 인사동에서 아홉번째 개인전을 열고 있는 김병기 교수가 4일 오후 갤러리를 찾은 관람객들에게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프레시안

거기에 작가 자신이 좋아하는 문구와 직접 지은 문장들이 전서와 예서, 행서, 초서 등 다양한 서체로 표현됐다.

김병기 교수는 평생에 걸쳐 학문을 연마하고 있는 인문학자이자 서예가, 무대예술가, 예술감독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활동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서예와 한자, 한문 중심에서 한글서예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도 앞장서고 있으며 전북을 기반으로 전북과 전북인을 세계에 알리는 일 또한 쉼 없이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21년 전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정년퇴임을 한 이후에도 작품활동과 강의, 연구, 집필, 창작활동 등으로 청년 못지 않은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김병기 교수를 만나봤다.

프레시안: 먼저 출판기념회와 서예전을 축하드립니다. 얼마만의 개인전인가요?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이하 김병기 교수)= 2004년 서울의 백악미술관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가졌고 3년 뒤인 2007년에는 전주의 강암서예관에서 두번째 서예전을 열었습니다.이후에는 루마니아와 헝가리, 이탈리아, 러시아 등 서예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나라에서 전시와 퍼포먼스를 통해 서예라는 예술을 소개하고 많은 팬들을 확보했습니다. 이어 2019년 중국 북경대학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일곱번째 개인전을 초청전으로 열고 2020년에는 전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정년퇴임을 앞둔 서예전을 열었으니 이번이 21년간 아홉번째의 전시를 마련한 셈입니다.

프레시안: 이번 서예전은 어떤 의미와 특징이 있나요.

김병기 교수= 대학 교수에서 정년퇴임을 하면서 두 가지 목표가 있었어요. 한자교육을 활성화하고 서예의 진흥에도 일조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번 전시는 저의 그런 목표에 조금 더 다가가는 자리인 셈이죠. 서예와 고전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과 이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싶어 만든 자리이기도 합니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 가운데 절반 이상은 2023년 3월부터 일주일에 두 차례씩 <중앙일보>에 연재된 '필향만리'를 통해 선을 보였던 작품 중에 일부를 모은 것입니다.

칼럼이 연재되는 기간 동안 매일 새벽에 일어나 '논어'에 등장하는 한 구절을 골라 해설을 쓴 뒤, 3주 분량의 글이 모아지면 붓을 잡아 한 작품씩 써내려 갔습니다. '논어' 속의 한 구절을 고르고 거기에 나름의 해설을 쓴 다음, 화선지에 원문을 써 내려가는 모든 과정은 '통쾌하고 행복한 오유(傲遊)'의 과정이었습니다.

▲서울 인사동에서 아홉번째 개인전과 저서 <필향만리>출판기념회를 가진 김병기 전북대학교 명예교수가 자신의 저서에 서명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

오유(傲遊)란 중국의 근대화가인 서비홍(徐悲鴻, 1895~1953)이 "사람은 오기(傲氣)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오골(傲骨)은 없어서는 안된다"는 말에 비롯됐다고 한다. 오기는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오만한 기운으로 불쾌감과 해로움을 주는 나쁜 기운이지만 오골은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뼈대로, 이 뼈대(자기중심)를 잡고서 노니는 것이 바로 오유(傲遊)라는 설명이다.

프레시안: 이력을 살펴보면 독특합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에서 중문학 전공자로, 서예가로….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병기 교수= 저는 전북 부안의 부안김씨 집성촌에서 태어났습니다. 유학자인 선친(영재 김형운 선생)으로부터 유년기에 한문과 서예를 배울 수 있었고, 그 영향으로 평생 한문과 서예를 품고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점차 한문과 서예가 쇠퇴하던 시절이라 유년기와 청소년기는 매우 어려웠습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계에 보탬이 되어야 했기에 전주교육대학에 진학을 해서 초등학교 교사로 남들보다 빨리 사회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배움에 대한 갈망은 여전했고 그 때 마침 전주대학교 야간학부가 생겨 '낮에는 학생을 가르치고 밤에는 학생이 되어 배우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 20대 후반에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과감하게 유학을 결심하고 대만으로 떠났습니다. 그 때가 1980년입니다. '간난신고'의 유학생활이었지만 그토록 갈망하던 한문과 중국문학, 서예의 그윽한 세계에 몰입할 수 있었던 행복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박사학위를 받고 국내로 들어와 공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연구를 하다 2001년 전북대학교로 옮겨 많은 제자들과도 인연을 맺게 됐어요.

프레시안: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의 출발과 정착 과정에 많은 기여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김병기 교수=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권위도 높은 종합적인 서예전시행사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1999년에 이 비엔날레를 탄생시키는 일부터 시작해 22년동안 관여를 해왔습니다. 2009년부터는 총감독을 맡아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를 총괄하며 각계 인사들의 서예 참여를 독려하고 서예인들의 참여 폭을 넓히는 한편 국제간의 서예교류에도 힘썼습니다. 2018년 1월에 그동안 이끌어왔던 비엔날레를 후배 서예가에게 맡기고 서예실과 연구실에서 칩거하는 자세로 돌아와 저술과 작품 창작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다만 해외에서 전시나 초청이 들어오면 모두 수용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모스크바 외국어대학과 북경대학에서 전시와 특강을 요청해 다녀왔고 폴란드, 루마니아, 스페인, 카자흐스탄, 헝가리, 이탈리에 등에서는 서예 공연과 특강, 전시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심석 김병기 교수. ⓒ

프레시안: 요즘같이 손글씨가 사라지는 시기에 서예가 과연 필요한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서예의 미래는 어떻습니까.

김병기 교수= 서구의 문명을 아시아의 문명보다 훨씬 선진적이라고 보는 일종의 모서주의(慕西主義)가 우리 주변에 팽배합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스스로 폐기하다시피 했습니다. 2000년 이상 사용해온 한자를 버리고 한글전용의 어문정책을 채택함과 동시에 영어의 교육과 학습에 지나치게 치중했습니다. 그 결과 대부분 한자로 기록된 우리의 전통문화유산을 알아볼 수 있는 눈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또 우리 전통문화의 핵심인 서예도 광복 이후 소용돌이 치듯 바뀐 문화 환경 속에서 발전하기는 커녕 명맥을 잇기도 쉽지 않아 지금은 서예의 숭고한 예술성과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게 됐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서양사람들은 동양 특히 한자 문화권의 정신문화를 배우려 하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는 2018년 12월에 서예진흥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그동안 퇴조일로에 있던 한국의 서예도 점차 중흥을 맞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처럼 서예를 초중고 필수과목으로 교육하는 것도 고려해볼만 합니다. 이제는 서예가 21세기 세계문화예술 광장의 한복판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서예의 참 맛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프레시안: 우리에게는 한글이라는 과학적이고 미학적인 세계적인 문자가 있는데도 굳이 한문과 한자를 따로 익혀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한문은 폐기해야 할 구시대의 문자가 아니라 앞으로 최대한 활용해야 할 21세기 한국어의 한 축이자 국제문자입니다. 한자와 한문 교육이 학습 전반에 미치는 효과는 매우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틈이 날 때마다 한문을 가르쳐 주시려고 노력하셨고 내가 싫증을 내지 않도록 싫어하는 눈치를 보이면 놀게 했고 잘하는 날은 진도를 조금 더 많이 나가기도 했어요. 이 때 배운 한자는 내 평생 어휘력의 든든한 밑바탕이 되었고 이 방식은 나중에 제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유용하게 적용되었습니다. 가령 학생들이 국사를 공부하면서 '양반들은 경제적으로도 몰락하여 잔반이 되었다'라는 구절에서 '잔반'을 '몰락한 양반'이라고 이해를 합니다. 왜 그런 의미인지는 설명하지 못하지만 뜻을 알았으니 큰 문제 없다고 넘깁니다. 그러나 한 글자 한 글자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통째로 외우는 공부는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이 때 나머지 혹은 부스러기라는 의미의 잔(殘)을 이해하고 문반과 무반에서 나온 양반의 반(班)을 한자로 이해했더라면 나중에 잔설(殘雪)이나 패잔(敗殘)과 같은 단어가 나올 때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학생들은 곧 이해를 하게 됩니다. 학생들도 처음에는 불편해 하지만 2~3주만 지나면 금세 적응을 하고 이구동성으로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다고 합니다. 한자와 한문을 이용해 원론적인 개념부터 분명하게 파악하게 한 다음 진행하는 나의 강의방식이 어떤 강의보다 효과를 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죠. '한글전용'이라는 어문정책은 태생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으며 이제는 우리도 한자는 외국 문자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사용해왔고 사용해야 할 우리의 문자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김병기 교수의 서예작품. ⓒ

프레시안: 교수님은 오랫동안 전북 출신의 문인들의 학문과 문학적 성취를 알리고 학술적으로 성과를 남기는 작업도 이어오고 있는데 소개해 주세요.

김병기 교수: 2011년부터 올해까지 15년째 이어온 학술대회가 있습니다. 부안 출신의 문정공 지포 김구 선생에 대한 학술대회인데 김구 선생은 아시다시피 고려시대의 인물로 원나라 간섭기에 외교문서를 통해 고려의 문화를 지켜낸 분입니다. 또한 젊었을 때는 제주판관으로 부임하여 당시 백성들이 권력이 센 사람들과 들짐승들로부터 밭작물이 피해를 당하고 있는 것을 보고 밭담을 쌓도록 하여 경계를 삼도록 했습니다. 이후로 밭의 경계를 둘러싼 분쟁이 줄어들고 작물을 보호할 수 있어서 많은 제주도민들이 김구 선생의 업적을 칭송하였고 최근에는 제주도의 돌담이 세계농업유산 1호로 등재되었답니다. 당시의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져 최근에 제주도의회와 전북도의회가 문화교류 협약을 체결했다고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역관들이 통역을 하는 과정에 사익을 챙기는 실상을 보고 국가적인 전문 통역인력 양성을 건의하여 '통문관'을 최초로 설치하였고, 성리학의 국내 도입에 선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지금도 암송되는 수많은 한시 작품을 남기는 등 전북인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많이 알려지지 않아 우선 학문적으로 연구를 해보자는 시도가 벌써 15년이 되었고 그 사이에 60여 편이 넘는 연구논문이 발표되었습니다. 이는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져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또 올해부터는 촌은 유희경과 매창 이향금 여사에 대한 문학적 교류에 대한 학술대회를 시작했습니다. 매창은 부안에서 태어난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보다 깊이 있는 학문적 접근이 아쉬웠던 차에 촌은 유희경의 후손들과 인연이 되어 앞으로 다양한 분야로 연구의 폭이 넓어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프레시안: 교수님이 꿈꿔오신 일들,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일들이 있을텐데 끝으로 교수님께 꿈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김병기 교수: 앞서 말한 것 처럼 서예를 진흥하기 위한 방편으로 최근에는 한글서예에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예술의 한 장르로서 국민들이 다 읽을 수 있는 한글 서예를 먼저 진흥해야겠다는 것이죠. 한글 서예가 활기를 얻으면 한자서예는 따라서 진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글서예 국가무형유산 지정을 위한 기초조사'연구용역의 책임자로 연구를 수행했고 그 결과를 토대로 '한글서예 국가무형유산 종목 지정 신청서'를 작성해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를 통해 국가유산청에 제출했습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국가유산청은 한글서예의 국가무형유산 지정을 확정, 공고한 바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 한자교육의 정상적 시행과 서예 진흥을 위해 관련 기관이나 단체와 협의하고 토론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언론 매체를 통해 국민들께 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설득하고 홍보하는 일도 꾸준히 해나갈 것입니다. 많은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심석 김병기 교수. ⓒ

심석(心石) 김병기 교수는 1954년 전북 부안출신으로 공주사범대학과 전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21년 2월 정년퇴임했다.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총감독,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 한국서예학회 회장, 한국중국문화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강연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북경인가, 베이징인가' '김병기의 수필이 있는 서예-축원·평화·오유' '필향만리' 등 31종의 저서를 발간했으며 70여편의 논문과 200여 편의 서예평론을 발표했다.

제1회 원곡서예학술상을 받았으며 현재는 대한민국서예대전 토대작가, (사)호남고전문화연구원 이사장, (사)국제서예가협회 부회장, 강암연묵회 회장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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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홍

전북취재본부 김대홍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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