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가 '혐오표현'이 담긴 정당 현수막에 대해 ‘금지광고물 실무 매뉴얼’을 마련하고, 행정 개입에 나선 것은 단순한 한 지자체의 정책 실험을 넘어서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라는 보호막 뒤에 숨어왔던 '혐오와 차별의 언어'를 공적 규제의 영역으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지방정부 역할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같은 변화가 대부분 지자체에서는 아직 '남의 일'처럼 다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북에서도 평상시에도 정당이름을 내건 혐오현수막이 주요 도로변과 주택가, 학교 인근까지 무분별하게 설치되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최근에는 특정 국가와 외국인을 겨냥한 표현, 사회적 약자를 연상시키는 자극적인 문구가 일부 지역에 내 걸리면서 주민 불편과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는 물론 선관위조차 "정당 현수막은 법적 규제 권한이 없다"는 유권해석에 기대 소극적 대응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우려와 함께, 법적 분쟁 가능성이 행정의 발목을 잡아왔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이에 대해 SNS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혐오표현은 단순한 정치적 메시지가 아닙니다. 서로를 경계하게 만들고, 우리 공동체의 일상에 불필요한 긴장과 갈등을 만듭니다. 시민 모두가 함께 이용하는 공간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문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문제를 더 이상은 방치할 수 없다고 생각한 이유"라고 밝혔다.
'권한이 없어서가 아니라,'권한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것 인지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 할 수 있다.
정 구청장은 이에 "성동구는 '금지광고물 실무 매뉴얼'을 만들었다"고 소개한다.
매뉴얼에 따라 "인종차별적 표현이나 혐오표현이 포함된 현수막은 관련 법령에 따라 신속히 시정명령을 내리고 정비하고 이번 달부터는 판단의 전문성과 합리성을 높이기 위해 옥외광고 심의위원회에 법률전문가도 위촉"했는데 이는 "주민의 불편을 줄이고 행정의 책임을 다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그는 "최근 성동구를 비롯한 여러 지방정부, 그리고 국회와 정부에서도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성동구는 기존 법의 테두리 안에서 대응 방식을 찾았다"고 말했다.
신규 입법을 기다리지 않고, 옥외광고물 관리법의 ‘금지 광고물’ 규정을 적극 해석해 실무매뉴얼을 만들었고, 법률전문가를 위촉한 심의기구를 통해 행정 판단의 정당성을 보완했다는 것이다.
정원오 구청장은 이어 "이제 더 이상 '정당법에 근거해 게재된 현수막은 안타깝게도 임의로 철거할 수 없다'는 답변은 드리지 않으려 한다"고 단호하게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지방정부 차원의 '최초 사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법률적 다툼 가능성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혐오표현을 행정 규제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정당 현수막 규제 논의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정당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와 시민의 인권 보호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으려는 실험이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을지, 그리고 법적·정치적 쟁점들을 넘어 제도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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