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외교원 오승희 교수가 최근 출범한 일본 다카이치 체제의 한일관계에 대해 감정적 외교 관계에서 벗어나 구조적 협력 관계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오승희 교수는 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일평화포럼 정기토론회 '다카이치 내각 출범과 한일관계' 주제 발제에서 다카이치 내각의 외교 방향과 동아시아 질서의 변화를 진단했다.
이재명 정부는 최근 일본의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 출범을 중심으로, 아베 신조 전 총리 이후 일본 정치의 연속성과 단절, 그리고 탈전후 일본의 정체성 변화와 한일관계의 구조적 재편 가능성에 대해 실용 외교를 통한 안정적 대일 관계 유지에 집중하고 있다.
오 교수는 "한일관계는 이제 리더의 개인적 성향이나 일시적 감정에 좌우되지 않는 구조적 협력 단계로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이어, 일본의 정권 교체와 동아시아 국제정세 변화를 중심으로 "한국과 일본 모두 지정학적 제약과 글로벌 경쟁의 틀 안에서 상호 협력을 제도화할 수밖에 없는 시대적 조건 속에 있다"고 강조했다.
오 교수는 일본 다카이치 내각의 정치적 기반은 '아베 레거시의 계승이자 재해석'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다카이치 총리는 아소 다로 전 부총리와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 등 자민당 내 핵심 보수 세력의 지원 속에서 등장했다"며 "아베 정치의 상징인 강한 안보·보수 담론을 계승하는 동시에 '여성 리더십'이라는 새로운 상징성을 부여했다"고 분석했다.
다카이치 총리 선출 배경에는 '아베 노선의 충실한 계승자'로서의 상징성, 독자적 언어와 설득력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파벌 해체 이후의 역설적 재결속 등 3가지 요인이 뒷받침했다는 입장을 내놨다.
오 교수는 이 배경에는 "다카이치가 아베의 경제·안보 노선을 지속할 것을 공언하며 자민당 보수층의 결집을 이끌어냈고, 고이즈미 이후 일본 정치가 ‘원고 정치’로 비판받는데 반해, 다카이치는 자신의 언어로 정치적 메시지를 명료하게 전달했다"며 "기시다 내각 시절 해체된 파벌들이 아소파 중심으로 다시 결합하며 ‘탈파벌의 파벌정치’가 형성된 것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오 교수는 이러한 현상은 권력의 분산이 아니라, 네트워크적 재집중으로 나타난 새로운 보수 정치의 양상으로 평가했다. 또, 이를 "탈(脫)파벌화된 보수 권력의 재구조화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은 2020년대 들어 '전후 일본(Postwar Japan)'에서 '탈전후 일본(Post-postwar Japan)'으로 이행하고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오 교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일본은 패전국의 자기규제를 벗어나 안보 주권을 확립하려는 단계로 접어들었다"며 헌법 개정 논의, 방위비 증액, 자위대 역할 확대 등을 그 증거로 제시했다.
그는 이 변화를 '강한 일본의 귀환(Return of a Strong Japan)'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강한 일본의 귀환에 대해 "전후 일본은 미국의 보호 속에서 자력 방위를 자제해 왔지만, 이제는 미일동맹을 강화하면서도 자율적 방위국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이중 강화 전략(Dual Reinforcement Strategy)을 취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국방정책 차원을 넘어, 일본 사회의 집단적 정체성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일본의 ‘자위대 강화’와 ‘국제사회 리더십 확장'은 궁극주의 부활에 대한 국내외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라면서 "이는 단순히 군사적 현실주의가 아니라, 일본 정치가 자신을 보통국가(normal state)로 인정받으려는 상징적 투쟁의 일환"이라고 강조했다.
오 교수는 한일관계를 정서적 외교에서 구조적 외교로의 전환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카이치 총리의 대한국 발언은 총리 취임 전후로 확연히 달라졌다"며 "이는 개인의 변심이 아니라 국익 중심의 외교적 조정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일관계는 리더십의 변수보다 국제구조의 압력이 더 크게 작용하며,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 구도 속에서 한일은 협력하지 않으면 자국의 국익을 지킬 수 없는 현실에 놓여 있다"면서 "최근 한일 정상회담은 감정적 관계의 회복만이 아니라, 구조적 협력의 틀을 재확인한 상징”이라고 말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도 두 나라 모두 '문제는 문제대로, 협력은 협력대로'라는 실용적 병행 접근을 택하고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현대 일본 정치의 또 다른 특징으로 이미지 정치가 제도화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현상은 "유튜브 생중계, SNS 정치가 일상이 된 시대에, 리더의 표정과 몸짓 하나가 외교 메시지로 전환된다"며 "다카이치 총리가 태극기에 목례하거나 트럼프와의 만남에서 미소를 짓는 장면은 의도된 상징정치(symbolic politics)의 사례"라고 말했다. 또 "국민과의 정서적 접촉이 민주주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새로운 형식으로 발전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정치의 미디어화’는 한일 양국 모두에게 공통된 현상이며, 지도자의 이미지가 정책 신뢰로 직결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일관계와 일본 내 정치 변동을 설명하기 위해선 국제정치학의 구조적 현실주의(Structural Realism)와 탈정체성 외교(Post-identity Diplomacy) 개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한일관계를 구조적 현실주의 관점에서 볼때, 개인적 리더십의 변화가 아닌, 국제체제의 제약(동맹, 안보, 경제 연계성) 속에서 이해해야 하며, 이는 국가 간 협력이 선택이 아닌 구조적 결과라는 현실주의적인 전제가 뒷받침해야 한다는 해석이다.
일본의 탈정체성 외교에 대해선 "과거사나 민족 정체성에 묶인 외교는 이미 설득력을 잃었다"며 "양국이 국익과 글로벌 역할에 기반한 포스트 감정외교(Post-Emotive Diplomacy)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 교수는 특히 다카이치 내각의 높은 지지율(최근 JNN 기준 82%)을 언급하며 "정권의 안정성이 외교적 자율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자민당의 지지율이 낮은 상황에서, 총리의 개인적 인기가 정치적 구조로 전환되지 못한다면 불안정성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오 교수는 "한국과 일본은 단기적으로 협력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제도적 협력체계 구축이 관건"이라며 "한미일 공조, 경제안보 협력, 기술동맹 등 다층적 협력 구조 속에서 양국이 상호의존적 파트너로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협력을 이끄는 것은 외교 엘리트가 아니라, 국민의 이해와 공감"이라며 "양국 지도자가 한일관계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어떻게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지가 향후 외교 안정성의 핵심이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일평화포럼 정기토론회는 한일평화포럼과 박지원 의원실, 이학영 의원실, 김영배 의원실이 주최하고, 한일평화포럼이 주관했다. 토론회는 박지원 의원의 축사에 이어 강창일 전 주일대사의 기조발언, 오승희 교수의 주제 발표, 김현철 서울대 교수의 현장 보고가 이어졌고, 토론회 좌장은 김기정 연세대 교수가 맡았다.
더불어민주당 김영배·이병진 의원, 이수훈 전 주일대사, 오태규 전 오사카 총영사, 양기호 성공외대 교수, 이신철 한일평화포럼 운영위원장, 유길종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부의장, 박종수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 채희원 중부대학교 교수 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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