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저녁 9시 38분부터 짧게는 10여 분, 길게는 1시간 정도 제주시 내 도심지역 3만여 가구에 전력공급이 중단되는 정전이 발생했다. 흔히 그래왔듯이 엘리베이터 갇힘 사고, 주차장 차단기 미작동으로 인한 입·출차 중단뿐 아니라, 신호등과 가로등이 꺼져 온 천지가 암흑세상으로 변해버렸고, 무덥고 습한 여름날 밤에 냉방기 가동이 중단돼 시민들은 더 큰 불편을 겪었다.
19년 전인 2006년 4월 1일 낮에 2시간 30여 분 동안 발생했던 제주도 전역 대규모 정전 사태처럼, 전력 복구에 시간이 더 지체되거나, 섬 전체로 파급된 것이 아니었기에 다행이었지만, 아직도 한여름 밤 정전의 원인에 대해 한전이나 당국에서 구체적인 이유를 발표하지 못했다. 정전이 발생하는 이유는 매우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계통망 운영이나 전력기기 부품 등의 하자 등 기술적 요인뿐 아니라, 새에 의한 변압기 손상, 자동차 충돌 등 전신주의 물리적 사고 등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보다는 한전과 정책당국의 대응 등 ‘사회적 요인’에 보다 더 중점을 두며 책임을 가리는 데 익숙하다. 이번 정전에서 재난안전문자도 보내지 못했다고 제주도청을 비판하자, 제주도는 행정안전부 기준(공급하지 못한 전력량이 120㎿ 이상일 때)이 아니어도 재난문자를 발송할 수 있는 별도의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보다 더한 일은 14년 전에도 있었다. 2011년 9월, 예상치 못한 늦더위의 발생으로 인해 냉방부하가 증가했고, 여기에 더해 추석 연휴 이후 산업체의 가동으로 인한 갑작스러운 전력수요 증가가 있었다. 그런데 당시 예방정비로 인해 멈춘 발전기가 많아 공급예비력 부족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순환 정전을 시킬 수밖에 없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못 미쳐 벌어진 사건이었지만, 결국 당시 에너지를 담당하던 지식경제부 장관이 사퇴했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내용은 아주 극단적 사례일 수도 있겠지만, 정전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사건들이다. 고도의 압축적 경제성장 과정에서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력공급’은 국가적 사명이었고, ‘전원개발촉진법’은 이를 뒷받침하는 법률적 근거였다. 따라서 여기에 반발하는 것은 무소불위의 국가권력에 저항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대규모 발전소와 송전탑 건설에 대한 산발적인 저항은 존재했고, 제도적 민주화 시대 이후엔 더 급격히 분출했다. 그렇지만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력공급’의 혜택을 받는 ‘서울 중심주의’적 관점에서 이런 투쟁은 ‘지역적/지엽적인 사건’에 지나지 않았고, 최근의 재생가능에너지 개발의 담론에서도 이와 마찬가지의 인식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전기는 항상 24시간 끊임없이 공급돼야만 하는 것일까? 우리는 과연 그것을 뒷받침하는 보이지 않는 ‘사회적 희생과 비용’들을 인지하고 전기를 쓰고 있는 것일까?
약 120년이 넘는 우리나라 전력공급의 역사에서 무제한 송전은 1964년 4월 1일 시작했으니 이제야 절반이 지났을 뿐이다. 당시에도 대부분의 농어촌은 전력공급이 어려워 1965년이 돼서야 국가에서 ‘농어촌 전화 사업’을 실시했다. 나날이 증가하는 전력소비량은 경제발전과 근대화의 상징이었기에, 국가 주도로 빠르게 발전소와 송·배전 선로를 건설해 대규모로 전력을 생산·공급하는 구조로 우리나라의 전력 체제는 형성됐다.
이렇게 우리 사회가 전기를 마음껏 쓴지 겨우 한두 세대가 지났을 뿐인데, 24시간 무제한 전기의 사용은 ‘밤’과 ‘어둠’의 감각으로부터 인간을 무뎌지게 했고, 전력 생산 및 공급 과정의 사회적 희생들은 계속 은폐되거나 님비(NIMBY)현상으로만 치부되고 있다. 나아가 전기 없는 삶은 그 누구도 상상치 못하게 됐을 뿐 아니라, 앞으로는 모든 에너지를 전기로 공급하는 ‘전전화(全電化)’의 시대를 앞두고 있다. 가정의 취사와 냉난방뿐 아니라, 수송·교통수단도 모두 전기에너지로 작동하는 장치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에너지는 현대 사회 유지 운영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인데, ‘전기’라는 단 한 가지의 에너지로만 수렴되는 현상은 오히려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취약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정전은 전기의 사용으로 생긴 ‘밤’과 ‘어둠’에 대한 인간의 무뎌진 감각을 다시 회복하는 순간이 돼야 한다. 또한 소비지와 먼 거리에 있는 전력 생산지와 송전 경과지의 주민들과 비인간 존재에 장기적으로 끼치는 부정적 영향과 함께, 첨단기술에 종속된 채 자연으로부터 멀어진 현대 인간의 획일적 삶을 성찰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돼야 한다.
한편, 넉 달 전 봄날 대낮에 ‘일시적 RE100’까지 달성할 정도로 전국에서 재생에너지 보급이 가장 앞선 제주에서 발생한 이번 한 여름밤의 정전은 우리의 미래를 시험하기 위한 사건이기도 하다. 혹자는 지난 4월 말 발생한 유럽 이베리아반도의 정전을 거론하면서 재생에너지가 문제라고 몰아가려 하지만, 여름철 한밤의 전력공급 중단은 재생에너지 탓이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 왜냐하면 햇빛은 밤을 비추지 못하고, 바람은 여름에 가장 덜 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력공급에서 재생에너지의 기여가 거의 없을 때 발생한 정전은, 거꾸로 어떻게 그런 시간에도 재생에너지로 100% 공급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즉, RE100 세상은 햇빛과 바람이 없는 여름철 밤을 시원하고 쾌적하게 지낼 수 있는 재생에너지 기반의 새로운 기술의 개발과 도입이 필요하다. 물론 기술로서 모든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에너지의 과잉 소비를 부추기는 현대 사회의 여러 가지 구조적 문제들과 함께 에너지 사용에 대한 문화적 인식과 태도도 같이 바뀌어야 에너지전환은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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