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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노동경찰', 근로감독관 증원이 능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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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노동경찰', 근로감독관 증원이 능사는 아니다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감독관의 수보다 감독 체제의 질이 중요하다

영어 'Labour Inspection'을 대한민국 정부는'근로감독'이라 번역한다. 여기서 '근로'는 노동이라는 말을 불온시 해온 역사적 맥락에서 비롯된 잘못된 번역이다. '감독' 역시 대부분의 대한민국 노동법 용어가 그러하듯, 일본 노동법 번역을 그대로 따온 결과다. 안타깝게도 '근로감독'이라는 번역어는 'Labour Inspection'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Labour는 '근로'가 아닌 '노동'

조선총독부 시절 '노동'을 금지하고 '근로'라는 용어를 강요했던 일본에서는 '근로'가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식민지에서 해방되었다는 대한민국에는 여전히 헌법과 법령 곳곳에'근로'가 남아 있다. 이런 점에서 대한민국의 노동정책과 노동행정은 사상적·철학적으로 조선총독부 체제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정부의 'Labour' 번역은 일관되지 않다. 'Labour StandardsAct'을 근로기준법으로 번역하는데, 일본에서는 '노동기준법(労働基準法)'으로 번역한다. 대한민국 정부가 'Labour'의 번역어로 '근로'를 고집한다면, 고용노동부의 영어 명칭인 'Ministry of Employment & Labour'도 '고용근로부'로 바꾸고, '노사관계'도 '근사관계'로 바꿔야 법령과 행정에서 용어의 일관성이 맞을 것이다.

근로감독에서 '감독'의 의미

'Inspection'을 일본 법령을 따라 '감독'이라 번역한 것도 지나치다. 'Inspection'의 사전적 의미는 점검·조사·단속 및 이와 관련된 활동을 가리킨다. 군대에서 행군에 나서기 전 중대장이 사병들의 군장을 점검하는 것을 'Inspection'이라 한다. 이는 돌발 상황이 많은 행군 전에 필수 장비의 누락 여부를 점검해 병사의 생존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문제가 발생한 후에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행위가 'Inspection'이다.

같은 맥락으로 'Labour Inspection'도 노동자의 생존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상황이나 요인을 사전에 검사·점검·조사·단속하는 일련의 행위를 말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체제를 협약 81호에서 '근로감독체제(Labour Inspection System)'라 명명한다.

ILO 기준을 충족하는 근로감독관 수

ILO는 노동자 1만 명당 근로감독관 1명을 권장한다. 통계청은 우리나라 노동자 수를 2300만여 명으로 본다. 박근혜 정권까지 근로감독관 수는 2000명에 모자랐으나 문재인 정권 때 1000여 명을 증원해 지금은 3000여 명에 달한다. ILO 기준을 충족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2024년과 올해 상반기의 임금 체불액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아시아경제>(6월 28일 자 인터넷판)에 따르면, 한국의 임금 체불액은 미국의7배, 일본의 22배에 달한다. 미국 노동자 수는 한국의 5배, 일본은 2배 이상인데도 그렇다.

임금체불 '건수'와 '금액'을 구분해야

고용노동부는 "사상 최대 임금 체불액"의 해결책으로 근로감독관 증원을 요구한다. 여기서 핵심을 잘 짚어야 한다. 임금 체불 '건수'와 '금액'의 구분이 그것이다. 고용노동부 노동포털에 따르면, 근로감독관이 2000여 명도 안 되던 지난 2017년 임금체불액은 1조3811억 원, 신고 근로자 수는 32만 7000명, 평균 신고액은 429만 원이었다. 근로감독관이 3000여 명에 이른 지난 2024년에는 임금체불액 2조 448억 원, 신고 근로자 수 28만 3000명, 평균 신고액은 723만 원이다.

2017년 대비 2024년 임금 체불 신고 건수는 13.4% 줄었다. 하지만 임금 체불 총액은 48.1%, 평균 신고액은 68.5% 늘었다. 산술적으로 2017년 근로감독관 1명이 164건의 신고를 처리했다면, 2024년에는 94건으로 근로감독관 대비 임금체불 신고 건수가 42.7% 줄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임금체불액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는 점만 강조할 뿐 신고 건수의 변동 추세에는 침묵한다.

▲ [표1] 근로감독관 수 대비 임금체불 관련 지표(2017년과2024년 비교). 자료: 고용노동부 사이트 자료를 필자 가공.

"사상 최대 임금 체불액" 보도자료의 이면

고용노동부는 근로감독관 증원의 이유로 '과도한 신고사건 처리'를 들지만, 실제로 2024년의 근로감독관 1인 대비 신고 건수는 2017년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보도자료 어디에도 신고건수 감소 추세와 비교하여 임금체불액이 증가한 이유에 대한 설명은 없다.

고용노동부는 임금 체불 신고와 관련된 각종 데이터를 갖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입맛에 맞는 최소한의 정보만 언론에 제공할 뿐이다. 다시 말해 구체적인 정보나 체계적인 분석을 생략한 "사상 최대 임금 체불액" 보도자료를 언론에 뿌리며, 그 원인을 근로감독관 부족으로 몰아간다. 이런 연유로 고용노동부가 부서 정원의 확대를 위해 임금체불 문제를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2015년부터 2024년까지 10년 동안 고용노동부에 신고된 임금체불 현황을 살펴보면, 근로감독관 수가 2000여 명에서 3000여 명 수준으로 늘어나던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임금체불 신고 건수(신고 노동자 수)는 꾸준히 감소했다. 반대로 같은 기간 임금체불 평균 신고액수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그림1] 참조).

전체 임금 체불 신고 건수에서 근로감독관이 근로감독 활동을 통해 자체적으로 적발한 사례는 사실상 전무하다. 임금 체불의 피해를 입은 노동자가 고용노동부에 신고하지 않으면, 임금 체불은 정부 통계에 존재하지 않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 때 증원된 근로감독관 1000여 명 때문에 임금 체불 신고 건수가 감소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사정은 근로감독관 증원만으로는 임금 체불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신고 건수는 줄었지만, 평균 체불액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체불액이 사상 최대를 기록한 현실은 임금 체불이 단순히 고용노동부만의 인력 충원으로 접근할 사안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 [그림1] 2015-2024 연도별 임금체불 신고 노동자수, 신고 액수, 신고 평균액 추이. 자료: 고용노동부 사이트 자료를 필자 가공.

전국 225개 시군구 근로감독 정보는 '부존재'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노동경찰'을 공약하며 근로감독관 증원을 약속했다. 이 공약이 '근로감독체제 강화'를 뜻한다면 동의하지만, 단순히 근로감독관 증원에 그친다면 반대한다. 한국의 근로감독관 수는 이미 OECD 최상위권으로 추정된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권에서 증원된 1000여명의 근로감독관이 임금체불과 안전보건 등 근로조건과 근로환경을 개선하는데 기여했다는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는 근로감독관이라 번역하는 'Labour Inspector'를 일본에서는 '노동기준 감독관'이라 한다. 근로감독관은 노동자를 보호하기보다 '노동자의 근로'를 감시하는 뉘앙스를 주지만, '노동기준 감독관'은 사용자의 노동 기준 준수 여부를 점검하는 이미지를 준다.

몇 년 전 전국 225개 시군구의 근로감독 현황을 파악할 목적으로 먼저 고향인 경북 어느 시군의 근로감독 실태에 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돌아온 답은 '정보 부존재'였다. 지방분권과 지방자치를 말하면서도 실제 노동행정에서는 지방 관련 자료를 찾기 어렵다. 수십억 원의 예산으로 구축한 노동행정 전산망이 지방에게는 그림의 떡인 셈이다.

ILO협약 81호, '근로'가 아닌 '노동기준'의 감독

국제노동기구(ILO)가 지난 1947년 노·사·정 3자 합의로 채택한 '근로감독 협약'81호는 한국 정부가 비준한 최초의 ILO 협약 중 하나다. 지난 1992년 노태우 정권이 비준한 81호는 '근로감독의 기능'을 "△근로시간·임금·안전·건강 및 복지·아동 및 연소자의 고용·그밖의 관련사항에 관한규정 등 근로조건 및 작업 중인 근로자 보호에 관한 법규정을 근로감독관의 권한 범위 안에서 집행하도록 확보하는 것, △사용자 및 근로자에게 법규정을 준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에 관해 기술적 정보 및조언을 제공하는 것, △현행 법규정에 구체적으로 규정되지 아니한 흠결 또는 폐해에 관해 권한있는 기관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국가법령정보센터 번역본)으로 규정한다.

ILO 협약 81호가 규정한 '근로감독의 기능'은 근로조건과 근로환경 등 개별적 노동관계에 집중되어 있으며,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간섭 등 집단적 노사관계에 관한 것이 없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이 늘린 1000여 명의 근로감독관은 공장과 사무실을 방문해 근로기준과 근로환경을 챙기지 않았다. 오히려 (문재인 정권의 업보로 탄생한) 윤석열 정권 하에서 노동조합 사무실을 찾아가 노동조합의 회계장부를 뒤졌다 ILO협약 87호에서 보장한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고, 협약 98호에서 금지한 '반노조차별 행위'를 일삼았던 것이다.

근로감독관, '증원'이 아니라 '권한'을 강화해야

ILO 협약 81호는 '근로감독관의 권한'으로 "△감독대상인 사업장에 주야 어느 시간이든 예고 없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권한(불시감독권), △감독대상으로 인정할 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는 건물에 주간에 출입할 수있는 권한(사업장 출입권), △법규정의 엄격한 준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조사·검사 또는 신문을 할 수 있는 권한(조사검문권)"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근로감독에 관한 법적 근거가 되는 근로기준법 어디에도 ILO 협약 81호가 명시한 근로감독관의 권한은 찾아볼 수 없다.

한국의 근로감독관 수는 양적으로 이미 세계적 수준이다. 산재 사망률이 세계 최고라 야단법석이지만, 근로감독관을 도와 안전감독관 역할을 할 수 있는 안전보건공단 인력도 2000명이 넘는다. 또한 근로감독관의 지시 하에 산업현장을 점검하는 안전대행기관과 보건대행기관 종사자도 수천 명에 이른다.

이에 더해 세계적으로 가장 촘촘한 산업안전보건법령에다 경영책임자의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 중대재해처벌법까지 법령도 충분하다. 또한 정부와 사용자가 들이는 예산도 엄청나다. 이렇게 산업안전을 위한 인력·자원·법령이 충분한데도, 한국의 산재사망률은 OECD 최고 수준이다. '근로감독체제', 다시 말해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사상 최대라는 임금체불액과 세계 최고라는 산재사망의 해결은 기대난망이다.

근로감독관 증원이라는 '양적 접근법' 넘어서야

이재명의 '노동경찰' 공약이 ILO 협약 81호의 취지인 근로감독체제를 확립하는데 기여하기 위해서는 문재인 정권 때 늘어난 1000여 명을 포함해 총 3000여 명에 달하는 근로감독관들이 실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평가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ILO 협약 81호가 명시한 '근로감독체제의 기능'과 '근로감독관의 권한'이 우리나라에서 근로감독에 관한 법적 근거를 제공하는 근로기준법(11장)에 충분히 반영되어 있는지 따져야 한다.

'근로감독관의 권한'을 국제 기준에 맞게 강화했는데도 불구하고 임금체불과 산업재해가 여전하다면, 그때 가서 근로감독관 증원을 논의해도 늦지 않다. 문재인 정부의 근로감독관 증원은 '권한의 강화'같은 질적 개선 없는 근로감독관의 양적 증원이 현실을 바꾸지 못함을 확인시켜 주었다.

'구슬이 서 말'인데 꿰지 않는 고용노동부

현 시기 우리나라에서 근로감독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근로감독관이 양적으로 부족해서라기 보다는 근로감독 체제가 질적으로 부실하기 때문이다. '근로감독 체제의 기능'과 '근로감독관의 권한'에서 법적 근거가 부실하고 제도적 장치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근로감독 체제의 효과적인 구축에 쓸 수 있는 구슬이 서 말임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꿰지 않고 "사상 최대 임금 체불액" 타령만 늘어놓으며 부서 정원 확대의 수단으로 근로감독관 문제를 이용하는 고용노동부 관료들의 '사보타지(Sabotage)'가 진짜 문제다. 이재명 대통령의 '노동경찰' 공약이 고용노동부 정원 확대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7월 1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인근에서 연 수도권 총파업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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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효원

택시노련 기획교선 간사,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사무국장, 민주노동당 국제담당, 천영세의원실 보좌관, 국제화학에너지광산노련(ICEM)에서 일했으며, 지금은 IndustriALL 글로벌노조 프로젝트 컨설턴트로 있다. 근로기준법을 일터에 실현하고 노동자가 기업 경영과 정치에 공평하게 참여하는 사회를 만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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