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의 혁신은 언제나 화려한 신메뉴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짜 변화는 우리가 무심코 버리던 재료에서 시작되고 있다.
못생긴 농산물, 과일껍질,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자재들, 한때 음식물 쓰레기 취급을 받던 이 부산물들이 최근 ‘리싸이클링 푸드(upcycled food)’라는 이름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환경 문제와 식량 위기, 소비자 인식의 변화가 맞물리면서, 식품 산업에서도 새로운 대안이 절실해졌다.
그 흐름 속에서 리싸이클링 푸드는 단순히 음식의 재활용을 넘어서 ‘자원 순환 기반의 식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수백만 톤의 음식이 버려진다. 여전히 먹을 수 있음에도 외형이 기준에 못 미치거나 유통기한이 임박했다는 이유만으로 유통되지 못하고 폐기되는 것이다.
이는 경제적 손실을 넘어 지구 생태계에 무거운 짐을 안기는 구조다.
최근 주목받는 여러 국내외 기업들은 이런 식품 폐기물에 새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국내에서도 못난이 농산물을 활용한 착즙 주스나 말린 간식, 식재료 부산물을 활용한 조미료, 식품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는 잉여 원료를 사용한 가공품들이 점점 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주류 시장에 진입하기엔 한계가 있으며 ‘버리는 걸 다시 쓰는 것’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넘는 데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흐름은 해외에서 더욱 적극적이다. 프랑스의 친환경 베이커리 ‘라 파네띠에 데 자모(La Panetière des Hameaux)’는 판매되지 않고 남은 바게트를 곱게 갈아 쿠키 반죽에 활용한다. 이는 단순한 자원 절약을 넘어 고소한 맛과 바삭한 식감을 가진 새로운 제품으로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벨기에 브뤼셀의 ‘브뤼셀 비어 프로젝트(Brussels Beer Project)’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곳에서는 바게트 두 조각을 원료로 사용하는 맥주 ‘바빌론(Babylone)’을 선보였다.
버려질 위기의 빵이 홉과 함께 발효 과정을 거쳐 맥주로 재탄생한 것이다. 맥주의 풍미도 풍미지만 이 제품이 가진 상징성은 순환경제의 미래를 상징한다.
이런 변화의 뒤에는 가치 소비를 지향하는 MZ세대의 소비 트렌드가 있다. 이제는 가격보다 의미를 브랜드보다 지속가능성을 따지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면서 리싸이클링 푸드는 하나의 ‘윤리적 문화’로 뿌리내리는 중이다.
식품 산업에서 지속가능성은 더 이상 마케팅용 수식어가 아니다.
탄소중립, 순환경제, 자원 절약은 이제 식품을 만들고 유통하는 전 과정의 기본 원칙이 되었다.
특히 환경 비용이 높은 축산업을 대체할 방안으로 곤충 단백질, 배양육, 식물성 단백질 같은 대체식품군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외식 프랜차이즈에서도 플렉시테리언을 겨냥한 식물성 고기 메뉴가 속속 도입되고 있으며 글로벌 식품 기업들은 식물성 유제품과 음료 라인을 공격적으로 확장 중이다. 식물성 식품 시장은 불과 몇 년 사이 폭발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산업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소비자, 정부, 기업 모두가 지속가능성을 새로운 기준으로 받아들이는 문화적 변화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은 단순한 재활용을 넘어 식품 부산물에 새로운 기능을 더하는 ‘리퍼포즈(Food Repurpose)’ 개념에 주목하고 있다.
버려지는 쌀겨에서 항산화 물질을 추출하고 양파껍질에서 퀘르세틴을 얻어내는 기술은 이미 상용화 단계에 진입했다.
정책 측면에서도 정부는 식품 이력제 강화, 못난이 농산물 유통 확대, 리사이클링 가이드라인 마련 등 다양한 제도적 기반을 정비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지역 기반의 중소 식품기업과 스타트업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지속가능한 제조’가 제품의 경쟁력이 되는 시대인 것이다.
리싸이클링 푸드는 단지 쓰레기를 줄이는 ‘환경 실천’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버려졌던 것들의 가치에 다시 눈을 돌리는 시선이며, 자원 낭비를 줄이고 생태 순환을 실천하는 삶의 방식이다.
음식이 다시 쓰이고, 소비가 다시 설계되며 산업이 다시 조정되는 이 구조 속에서 우리는 식탁 위에서 지구의 내일을 선택할 수 있다.
리싸이클링 푸드는 실험이 아니다. 이미 시작된 변화이며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미래의 식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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