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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봄'에서 성장한 저는 올해 투표권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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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봄'에서 성장한 저는 올해 투표권이 생겼습니다

[나는봄 폐쇄 저지 공대위 연속기고②] 서울시는 한 번이라도 위기 여성 청년들을 봤을까

고등학생이던 지난해, 전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았습니다. 가족과의 관계는 소원했고 집은 저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집에 있기가 싫어서 심야까지 거리를 떠돌았고 수험의 강박이 겹쳐 가출까지 한 적도 있습니다. 혼자서 감당해야 했던 시간 속에서 저는 건강도, 마음도 점점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서울시립 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봄'을 알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그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저는 처음으로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을 받아주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진료를 통해 방치했던 몸의 상태를 점검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저를 향한 따뜻한 시선과 존중 속에서 제 마음도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진료가 끝난 후 먹었던 정성어린 한 끼 식사입니다. 늘 가공식품으로 허기를 때우던 제게 그 밥 한 끼는 "괜찮다,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위로였습니다. 저는 깨끗이 씻지 않으면 병에 걸릴 것 같은 강박과 이유 없이 찾아오는 수많은 불안을 나는봄의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치료받았습니다.

이후 나는봄은 제게 단순한 치료 공간이 아니라, 다시 살아갈 힘을 주는 안식처가 됐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곳에서 회복할 수 있었기에 지금은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며, 저처럼 힘든 시간을 지나온 청소년들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깊은 불안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7월, 나는봄 운영을 종료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이용하던 서비스가 하나둘 정리되고, 평소처럼 예약하려다 "신청을 받을 수 없다"라는 말을 들을 때 마음이 무너집니다.

▲서울시립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봄 폐쇄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9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는 과연 우리를 봤던 걸까요? 이 공간이 어떤 의미였는지, 왜 청소년들이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는지를 단 한 번이라도 직접 들으려 한 적이 있었을까요? 나는봄은 의료진과 활동가 선생님들이 진심으로 청소년들을 품어주던 고마운 공간이었습니다. 연령과 경제적 제약, 신원 노출에 대한 두려움으로 병원조차 찾기 어려운 우리에게 항상 문을 열어두었습니다.

서울시는 "사업은 종료하지만 지원은 계속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기존의 전문성을 가진 의료진은 사라지고, 시설과 시스템이 붕괴된 상황에서 그 말은 공허하게 들릴 뿐입니다. 저도, 주변 친구들도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봄이 사라지면 우린 어디로 가야 해?" 이 질문에 서울시는 아직까지도 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침묵이 저는 더 두렵습니다. 저는 이제 만 20세가 되어, 드디어 투표권을 갖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이용자로 머무르지 않고, 시민으로서 이 사회의 결정에 목소리를 내고 책임을 묻겠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님, 저는 기억하겠습니다. 청소년의 삶을 지탱하던 복지기관 하나를, 어떤 공청회도, 어떤 설명도 없이 날치기로 없애버린 그 시정을. 그리고 저는 곧 다가올 지방선거에서 저와 같은 청소년들의 삶을 지켜보지 않은 당신의 행정에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저는 더 이상 두렵기만 한 청소년이 아닙니다. 투표로 말할 수 있는 시민입니다. 제 한 표는 나는봄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공백기 속에 다시 고통받게 될 수많은 친구들 또한 침묵하지 않길 바랍니다.

서울시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나는봄 폐지 결정을 철회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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