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미국과 관세 협상을 본인의 성과로 포장하고 선거에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야당을 중심으로 제기된 가운데, 이같은 관측이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확인됐다. 미 재무장관은 미국과 관세 협상에서 한국과 일본이 서두르는 이유가 선거 때문이라고 밝혔다.
29일(이하 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 참석한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한국이 6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 때문에 7월 초까지 미국과 포괄적인 관세 협상을 성사시키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질문에 "정반대의 전략을 취하고 싶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우리가 회담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이들 정부가 선거 전에 무역 협상의 틀을 마련하고 미국과의 협상에서 성공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는 것"이라며 "그래서 실제로는 협상 테이블에 나와 이를 마무리하고, 이후 돌아가서 선거 운동을 벌이는 데 훨씬 더 적극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답했다.
베센트 장관은 이번주나 다음주에 협상과 관련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인도와 협상은 매우 가까워졌다고 생각한다. 인도는 관세율이 매우 높고 관세 부담도 많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보다 협상하기가 더 쉽다"고 답했다.
앞서 한 대행은 지난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 이후 관세 협상에 속도를 내왔다. 특히 이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것이냐는 질문에 한 대행이 고민 중이라는 취지로 답했다는 <중앙일보>의 보도가 나오면서, 미국과 관세 협상을 자신의 치적으로 포장하기 위해 협상을 서두르려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었다.
10일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국회에서 열린 당 정책조정회의 모두발언에서 양측 간 통화에 대해 "한 대행이 미국의 요구를 다 들어줘 버린 게 아니냐 하는 의심이 제기된다"며 "한 대행의 대미 통상 협상을 믿을 수가 없다"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지난 16일 조국혁신당 김준형 의원 역시 국회 소통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한덕수 권한대행의 선 넘는 행보가 나라를 망치기 직전"이라며 "국민의 선택을 받지도 않은 권한대행이 3권분립의 중요한 축인 헌법재판관 임명권을 사용하더니 같은 망동을 외교영역에도 저지르려 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김 의원은 "(임기가) 50일도 남지 않은 권한대행이 다음 정부의 발목 잡는 것을 넘어 목까지 조를 수 있는 외교협상을 진행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트럼프발 글로벌 통상위기국면에서 전문가를 자처하며 해결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대선 주자로 입지를 다지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인데, 그런 불순한 의도로 미국과 협상을 서두르는 것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이같은 야당의 지적에도 한 대행은 미국과 협상을 밀어붙였다. 그는 21일 경제안보전략 TF(태스크포스)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 워싱턴 D.C에서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및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2+2 통상협의'를 가진다고 밝히면서 협상에 속도를 냈다.
한 대행은 특히 자신과 트럼프의 통화 이후 "미 측의 요청으로 이번 주 양국의 경제, 통상 장관이 만나 협의에 착수하게 됐다"며 "지난 주 일본에 이어 이번 주 우리나라와 협의를 시작하게 된 것은 미국도 우리와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해 본인의 통화가 미국과 협상에 계기가 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대선 주자로서 입지를 다지려던 한 대행의 의도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우선 미 에너지부는 지난 15일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ensitive and Other Designated Countries List·SCL)에 결국 포함시켰고, 실제 해제에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미국과 관세 협상도 한 대행의 성과로 포장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실정이다. 협상 차 미국으로 건너간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25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나 한 대행의 대선 출마에 대해 "노코멘트"라고 말하면서도 "대외 신인도 차원에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낮아지길 바란다"며 우려하는 듯한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또 최 부총리는 미국과 관세 협상을 한국의 대선 전에 마무리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미국에 한국의 대통령 선거 등 정치 일정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점을 전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 측에서 무역 협상과 정치 문제 연계에 대해 언급했냐는 질문에 "그 부분에 대한 미국 측 언급은 없었다"며 "우리 정치 일정이 있고, 행정부 권한 범위가 있고, 입법부 동의 받아야 할 것도 있고 해서 협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얘기했더니 상대 측에서도 동의했다"고 말했다.
미국 측에 한국의 정치 일정을 이야기했다는 것은 이 협상을 차기 정부에서 마무리해야 한다는 취지냐는 질문에 그는 "그런 것은 아니다. 양국 간 무역 관련된 협의를 함에 있어 그런 식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며 "다만 정치 일정을 상기시켜 준 것이고, 그런 것을 고려해서 해야겠다고 언급한 것"이라고 답했다.
이를 두고 미국 CNBC 방송은 "한국 측은 이 과정이 '정치 일정'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미국 측의 이해를 구했다"며 "이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계엄령 선포로 파면된 이후 6월 3일로 예정된 한국의 조기 대선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협상 타결 의지를 표명"했는데 "이는 선거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상되는 야당의 반발에 부딪혔다. 이들은 한 총리가 정치적 이득을 위해 회담을 서두르고 있다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방송은 "전문가들은 또한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한국이 에너지 사업과 방위비 분담금에 대한 확고한 약속을 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며 대선 전에 일정한 합의를 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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