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이 운영하는 게임 '메이플스토리' 홍보 영상에 고의로 집게손가락 장면을 넣었다는 허위 의혹으로 사이버불링(온라인 괴롭힘)을 당한 여성 애니메이터가 경찰의 불송치 결정 수십 건에 이의를 제기하기로 했다.
피해자인 애니메이터 A 씨는 18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경찰이 불송치 결정한 온라인 괴롭힘 수십 건에 대해 이의제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서울 서초경찰서는 허위사실유포 및 신상공개, 성적 모욕 등의 온라인 괴롭힘 308건에 대한 A 씨 고소를 각하(불송치) 결정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재수사했다. 이후 가해자 86명을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과 모욕죄, 스토킹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으나 여전히 다수 온라인 괴롭힘에 대해서는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A 씨는 "경찰이 송치 결정한 괴롭힘과 불송치 결정한 괴롭힘의 수위가 비슷해 불송치 결정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경찰 측에서는 기존 자료를 참고해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는데 정작 어떤 자료를 참고했는지 묻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며 "사건과 관련한 정보를 명확히 공유해주지 않고 불송치 사유도 납득하기 어려워 이의제기를 결정했다"고 경위를 설명했다.

그는 지난 2023년 11월 넥슨의 '메이플스토리' 홍보영상 속에 집게손가락을 넣었다는 의혹을 받아 각종 온라인 괴롭힘을 받았다. 당시 충격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정신과 진료를 받았던 A 씨는 반복되는 집게손 억지 논란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느끼는 등 여전히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A 씨는 "내가 겪은 사건 이후로도 계속해서 집게손 검열이 발생하고 있다. 최근에도 웹툰계와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집게손을 이유로 기업이 성명을 내거나 그림작가가 해고당하는 등의 사건이 발생해 '평생 이런 위협을 겪으며 살아야 하나'라는 절망감이 든다"며 "집게손 사태가 터질 때마다 PTSD가 오는 등 상태가 악화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럼에도 A 씨는 집단린치를 피해 움츠러들었던 과거에서 벗어나 앞으로 페미니스트로서의 자신을 드러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는 괴롭힘의 수단으로 악용돼 비공개 처리했던 자신의 SNS 계정을 최근 다시 공개 처리하며 "앞으로도 페미니스트로 살 것"이라는 게시물을 올렸다. 아울러 이의제기에 필요한 비용을 도와달라며 시민들에게 직접 후원을 요청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이어진 '탄핵광장'에서 자신이 페미니스트임을 드러내는 여성들,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사회적 약자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에게 힘을 얻고 있다고 했다.
A 씨는 "시위와 광장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시민들과 그들을 박수치며 환영해주는 시민들을 보고 '내가 더 이상 숨어있지 않아도 괜찮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더 이상 페미니스트를 나의 피해자 정체성만으로 생각하지 않고, 여전히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며 앞으로 나서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지를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했다.
A 씨의 용기에 화답하듯 많은 시민이 A 씨를 향한 격려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지난 17일 A 씨의 후원 요청에는 200여 명이 참여해 12시간 만에 목표액을 초과했다. 예상치 못한 속도로 목표액을 달성해 초과 후원금은 돌려줘야 할 정도다.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에 대해 A 씨는 "모아주신 마음 절대 잊지않고 힘내서 싸우겠다"며 "다시 한 번 정말 감사드린다"고 했다.

디시인사이드 등 다수의 인터넷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지난 2023년 11월 메이플스토리 홍보 영상 속 여성 캐릭터의 손가락 모양을 지적하며 '페미니스트인 애니메이터가 남성을 비하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넣은 장면'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해당 영상을 제작한 B사 소속 애니메이터들의 SNS를 뒤져 페미니즘 관련 게시물을 올린 A 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일부 커뮤니티 이용자들은 A씨의 이름, 사진, SNS, 카카오톡 등을 공개하고 '한강에 빠져 죽어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등 집단적으로 공격했다. X에서는 A씨의 부모까지 거론하며 살해 협박 및 성적 혐오감을 일으키는 글을 보내는 이용자도 있었다.
일부는 회사 홈페이지에 게시된 워크숍 사진 속 특정 직원을 지목하며 'A는 30대 기혼 여성'이라는 허위사실을 유포하기도 했다. 회사에는 외부인이나 같은 층을 사용하는 타사 직원이 찾아와 몰래 촬영하거나 '페미를 해고하지 않으면 텐트를 치고 시위하겠다'는 일부 단체의 협박이 발생했다.
논란이 된 장면을 그린 애니메이터는 A 씨가 아닌 40대 남성 작가라는 사실이 밝혀진 뒤에도 괴롭힘이 이어졌다. 2023년 11월25일부터 2024년 1월4일까지 A 씨 측이 파악한 괴롭힘만 최소 3500여 건에 달했으며, A 씨는 이 가운데 온라인 괴롭힘 308건에 대해 고소를 진행했다.
게임업계 종사자들은 온라인 이용자들의 집단 괴롭힘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이용자 인식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지난해 2월 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3 게임업계 노동환경 종사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25일에서 11월 8일 서면 인터뷰에 참여한 20~30대 게임업계 종사자들은 "정부가 개발자의 개인 신상정보를 파헤쳐 인터넷에 게시하는 사이버 테러가 심각한 범죄임을 알리고, 이를 비롯한 불법적 행위에 대해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면 이용자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종사자들은 인식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인식개선 교육 진행 △커뮤니티 가이드라인 강화 △모니터링 및 신고 시스템 개선 △온라인 괴롭힘 대한 기술적 차단 등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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