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소위 '월권' 논란이 국내 정치 분야를 넘어 대외적 문제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권한 없는 헌법재판관 지명은 국내 법령으로 해결이 가능했지만, 관세 문제를 포함한 미국과 협상은 이를 막을 수 있는 뾰족한 법적 수단이나 효력을 가지는 절차가 없기 때문에 더욱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한 대행이 미국과 상호관세를 포함한 협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과 관련 "협상에서 범하지 말아야 할 과오가 두 가지 있다. '원칙의 굴레', '시한(時限)의 굴레'를 쓰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라며 한 대행이 스스로 시한의 굴레에 갇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과의 사안에서도 시간을 끌면서 트럼프의 대외정책이 우크라이나 문제라든가 중국과의 문제에서 탄력을 받는지 등을 봐가면서 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새로운 대통령이 들어오기도 전에 한 대행이 본인의 업적을 만들려고 하는 건 '시한의 굴레'를 우리가 뒤집어쓰게 되는 것"이라며 "이러면 상대방에게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정 전 장관은 지난 8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한 대행의 통화 이후 "미국에서는 아무런 이야기가 없는데 한국에서만 '양측이 영어로 회담했다', '트럼프가 한 대행에게 출마하냐고 물어봤고 한 대행이 검토하겠다고 했다'는 등의 이야기를 흘렸다는 건 외교에서 기본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한 대행 측이 매우 잘못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러한 말이 나왔다는 점을 공개한 것이 더 문제라고 짚었다. 정 전 장관은 "한미 협상을 총 지휘해야 할 한 대행이 이런 내용을 공개하면 미국과 협상에서 끌려갈 수밖에 없다. 미국은 한 대행이 본인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겉으로 성과가 될 만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한 대행도 성과를 위해 미국이 하자는 대로 끌려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정 전 장관은 "트럼프는 처음부터 한국에 대해 '머니 머신'(Money Machine)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한국과 협상을 돈을 뜯어내기 위한 것으로 규정해버렸다. 이는 한국이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 있다는 약점을 이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한 대행이 진짜 대통령이 되려는 욕심으로 한미 동맹에 기여했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 트럼프가 제안한 '관세문제와 묶은 방위비 협상'을 받아들인다면 이건 매우 우려할 문제"라고 짚었다.
정 전 장관은 "권한대행이 미국과 협상을 한다고 해도 결론은 내지 말아야 한다. 서두를 이유가 없다. 한 대행의 헌법재판관 지명부터 일이 수상하게 풀려가고 있는데, 국가의 이익이라는 점에서 보면 협상은 계속하면서 샅바싸움만 해야 한다"며 "권한대행은 상대방의 협상 전략과 전술을 정리해서 다음 대통령에게 넘겨 줄 준비하는, 현상유지를 하면서 악화는 막는 일을 해줘야 한다. 자기가 결정하면 안 된다"고 주문했다.
그는 "어차피 한 대행도 본인의 부하인 관료들이 미국의 의중을 타진하게 될 테니, 후배들이 공을 세우도록 하고 대행 체제 하에서는 결론내지 말아야 한다"며 "딴 생각 하지 말고 상황관리나 하길 바란다. 본인의 국내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대외 통상 문제를 활용하면 '제3의 을사늑약'이 나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박인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상임고문은 변화하는 세계정세를 보지 못한 채 한 대행 측이 미국과 관성에 따른 협상을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미국의 국력과 신뢰도가 추락하고 있는 중"이라고 분석했다.
박 상임고문은 "미국은 지난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 경제제재로 두달 내 러시아를 꺾고 중국과 대결하겠다고 계산했는데, 지금은 미국이 종전을 간청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일부에서는 미국이 주도하지 않는 세계를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전했다.
그는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미국에 의존적이다. 한반도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배치되기 전인 2017년에는 한국 대외 교역액의 25%가 중국이었고 미국이 15%였는데 지금은 미국이 19%로 가장 높고 중국이 이보다 살짝 낮다. 또 2023년 전 세계에서 대미 투자액이 제일 많은 나라가 한국이기도 하다"며 윤석열 정부가 변화하는 국제정세를 읽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박 상임고문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2022년 이후 안보도 경제도 모두 미국에 의존하게 됐는데, 장기적으로 미국이라는 나라의 쇠퇴로부터 한국의 국익을 지키기 위한 계획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대담은 16일 서울 공덕동에 위치한 (사)한국통일협회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대담 주요 내용이다.

박인규 :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지는 차기 대통령 선거가 이제 50일도 채 남지 않았다. 6월이 되면 한국에 새 정권이 들어서는데 미국의 상호관세를 포함해 우리가 대응해야 할 것들이 많다.
이런 와중에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한 내용이 언론에 나오기도 했다. 권한대행이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한 것은 중요하지만, 트럼프가 한 대행에게 출마할 거냐고 물어봤다는 내용이 언론을 통해 나오고 있다는 것이 이례적이다.
정세현 : 정상급 간의 전화 회담을 통역 없이 28분이나 했다는데, 일단 영어를 사용한 것 자체가 잘못됐다. 고 홍순영 외교부 장관에게 "외교부 사람들은 외국 사람들과 회담할 때 다른 부처 사람들보다 영어를 능통하게 사용할 수 있어서 편리하겠다"고 했더니 정색을 하면서 영어가 아무리 능통해도 공식 회담에서 통역없이 대화하면 안 된다고 했다.
통역이 이뤄지는 동안 다음에 할 말을 생각하고 문제되는 발언 없는지 살펴보려면, 아무리 영어가 능통해도 장차관급 이상의 대화에서는 공식적인 회담이라는 측면에서 통역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홍 장관의 견해였다. 더군다나 국가 간 정상급의 대화라면 보안 문제도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고 하더라. 그런데 한 대행은 영어가 능통하다며 트럼프와 직접 대화했다. 트럼프는 편했을 수 있지만 바람직한 대화 방식은 아니다.
대화 내용을 언론에 흘린 건 더 큰 문제다. 정상급의 전화 회담은 백악관과 총리실 또는 안보실이 협의해서 그 범위 내에서 통화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아무런 이야기가 없는데 한국에서만 '양측이 영어로 회담했다', '트럼프가 한 대행에게 출마하냐고 물어봤고 한 대행이 검토하겠다고 했다'는 등의 이야기를 흘렸다는 건 외교에서 기본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한 대행 측이 매우 잘못한 일이다.
설사 그런 말이 오갔다고 해도 대선 때까지 관세 문제를 포함해 미 에너지부의 '민감국가' 지정 등 한미 협상을 총 지휘해야 할 한 대행이 이런 내용을 공개하면 미국과 협상에서 끌려갈 수밖에 없다. 미국은 한 대행이 본인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겉으로 성과가 될 만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한 대행도 성과를 위해 미국이 하자는 대로 끌려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이 주한미군의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상호관세와 '패키지딜'로 처리하자고 하는데, 관세 문제에서 미국의 양보를 받아냈다는 '업적'을 내기 위해 방위비 문제 관련해서 얼마나 손해를 보는 협상을 할지 모르는 일이다. 한 대행이 하려는 미국과 협상에 불안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박인규 : 미국은 원래 사안별로 협상을 하는데 기존의 미국식 협상과는 다른 것 같다.
정세현 : 트럼프는 좀 다르다. 외교정책 결정과정(foreign policy decision making process)이 없이 본인의 입에서 나오면 그게 곧 외교정책이 된다. 사실 미국의 대외 협상은 국무부, 상무부 등 부처가 담당하는 사안에 따라 진행하고 이를 백악관이 연결·조정하는데, 트럼프는 처음부터 한국에 대해 '머니 머신'(Money Machine)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한국과 협상을 돈을 뜯어내기 위한 것으로 규정해버렸다.
이는 한국이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 있다는 약점을 이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 대행이 진짜 대통령이 되려는 욕심으로 한미 동맹에 기여했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 트럼프가 제안한 '관세문제와 묶은 방위비 협상'을 받아들인다면 이건 매우 우려할 문제다.
박인규 : 한 대행도 본인이 대통령이 되고 싶은 생각이 있고, 트럼프 대통령도 다른 후보에 비해 차라리 한 대행이 나을 것 같으니 밀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정세현 : 미국 입장에서는 한 대행이 대통령이 되면 임기 동안 마음대로 한국을 휘두를 수 있으니까 좋을 수 있지만, 결국 우리 국민들이 선택할 문제다. 우리 국민은 줏대 있는 외교를 할 사람을 선호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를 끝내고 모인 자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외교는 '자국중심성'이 있어야 하겠다고 말하더라.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하면 소위 '반미'(反美)로 몰릴까봐 우려가 된다고도 이야기하더라. 미국에 굴종하지 않으면 '반미'라고 딱지를 붙이는 우리나라 극우들의 외교철학은 정말 문제다.
미국 입장에서는 자국중심성을 이야기하는 이 대표보다 굴종적으로 기어들어올 수 있는 사람을, 탄핵 정국이라는 어려운 시기에 한 대행을 도와주면 결국 자신들에게 이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 한국을 마음대로 휘두르면 이후에 미국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고, 일본과 캐나다, 멕시코 등에 본때를 보여줄 수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일본은 서두르지 않겠다고 하는데 한 대행은 이런 국내 정치 시국에서도 마지막 소명을 다하겠다며 대선 출마에 대한 가능성을 여전히 열어두고 있다. 그런데 한 대행이 실제 지금 한미 간 현안을 원만히 해결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주요 현안 중 하나인 민감국가 문제를 보면, 미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ensitive and Other Designated Countries List·SCL)에 지정했는데 이는 한국이 재처리와 농축의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나온 문제다.
한국은 지난 1982년 '민감국가'로 분류됐다가 1994년에 해제됐다. 1991년 남북총리급 회담을 통해 기본합의서의 상당 부분이 만들어지고 있던 그해 7월 미국은 한국의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하와이로 불러내 남북 간 빠른 속도의 관계 개선이 나쁘지는 않은데 북한이 지금 핵을 개발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이걸 막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비핵화 8원칙을 분명히 넣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합의해서 발표하라고 했다.
그래서 핵문제 협상을 총리급 회담과 별도로 했고 이후에 결국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1항에서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아니한다"라는 합의가 나오게 됐다. 그때는 북한만 비핵화로 묶으면 되지 왜 우리한테까지 이러나 싶었는데 지금 보니 우리가 민감국가에 이미 지정돼 있던 상태라, 북한 핑계를 대고 남한도 비핵화로 묶었던 것이다.
여당 인사 중에는 대통령이 되면 1년 안에 핵무장을 하겠다고 공언하는 사람도 있다. 뭘 알고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한미 간 원자력 이용 문제와 관련해 평화적 이용 이외의 것, 그러니까 원자력의 군사적 이용은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 한미 원자력협력협정의 정신이었다. 이건 1959년 이승만 때부터 내려왔는데, 한국이 조금이라도 핵무기 개발이나 무장 쪽으로 움직이면 미국은 굉장히 민감하게 움직인다.
이건 통상교섭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다루기 어려운 사안이다. 한 대행이 통상교섭을 지휘했던 경험을 가지고는 있지만, 핵 문제와 연관된 민감국가 지정 해제 문제까지 총괄 지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미국이 핵 문제와 주한미군 문제, 관세 문제를 전부 묶어서 협상하려고 한다면 통상보다는 더 큰 시각을 가지고 이를 조율할 필요가 있다. 협상 대표 중에 한 사람 정도가 통상 분야를 맡을 수는 있지만, 각각 사안에 대해 대표가 있고 이를 전체적으로 주도해야 할 사람이 따로 있어야 한다.
대행은 진짜 상황관리만 하고 대미 협상에서도 상대방 의중을 타진하는데 그쳐야 한다. 어차피 한 대행도 본인의 부하인 관료들이 미국의 의중을 타진하게 될 테니, 후배들이 공을 세우도록 하고 대행 체제 하에서는 결론내지 말아야 한다. 딴 생각 하지 말고 상황관리나 하길 바란다. 본인의 국내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대외 통상 문제를 활용하면 '제3의 을사늑약'이 나올 수도 있다.

박인규 : 당장 미국과 협상해야 할 문제가 상호관세, 방위비 분담금,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민감국가 등이 있는데, 권한대행은 현상유지만 해야 하는데 불가역적으로 미국과 무엇인가를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정세현 : 협상에서 범하지 말아야 할 과오가 두 가지 있다. '원칙의 굴레', '시한(時限)의 굴레'를 쓰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과의 사안에서도 시간을 끌면서 트럼프의 대외정책이 우크라이나 문제라든가 중국과의 문제에서 탄력을 받는지 등을 봐가면서 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새로운 대통령이 들어오기도 전에 한 대행이 본인의 업적을 만들려고 하는 건 '시한의 굴레'를 우리가 뒤집어쓰게 되는 것이다. 이러면 상대방에게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권한대행이 미국과 협상을 한다고 해도 결론은 내지 말아야 한다. 서두를 이유가 없다. 4.19 이후에도 과도정부가 있었는데 선거관리만 했다. 그런데도 한 대행의 헌법재판관 지명부터 일이 수상하게 풀려가고 있는데, 국가의 이익이라는 점에서 보면 협상은 계속하면서 '샅바싸움'만 해야 한다. 권한대행은 상대방의 협상 전략과 전술을 정리해서 다음 대통령에게 넘겨 줄 준비하는, 현상유지를 하면서 악화는 막는 일을 해줘야 한다. 자기가 결정하면 안 된다.
김정은, 국내 정치적으로 힘빠진 트럼프 만나지 않을 가능성
박인규 : 하나씩 문제를 살펴봤으면 좋겠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금 이야기를 직접 꺼내고 있기 때문에 협상은 불가피해 보이는데, 실제 어느 정도 상승하는 것이 현실적일까?
정세현 :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100억 달러(한화 약 14조 원)는 비현실적이다. 지난해 협상에서 1조 3000억 원으로 합의했는데, 미국이 분담금을 더 내지 않으면 미군을 철수하거나 감축할 수 있다고 위협해도 '그러면 그러든지'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어차피 미국은 그들의 동북아 정책상 주한미군 철수를 못하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은 이제 대북이 아닌 대중 억지용이다. 미국이 함부로 빼거나 줄일 수가 없다. 이걸 우리가 역으로 이용해야 한다. 트럼프는 이란핵협상도 깼던 사람이니까 지난해 한미가 합의한 방위비 분담금 협정도 깰 수 있는데, 우리가 미리 20% 정도 더 줄 수 있다고 하고 이 이상은 안 된다는 식으로 버티면 미국도 딱히 별다른 수가 없을 것이다.
박인규 :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도 최근 곳곳에서 거론되고 있다. 실제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주한미군의 역할이 북한에 대한 억지용만은 아니라고 했다.
정세현 : 미군기지가 용산에서 평택으로 넘어가던 때 이미 주한미군은 대북에서 대중국 억지용으로 그 성격이 변했다. 예전에는 소위 '인계철선'(引繼鐵線, '폭발물의 격발장치와 연결한 철선'이라는 의미로, 남한 입장에서 동맹국인 미국이 자동개입하게 하기 위해 공동경비구역에 미군을 배치하는 상황을 뜻하는 것으로 의미가 확장됐다.) 개념에 입각해 최전선에 미군이 있었다. 남한은 이들이 북한을 억제해주길 바랐다.
그런데 미국은 이미 1991, 92년에 공동경비구역(JSA)에 나가있는 병력을 철수하고 한국에 그 역할을 넘겨주려고 했다. 하지만 한국이 당신들이 뒤로 빠지면 미국의 자동개입 가능성이 줄어드니 그대로 있어달라고 했다. 미군이 있어야 북한이 함부로 도발을 못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다가 평택 기지로 미군이 옮겨가면서 '대북 억지력 + 알파'의 기능을 하던 미군 역할에서 '알파'가 더 커진 것이다.
이번에 주한미군사령관이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 주한미군 필요성을 미국 내에 알리기 위한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3~4월은 미국 예산이 편성되는 시기인데 그 전 경험으로 보면 이 때 으레 북한군이 전진 배치됐다느니, 공격력이 높아졌다느니 등의 이야기가 나왔었다. 북한군 동향도 이야기하고 다른 역할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주한미군에 더 많은 예산을 가져오려는 구상일 수도 있다.
박인규 : 미국의 군사력이나 주한미군의 영향력이 한반도 안보와 평화에 도움이 되는지도 고민해봐야 한다. 지난 3월 한미 연합 훈련 도중 전투기 오폭으로 포천 접경지역에서 수십 명이 부상을 당했는데, 당시 훈련이 이전보다 강도가 강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국내 정치 상황이 유동적이었는데,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실사격 훈련이 포함됐다는 것이 좀 이상해 보인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전시작전통제권이 미국에 있는 것이 안전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미군이 있어서 계엄을 막았다는 논리인데, 한편으로는 미국의 중앙정보국(CIA) 등으로부터 사주 받은 계엄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미국이 진주만도 그렇고 1차 세계대전에서도 상대방의 공격을 유도해서 정당한 전쟁이라고 선전해왔기 때문이다.
실제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CIA 국장이 한국에 오면서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통령 선거 후보자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미국 정보기관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있었다. '외환죄'에 해당하는 범죄도 윤석열 전 대통령의 혼자 생각보다는 미국에서 사주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왔다.
정세현 : 까딱했으면 폭탄이 북에 넘어갔을 수 있었는데, 북쪽을 자극해서 판을 키워가지고 계엄을 불가피하게 만들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해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비상계엄을 계속 언급하고 다녔다고 하지 않나. 올해 봄 한미연합훈련 계획은 지난해 가을에 세웠을텐데, 이 때 계엄을 선포하기 위한 요건을 만들고자 북한과 충돌을 유도하려고 접경지역 실사격 훈련을 반영했을 수는 있어 보인다.
그런데 미국이 사주한 것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미국의 동아시아전략에서 보면 북한을 자극해서 미국의 군사개입을 강화하는 것이 대중압박 전략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국은 핵문제를 협상의제로 해서 북미관계 개선하고 수교를 통해 평양에 대표부를 세우는 것이 대중전략 추진에 있어 굉장히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다. 평양에 대표부가 들어가면 중국 입장에서는 인중(人中)에 비수가 꽂히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박인규 : 통상에 안보 문제도 엮여 있어서 전방위적인 대응팀이 필요한 상황인데,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미국의 국력과 신뢰도가 추락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은 지난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로 두 달 내 러시아를 꺾고 중국과 대결하겠다고 계산했는데, 지금은 미국이 종전을 간청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일부에서는 미국이 주도하지 않는 세계를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미국에 의존적이다. 한반도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배치되기 전인 2017년에는 한국 대외 교역액의 25%가 중국이었고 미국이 15%였는데 지금은 미국이 19%로 가장 높고 중국이 이보다 살짝 낮다. 또 2023년 전 세계에서 대미 투자액이 제일 많은 나라가 한국이기도 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2022년 이후 안보도 경제도 모두 미국에 의존하게 됐는데, 장기적으로 미국이라는 나라의 쇠퇴로부터 한국의 국익을 지키기 위한 계획을 고민해야 할 때 아닌가?
정세현 : 미국이 관세 문제 가지고 억눌렀더니 오히려 캐나다가 멕시코와 그린란드를 다 끌어들여서 미국을 포위하려 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에 145% 관세를 때리니까 중국은 미국에 125% 관세를 때렸고 희토류 수출을 허가제로 바꾸겠다며 반격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관세를 통해 미국으로 투자를 유치하고 미국 내 고용을 창출하고 내수 경제를 원활하게 돌리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이 쉽게 이뤄지기 어렵다.
더군다나 미국은 유럽연합(EU)에도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그러면 우크라이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나? 내년 11월 중간선거가 중요한데 이대로 계속 가면 트럼프 대통령의 입지가 좁아질 가능성이 높다.
박인규 : 트럼프 스스로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취임 즉시 끝내겠다고 했지만 사실 이건 허풍이고 실제로는 4월 20일까지 끝내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안될 것 같다. 이런 와중에 이달 말이면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100일이다. 미국 대통령들은 무엇인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취임 100일 내로 해야 가능하다고 하는데 관세와 우크라이나 전쟁 모두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 같다.
정세현 : 우크라이나 문제 해결 못하고 여러 나라로부터 반격당하면서 고립당하면 그런 트럼프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만나려고 할지도 문제다.
박인규 : 트럼프가 북미대화에 나서려면 국내 정치적으로 성과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보니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면 북미협상도 쉽지 않아 보인다.
정세현 : 트럼프가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듯이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를 언급했으니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는 미국이 자신들의 몇 가지 요구만 들어주면 얼마든지 정상회담도 가능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트럼프가 국제적으로 코너에 몰리고 있다 보니 대외 협상력이 떨어지고 있다.
박인규 : 이렇게 되면 트럼프 정부는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신경도 못 쓸텐데, 새로운 정부는 북한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정세현 : 정권교체가 이뤄진다면 일단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더라도 북핵문제의 첫 발을 떼라고 요구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국민들에게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 한다. 소위 '통미봉남'(通美封南. 남측을 배제하고 미국과만 대화함)이라고 해도 미국과 먼저 소통하면(통미)하면 '봉남'도 풀릴 수 있다. 북한과 미국이 대화를 시작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수순을 밟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할 필요가 있다.
박인규 : 우리 입장에서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북미 수교가 바람직하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촉구할 필요가 있다는 뜻인가?
정세현 : 그렇다.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언제 핵전쟁이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 미국이 좀 더 적극적으로 추동해서 북핵 문제 해결 수순을 밟도록 미국을 지원해야 한다. 그렇게 북미 관계가 좋아지는 흐름을 타야 남북 관계도 개선하는 쪽으로 갈 수 있다.
예전에는 통미봉남이 바람직하지 않은 모양새였다. 그런데 지금 남북 관계를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새 정부가 맨 먼저 해야 되는 외교 과제는 북미 대화를 권장하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핵 문제 해결이 필수적인데, 북미 대화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이미 북한의 핵 보유를 어느 정도 인정한 상황이라 이를 처음으로 돌리긴 좀 어렵겠지만, 그 토대 위에서 핵 확산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북한이 남쪽을 상대로 해서 핵을 쓰지 않도록 묶어두는 국제 협력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한반도 주위의 6국이 다시 만나야 한다.
박인규 : 전 세계적으로 힘의 분포가 바뀌고 미국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는데 관세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상황에서 남한은 물론이고 한반도와 동아시아가 평화를 가져가기 위해서는 북한의 고립을 탈피시키고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면서 북미 간 수교까지 가는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
우리나라가 지난해 12월 3일부터 4개월 이상, 거의 반 년 정도를 국내 정권의 향방에 다 몰입돼 있다 보니까 우리를 둘러싼 국제 환경이 완전히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각이나 인식조차 없다는 것이 문제다. 우리가 완전히 처음 보는 세상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자각이나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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