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광주 광역시에서 개최된 탄핵 반대 집회의 참가자 일부가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앞에 놓인 5.18사적지 표지석을 발로 차는 등 위협행위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록관 측은 안전 문제를 우려해 결국 휴관하기에 이르렀다. 사상 초유의 법원 습격에 이어 5.18을 상징하는 장소마저 훼손하려는 시도까지 극우세력의 난동이 도를 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5.18기록관은 지난 15일 홈페이지에 '임시 휴관 알림'을 공지했다. 공지에 적힌 휴관일시는 당일 12~18시, 휴관 사유는 '청사방호 및 시민안전'이다.
안전을 이유로 5.18기록관이 휴관한 것은 이례적이다. 공지 게시판을 보면, 이전까지 5.18기록관의 휴관 사유는 △코로나19 추가 확산 우려 △기념관 내부 공사 △정기휴관일인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관련 조례에 따라 다음날 대체휴일 시행 등이었다.
5.18 표지석 발로 차고, 기록관 안에서 유튜브 중계 시도
<프레시안> 취재에 따르면, 광주 탄핵 반대 집회가 개최된 지난 15일 오전 11시 경 광주비상행동에는 '5.18기록관 앞 표지석을 발로 차고 걸터앉는 사람들이 있다'는 제보가 접수됐다. 이에 광주비상행동은 즉각 경찰에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의 위협 행위를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5.18기록관은 탄핵 반대 집회 장소 인근으로, 참가자들이 집회 참석에 앞서 이곳에 모인 것이었다.
기우식 광주비상행동 대변인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일부 집회 참가자들의 표지석 공격에 대해 "광주시민이 보기에는 명백하게 5.18 정신을 폄훼하고 훼손하는 행동이었다"며 "그 표지석은 그냥 표지석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굉장히 소중하고 신성하게까지 느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몇몇 보수 성향 유튜버는 기록관 안으로 들어가 방송 생중계를 시도했다. 기록관 직원들은 유튜브 방송을 통한 집회 참가자들의 진입 유도 등 혹여나 있을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유튜버들의 출입을 제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집회 참가자들은 집회가 열리기 이틀 전 기록관 건물 내부를 사전 답사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15일 탄핵반대 집회 장소 인근에는 "5.18에 북한개입은 사실", "현재 유공자 상당수는 가짜"라고 적힌 자유민주당 명의 현수막도 걸려 있었다.
청사방호 업무를 수행하던 경찰은 당일 아침 5.18기록관 측에 휴관을 권유했다. 안전을 우려했던 기록관 측은 이같은 권유를 받아들이고 휴관을 결정했다. 오전 11시 30분 경부터 건물 안에 있던 시민을 바깥으로 안내하는 업무가 이뤄졌고, 탄핵반대 집회 시작 두 시간 전인 오후 12시 5.18기록관은 문을 닫았다. 경찰은 이후로도 기록관 앞에 경력을 배치했다.
휴관 뒤 5.18기록관 앞에는 '오월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오사모)' 회원과 오월어머니회 어머니들이 찾아왔다. 이들이 '여기가 어떤 곳인데 와서 이러냐'고 항의하자,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정당한 집회를 왜 방해하냐'고 맞서 한동안 실랑이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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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어머니들, '집회 못하게 드러눕겠다'고까지…"
지난 15일 기록관 앞에서 펼쳐진 상황은 큰 사고 없이 마무리됐다. 그러나 당일 열린 탄핵 반대집회와 참가자들의 행동은 5.18 유족과 광주시민에게 상처를 남겼다. 이후 광주에서 다시 탄핵반대 집회가 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15일 광주 탄핵반대 집회에 대해 기 대변인은 "법적으로 보면, 집회·결사의 자유 등을 고려할 때 시민이면 누구나 공공장소 어디서든 집회를 할 수 있다. 보수단체가 계엄이 아닌 다른 주제로 집회를 하면 반대할 명분도 이유도 없다"며 "그런데 1980년의 상처와 계엄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 곳에서 이 시대에 벌어진 불법 계엄을 정당화하겠다고 하고, 그 정당성을 주장한 것은 노골적인 모욕으로밖에 비춰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오월 어머니들은 우리에게 '(탄핵 반대) 집회 자체를 못하게 드러누워 버리겠다'고까지 하셨다. 연로하신 분들이 그런 일까지 하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그러지 마시라'고 말렸다. '우리도 우리 집회를 충실하게 해내자'고 말씀드렸다"고 광주 탄핵반대 집회에 대한 시민사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경찰에 대해서도 "그런 집회를 하겠다는 사람들도 문제가 있지만 관리해야 할 사람들도 광주라는 지역사회의 시민들이 느끼는 감정을 고려한 지혜로운 통제 전략을 세워야 한다"며 "전혀 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고, 격앙될 수도 있는 대규모의 시민을 차벽 하나로 갈라놨다. 결국 경찰이 굉장히 위험한 판을 만든 것이다. 유감스러웠다"고 밝혔다.
기 대변인은 향후 대응방안에 대해서는 "이미 독일은 나치 선동을 못하게 한다. 한국사회에 그런 법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계엄 옹호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 대한민국의 헌정질서 자체를 부정하는 주장까지 거대한 물리력을 동반한 집회 공간에서 선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옳은지 사회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5.18기록관은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보존하기 위해 2015년 설립된 광주시 산하기관으로, 5.18에 대한 시민의 기록과 증언, 군사법정 자료, 피해자의 일기, 언론인이 찍은 사진필름과 취재수첩, 미국의 5.18 관련 비밀 해제문서 등을 보관·전시하고 있다. 그 중 일부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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