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3조3000억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내년도 예산안을 둘러싼 정부와 여야의 막판 협상이 최종 결렬되며 더불어민주당이 4조1000억원을 단독으로 삭감한 예산안이 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국회는 10일 본회의를 열고 재석의원 278명 중 찬성 183명, 반대 94명, 기권 1명으로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했다. 본회의를 통과한 내년도 예산안은 677조 3000억 원으로 정부안인 677조 4000억 중 4조 1000억 원이 줄었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달 2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정부원안 대비 4조1000억 원을 감액한 수정 예산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민주당은 정부가 당초 제출한 677조원에서 4조1000억원가량을 삭감했는데, 이 중 정부 예비비는 4조8000억원 중 절반인 2조4000억원이 삭감됐다. 검찰 특정업무경비(506억9100만원)와 특별활동비(80억900만원), 경찰 특활비(31억6000만원),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 특활비(82억5100만원) 등도 전액 삭감됐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본회의가 열리기 전 기자들과 만나 "오늘 기재부가 최종적으로 우리의 증액안을 수용 안 했고 국민의힘도 동의하지 않아서 예산안 협상이 결렬됐다"며 "기재부의 입장을 요약하면 예결위가 감액한 4조 1000억 원 중 2조 1000억 원을 복원해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기재부가 복원을 요구한 2조 1000억 내역은 예비비 1조 8000억 원, 국고채 이자 상환 감액안 5000억 원 중 3000억 원이었다. 민주당에 따르면 기재부는 민주당의 정책요구 예산 9000억 원을 반영하겠다고 제안했다. 지역화폐 예산 4000억 원, 고교무상교육 국고지원 3000억 원, AI 재생에너지 지원 등 2000 억 원 등이었다.
진 정책위의장은 "민주당은 감액된 예산을 복원하려면 그 복원 규모에 맞게 민생 예산도 증액돼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지만 이에 대해 기재부가 최종적으로 수용하지 않았다"며 "국민의힘도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예산안 협상이 최종 결렬됐다"고 말했다.
진 정책위의장은 "당초 민주당은 예결위 의결안에 더해 추가 감액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했고, 실제 독자로 처리할 수정안까지 준비한 것이 사실이지만 내란 사태로 인해 우리 경제위기가 한층 가속화되고 있고 국민 불안이 커지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 추가 감액 하지 않고 예결위 의결안을 그대로 반영해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결정했다"고 했다.
민주당은 민생경제 회복에 추가적인 재정이 필요할 경우 내년에 추경(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이를 지원할 수 있다는 방침도 밝혔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생과 경제 회복을 위해 증액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추후 추경 등의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일방 통과된 예산안을 두고 "이재명 방탄용이자, 국가마비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며 거세게 비판했다. 국민의힘 김상훈 정책위의장은 이날 현안 브리핑을 열고 "민생을 저버린 '이재명 지키기' 끝판왕, 독선적인 민주당의 일방통행식 예산안 처리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김 정책위의장은 "이재명 리스크를 온몸으로 떠안은 민주당은 검찰과 경찰의 특활비를 전액 삭감하면 이재명의 죄도 삭감되는 줄 착각한다"며 "민주당은 차라리 재판이 이뤄지지 않도록 사법부의 예산을 삭감해 이재명의 정치 생명을 연명하는 게 옳았는지도 모른다"고 공세 수위를 높였다.
이어 "민주당이 정부·여당과 협의 없이 보복성으로 삭감한 검찰과 경찰의 특수활동비 내역을 살펴보니 금융사기 사건, 사회적 약자 대상 범죄, 인권 보호, 마약 수사 등 민생 침해와 직결돼 있는 수사로 드러났다"며 "민주당은 사회적 약자 대상 범죄 관련 수사비 삭감이 '이재명 구하기'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국민 앞에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예결위 소속인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도 반대토론을 통해 "정부의 예산안을 일방적으로 삭감해서 도대체 어떤 효과를 기대하는 것인가"라며 "예결소위와 간사의 협의를 통해서 순조롭게 진행되던 예산안이 마지막 순간에 갑자기 민주당 일방 삭감 예산안으로 이 자리에 도착했다"고 비판했다.
예산안이 통과된 뒤 우원식 의장은 "민생과 경제 회복을 위해 증액이 필요한 부분은 민생 예산 추경으로 확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민생 예산이 증액되지 못함으로 국민이 피해를 입지 않고 경제적 약자와 취약계층이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정부는 내년도 예산 심의가 시작되는 즉시 추경 편성 위한 준비에 착수해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이날 예산안과 함께 부수법안들도 통과되며 내년도 1월 1일 시행 예정이었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가 폐지됐다. 가상자산 과세는 2년 미루기로 했다.
진보당 전종덕 의원은 본회의 반대토론에서 "상위 1%를 위한 감세가 어쩌다 맨생 법안이 되었는지 도저히 납득이 가질 않는다"며 "금투세를 폐지하고 가상자산 과세를 유예하는 것은 조세 정의를 무너뜨리고, 사회의 양극화와 불평등을 부추긴다"고 했다. 조국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가상자산 과세가 청년의 기회 사다리를 걷어찬다는 주장도 있는데, 청년에게 위험이 큰 코인 투자를 부추기는 것이 제대로 된 정치인가"라고 비판했다.
다만 상속세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10% 포인트 낮추고 과세표준을 조정하는 내용의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은 부결됐다. 민주당은 당초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에는 반대했지만 배우자 공제 확대 등에는 협상의 여지가 있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오기형 의원은 상속세 반대 토론에 나서서 "국회 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향후 5년간 상속·증여세법과 관련한 세법 개정안을 포함해 서민·중산층 세 부담은 1조7000억원 감소되는 반면 고소득자 세부담은 약 20조 원 감소한다고 한다. 지금 이 법을 처리할 이유가 없으니 부결시켜줄 것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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