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 내부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에 대한 직권조사 실시 여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남규선 상임위원은 12.3 계엄 선포가 '5.18 등 국민적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했다는 점에서 인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직권조사 필요성을 피력했으나,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은 '탄핵 절차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반대했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추후 논의하자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남규선 인권위 상임위원은 5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제23차 상임위원회에서 "이번 비상계엄령 선포로 인한 인권 침해는 인권위가 지난 23년간 해온 직권조사 내용과 비교해 그 이상의 무게를 갖고 있다"며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직권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0조에 따르면, 인권위는 인권침해나 차별행위가 있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고 그 내용이 중대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해당 사건에 대해 직권조사를 실시할 수 있다.
남 상임위원은 "계엄군이 군용헬기를 타고 국회에 도착해 유리창을 부수고 국회에 난입했다. 또한 총기를 겨누며 국회 보좌진을 위협했고 국회의원들은 봉쇄조치로 담장을 넘어야 했으며, 국회의원 및 정당 대표에 대한 체포 시도가 있었던 바 신체 자유에 대한 위협이 있었다"며 "또한 국회 앞에 모인 4000여명의 시민들은 무장 계엄군과 대치하며 계엄군의 총구 앞에서 공포를 느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특히 5.18 민주화항쟁 등 사건 당시 계엄군의 (계엄령) 선포로 그간 극악무도한 인권유린을 당한 시민들은 12.3 계엄령 선포로 인해 극심한 트라우마의 고통을 당했다"며 "오늘 오후에라도 상임위원회를 개최해 이 문제를 논의할 수 있기를 위원장에게 요청한다"고 했다.
이를 두고 김용원 상임위원은 비상계엄령 선포에 대한 인권위의 직권조사는 적절하지 않다며 남 위원의 주장에 반대했다. 김 상임위원은 진정 제기 당시 진정 원인과 관련해 재판, 수사, 또는 그 밖의 법률에 따른 권리구제 절차가 진행 중이거나 종결된 경우 진정을 각하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2조를 근거로 대며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책임을 물어 대통령직을 박탈하는 절차가 진행되고 있으니 법에 따라 진정 사건이 제기되더라도 각하를 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충상 상임위원 또한 "상임위는 상임위원 두 명이 의안을 제출할 수 있고, 전원위원회는 3명이 제출할 수 있는데 남 위원 혼자 상임위서 (직권조사) 심의를 요청하거나 오후에 다시 상임위를 열자고 안 된다"며 사실상 직권조사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을 냈다.
이날 회의에서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비상계엄과 관련한 어떠한 의견도 내지 않았다. 안 위원장은 "회의 끝난 다음 더 논의하도록 하자"며 침묵을 지켰다.
상임위원들이 직권조사 여부를 두고 다투는 사이, 인권위 직원들은 비상계엄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인권침해라고 규정하며 규탄 성명을 냈다. 전날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국가인권위원회 지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사태에 대해 "헌정 실서가 중단되고 민주주의는 군홧발에 짓밟혔다"며 강력하게 규탄했다.
인권위 노조는 "12월 3일 늦은 밤, 대한민국 대통령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국민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민주주의의 전당인 국회에 공수부대를 투입했다"며 "또한 계엄사령관 육군대장 박안수는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침탈하는 등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파괴하여 중대한 헌법질서를 유린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는 국가인권위원회 소속된 인권공직자이자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헌법과 국제인권규범, 그리고 양심에 따라 행동할 것임을 천명한다. 인권을 침해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그 어떠한 시도에도 협력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제 대통령 윤석열은 국민의 명령에 복종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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