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특례시는 1일 ‘서파 류희의 국학 연구와 학문적 위상 재조명’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서파 류희 선생은((西陂 柳僖·1773~1837)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음운학자 및 박물학자로, 과거에 합격했으나 관직에 진출하지 않고 일생의 대부분을 용인에서 보냈으며, 사후 모현 왕산리에 묻힌 용인의 대표적인 역사 인물로 꼽힌다.
이날 류희 선생의 ‘언문지’ 저술 200주년을 기념해 열린 학술대회는 문학 전문가 4인의 주제발표에 이어 학계 전문가 4인의 종합토론으로 진행됐다.
주제발표에서 권은지(충남대학교)는 ‘조선 후기 통유와 서파 류희의 연구 실적 비교’를 통해 "류희는 스승 정동유의 실증적 태도를 본받았으며, 19세기 통유(여러 분야에 두루 통달한 유학자)로서 국어학, 문학, 과학, 수학 등 다방면에 걸쳐 학문을 연구한 학자였다"고 밝혔다.
오보라(고려대학교)는 ‘서파 류희의 자국어 시가에 대한 관심과 한시 창작’을 통해 "서파 류희는 양반 문학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중국의 민간문학도 저속하게 보지 않고 그 가치를 인정했다"며 "말과 시와 음악을 불가분의 관계로 보고 ‘시조’ 10수를 지었다"고 당시 한시 창작의 배경을 설명했다.
또 박부자(성신여자대학교)는 ‘어원 및 어휘사 연구 자료로서의 ’물명고‘의 가치와 향후 과제’를 통해 "‘물명고’에는 한자물명-실물-우리말 물명의 대응 관계가 담겨 있고, 명칭의 유래와 다른 문헌에서는 볼 수 없는 290여 개의 물명이 확인돼 그 가치가 뛰어나다"고 전했다.
김양진(경희대학교)은 ‘조선 정음학에서 ’언문지‘의 학술적 위치’에서 "서파 류희는 우리말이 한자에 비해 학습과 기록면에서 훨씬 우수한 문자라는 것을 인식하고, 우리말의 바른 표기법과 발음법에 대해 세밀하게 연구해 ‘언문지’를 저술했다"고 평가했다.
이상일 시장은 "류희 선생은 조선시대 과거에 합격했으나 관직에 진출하지 않고 초야에서 연구 활동에 힘써 ‘문통’과 ‘언문지’, ‘시물명고’ 및 ‘물명유고’ 등을 집필해 국어학 연구에 한 획을 그은 류희 선생은 우리 용인의 중대한 문화자산"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에서도 류희 선생의 업적을 알리기 위해 지난해 11월 소식지에 4페이지에 걸쳐 소개한 바 있고, 이번 11월 소식지에도 학술대회 내용을 상세히 실어 시민들에게 알리려고 한다"며 "오늘의 학술대회를 통해 류희 선생이 남긴 저서를 깊게 연구하고 계승해 많은 교훈을 얻고 그 뜻을 잘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