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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케어러 10만명, 돌봄 제공자이자 당사자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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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영케어러 10만명, 돌봄 제공자이자 당사자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영케어러 지원의 핵심, '조기 발견'과 '자립 지원'

정부가 영케어러(Young Carer) 지원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한지 2년 반을 넘겼다. 제6회 청년정책조정위원회에서 '가족 돌봄 청년(영케어러) 지원대책 수립 방안'이 발표된 게 지난 2022년 2월 14일이다. 이후 우리 주변에 아동, 청소년, 청년이 사적인 영역에서 아픈 이를 돌보면서 학업, 진로 이행, 생계를 하고 있다는 인식이 조금씩 확산됐다. 그동안 이들에 대한 지원은 얼마나 변화했을까?

2022년 진행한 정부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13세~34세의 영케어러는 10만 명 규모로 추산한다. 이들을 위해 바우처 형태로 지원하는 '일상돌봄서비스'와 자기돌봄비 200만 원과 돌봄 코디네이터가 배치된 전담 기관인 '청년미래센터'가 일부 지역에서 시범사업 중이다.

서울시는 '가족돌봄청년 전담기구'를 만들어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광주광역시 서구는 구 차원에서 영케어러 전수조사를 한 후 매월 25만 원씩 지급하는 '가족돌봄청년수당'을 지급한다. 올해 9월 기준으로 영케어러를 대상으로 한 광역 및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조례는 86개에 이른다. 민간에서 시작한 영케어러 지원사업은 이제 2~3년차에 접어들었다.

영케어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며 지원은 빠른 속도로 확산됐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를 뒷받침할 법적 근거는 부족한 실정이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영케어러 지원 관련 법안이 3개가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이번 22대 국회에서도 지난 7월 31일 '가족돌봄아동·청소년·청년 지원법안'이 발의됐지만,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앞선 변화들이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성를 담보하기 위해서는 법적 근거가 중요하다. 법적 근거를 어떻게 마련하면 좋을지, 어떤 역할이 필요하고 더 고민해야 하는 지점은 무엇인지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영케어러 사례관리전담기관을 두자

법률 근거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은 유의미하지만, 꼭 단독으로 지원법이 필요한 것인가 하는 논의가 있다. 먼저 현재 사회적 안전망에 왜 영케어러들이 들어오지 못했는지 철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그들은 경제적 어려움에도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못했는지, 왜 위기가정임에도 가족센터의 지원은 받지 못했는지, 왜 장애인 가족 지원이 있음에도 장애인 가족을 돌보는 영케어러들은 받지 못했는지, 왜 취약 아동임에도 아동복지에서 영케어러를 확인할 수 없었는지 등, 기존의 복지체계에 대한 반성이 우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또한 지원법이 마련될 시, 한국의 사회복지의 고질적인 문제인 서비스 파편화가 더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기존에 신청 가능한 복지제도가 있음에도 영케어러들이 어려운 이유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복지와 사회서비스 정보를 알아서 찾아내지 못하고, 지난한 신청 절차에 필요한 진단서나 소득 관련 서류들을 마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원법을 마련하고 영케어러를 담당하는 지원센터가 설립된다면, 다른 기관에게는 '영케어러는 내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생겨 더 방치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럼에도 나는 영케어러 지원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앞선 우려되는 지점을 보완해서 현행 법률의 개정과 함께 맞물려 지원법을 고민해야하고, 서비스가 파편화되지 않을 수 있도록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기보다 기존의 서비스를 통합해서 제공하는 영케어러 사례관리전담기관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관계를 형성하고 어른이 되어줄 사례관리가 필요하다

영케어러 지원의 핵심은 '조기 발견'과 '자립 지원'이여야 한다. 돌봄의 부담이 장기화돼서 돌봄제공자도, 돌봄 당사자도 모두 피폐해졌을 때 '발굴'하는 것이 아니라 돌봄 상황이 발생했을 때 예상 가능한 피해나 부정적인 영향을 낮추는 것을 목적으로 조기 발견해야 한다. 동시에 자립 지원은 청년기에 진로 이행이나 경제적 자립에 더해,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성장 과정의 자립까지도 포함해야 한다.

아동기, 청소년기에 돌봄 상황에 놓이며 아픈 당사자와 형성된 애착 관계와 과도한 책임감 등으로 생애 이행 자체를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때 온전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정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정서 지원 뿐 아니라, 고립되지 않고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관계 지원도 필요하다. 이런 역할을 전담할 수 있는 사례관리기관이 있어야 한다. 특히 아동, 청소년, 청년의 이행기 속성을 잘 이해하는 것을 바탕으로 돌봄제공자와 돌봄당사자가 겪는 어려움을 고르게 고려하는 개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영케어러가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주변에 어른이 없기 때문이다. 돌봄을 나눠지는 어른도, 돌봄 문제를 상의할 어른도 마땅치 않다. 부재한 어른의 자리를 공적으로 회복하는 역할이 사례관리라고 본다. 아이가 돌봄 상황에 있더라도 5년 후, 10년 후에 어떻게 잘 살아갈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는 일종의 '매니저'인 셈이다. 누군가는 돌봄을 더 잘하고 싶을 수 있고, 누군가는 돌봄을 하고 싶지 않을 수 있으며, 누군가는 돌봄을 해서는 안 되는 상태일 수도 있다. 개인별로 섬세하게 고려하는 맞춤형 지원이 되려면 영케어러에 전문화된 기관이 필수적이다.

영케어러 지원을 시범적으로 진행하는 현장들을 보면 서비스가 있음에도 지원하지 못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대게 영케어러는 서비스를 원하지만, 아픈 당사자인 부모나 조부모가 서비스를 거부하는 상황이다. 이럴 때 반복해서 찾아가며 신뢰를 쌓고 설득하고 인식의 변화를 만들어줄 '관계 형성'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현행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가정도 있다. 이런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한 명의 사례관리사에게 과도한 인원이 배정되어선 안 된다. 현재 보건복지부에서 시범사업 중인 청년미래센터는 광역의 센터당 돌봄코디네이터 6명을 배치하고, 1명당 100명의 영케어러를 사례관리하겠다고 발표했다.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다. 한 사례관리사당 적정한 인원을 명시해야 한다. 몇 명이 적정 인원인지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

영케어러 정의와 번역의 문제

영케어러의 정의와 번역에도 문제적인 지점들이 있다. 영케어러 지원을 가장 활발하게 하는 서울시의 조례에는 영케어러의 가족 범위가 협소하다. '서울특별시 가족돌봄청년 지원에 관한 조례'는 돌보는 가족의 범위를 민법 제779조, 그러니까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 등으로 제한한다. 하지만 이미 시민사회나 학계에서도 민법 제779조가 가족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하기에 수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실제로 조부모와 함께 살다가 조부모 모두 돌아가시며 조부모가 돌보았던 장애가 있는 삼촌을 돌보는 영케어러도 있고, 비혈연 가정위탁가정에서 자라 자신을 길러준 노부부를 돌보는 영케어러도 있다. 이 외에도 오늘 날 가족의 형태는 더욱 다양해지고, 돌봄을 맡게 되는 경로도 복잡해진다. 2022년 정부의 실태조사에서도 영케어러 중 '기타 친인척'을 돌보는 경우는 18세 이하의 경우 11.56%, 19~34세의 경우 22.93%를 차지한다. 민법 제779조에 해당하지 않은 영케어러가 적지 않은 셈이다. 호주는 영케어러를 부모님, 배우자, 형제자매, 자녀, 친척, 친구를 돌보는 25세 이하로 보고 있다. 민법 제799조로 가족을 제한하기보다, 구체적인 돌봄관계를 맺고 있는 상황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돌봄 과정의 어려움 정도나 스트레스를 파악하는 척도로 영케어러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영케어러의 번역의 문제도 고민해야 한다. 이미 영케어러는 '가족돌봄청년'으로 번역해서 쓰고 있다. 그에 따라 아동은 '가족돌봄아동', 청소년은 '가족돌봄청소년' 등으로 부른다. '가족돌봄청년'이라는 용어는 영케어러 처음 대책을 마련할 당시에 국립국어원이 '가족돌봄휴가', '가족돌봄휴직'를 차용해 가족돌봄청년'을 제안하며 등장했고, 이후 대책 안에 담기며 공식화됐다.

하지만 현장에서 청소년들을 만날 때 이 용어를 애써 쓰지 않는 모습들을 자주 목격한다. 실무자들은 아이들에게 가족돌봄을 앞으로도 계속 해나가야 한다는 '책임'을 부과하고 '낙인'을 찍는 것 같아서 이 말을 피한다고 했다. 돌봄 상황에서 아동, 청소년, 청년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사회적 호명이 생긴 것인데, 외려 돌봄 안에 가두는 호명이 되는 것이다.

조금 더 당사자 친화적인 용어로 변화가 필요하다. 영케어러라는 원어에는 '가족'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는다. 지원법을 마련할 때 이 용어까지 다시 고민해야 한다. 돌봄아동, 돌봄청소년, 돌봄청년 혹은 아동돌봄자, 청소년돌봄자, 청년돌봄자 등으로 바꿔 부르면 어떨까? '가족을 돌본다'에 방점을 찍는 게 아니라, '이행기에 돌봄을 한다'에 방점을 찍자. 앞으로 오래토록 쓰일 용어라면 당사자가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용어로 변화가 필요하다.

지역사회 돌봄이 잘 돼야 영케어러 부담도 완화한다

돌봄제공자와 돌봄당사자를 함께 지원하려면 다양한 돌봄서비스가 필수적이다. 현행 서비스는 대부분 가사 지원이나 방문 요양 정도다. 이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돌봄 욕구들이 있지만, 지역사회에는 마땅한 자원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 상황에서 영케어러를 지원하는 실무자는 영케어러의 자립을 위해 아픈 이를 시설이나 요양병원에 입소시킬 것을 권유하게 된다. 그 길 말고는 자립을 위한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영케어러의 자립과 돌봄당사자의 돌봄 필요는 대립적인 것일까? 이를 대립적인 것으로 두지 않으려면 더 많은 지역사회의 돌봄 자원이 있어야 한다.

이는 지난 3월 26일 제정된 '돌봄통합지원법'의 내용을 잘 마련하는 것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가사 지원이나 방문 요양 뿐 아니라 방문진료나 간호, 재활 지원, 수시 안전 확인 방문, 단기보호, 주거 수리, 심사지원, 병원이나 공공기관 동행 및 이동지원 등 다양한 욕구들을 충족할 수 있는 서비스가 보편화돼야 한다. 더불어 정신장애, 희귀질환, 중증질환은 돌봄서비스가 전무하다. 보편적인 돌봄서비스의 확충 없이 영케어러만 지원하겠다는 건 반쪽짜리 지원에 불과하다. 아픈 당사자도 잘 살 수 있는 지역사회를 만들 때, 영케어러도 그만큼의 부담을 덜 수 있다.

돌봄자 중 영케어러만 지원한다면, 한국 사회에서 돌봄 부담의 형평성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질병이나 장애, 자립적인 생활이 어려운 가족을 돌보는 부담이 꼭 아동, 청소년, 청년만의 문제인가? 그렇지 않다. 실제로 사적인 영역에서 아픈 이를 돌보는 역할의 대부분은 중장년과 노년이 수행한다. 이들 또한 육체적 피로, 정신적 고통, 경제적 빈곤을 호소하지만 이들에 대한 제대로 된 실태조사나 사회적 지원도 없다.

또한 영케어러의 돌봄이 장기화된다면 영케어러는 중년 케어러가 된다. 청년에서 중년이 된다고 돌봄 부담이 사라질 리 만무하다.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돌봄자 지원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 영케어러 지원에서 다양한 세대의 돌봄자의 지원으로 확대해나갈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모두가 돌봄을 하더라도 아프지 않고 고립되지 않으며 손해 보지 않는 세상을 꿈꾸자. 영케어러 지원을 그 시작점으로 삼자.

▲ 서울시 정책 뉴스 '영케어러' 갈무리.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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