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경기지역 한 학교에서 ‘청소년 유해 성교육 도서’로 지정돼 폐기 처분되는 등 5857권의 서적이 학교에서 폐기되거나 열람 제한된 사실이 알려지며 불거진 논란이 국감장에서도 도마에 올랐다.
22일 경기도교육청 등에 대한 국회 교육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는 해당 사안에 대한 의원들의 질타가 집중됐다.
가장 먼저 질의에 나선 더불어민주당 백승아(비례) 의원은 "한강 작가가 우리나라의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됐다. 한강 작가의 작품 하나하나가 세계적으로 뛰어난 문학적 가치를 지녔다고 생각한다"며 "채식주의자를 읽어봤는지. 유해한 성교육 도서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백 의원은 "경기도교육청은 지난해 11월 ‘학교도서관 유해한 성교육 도서 선정 유의 공문’을 학교에 내려보내면서 ‘부적절한 성교육 도서 즉각 폐기하라’ 등 성교육 도서들의 음란성을 문제 삼아 청소년 유해도서로 선정해야 한다는 기독교계 학부모 단체와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의 주장이 담긴 기사를 붙임 자료로 보내는 등 총 3차례에 걸쳐 공문을 시행, 일선 학교에서의 성교육 도서의 폐기를 압박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정 단체의 주장에 따라 경기도에서만 2528건에 달하는 성교육 도서가 검열·폐기됐다. 도교육청에서 아무리 부인해도 결국 편향적 지시가 세계적 문학 작가인 한강 작가의 작품을 폐기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라며 "이번 사태는 교육계 블랙리스트를 만든 것과 다름없다. 향후 이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엄중히 대응해 달라"고 요구했다.
같은 당 정을호(비례) 의원도 "도교육청의 시대착오적 도서 검열로 노벨문학상 도서가 폐기 처분되고, 열람이 제한 당했다"며 "지금까지는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폐기된 것만 알려졌는데, 그런 식으로 폐기된 도서는 무려 2517권에 달하고, 이에 더해 열람이 제한된 도서도 3340권인 사실이 확인됐다. 총 5857권의 서적이 학교에서 사라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특히 도교육청은 교육지원청과 각급 학교에 공문을 보내면서 ‘청소년유해매체물 심의기준’을 보내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했다"며 "이로 인해 일선 학교 중 94%가 이를 기준으로 점검한 뒤 도교육청에 보고했는데, 이는 도서 검열로 볼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해당 사안이 각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임 교육감은 "독서 검열은 적절하지 않다. 학교에 보낸 공문에 언론의 내용을 그대로 보내 마치 기준을 제시한 것처럼 비춰진 부분은 잘못됐다.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라면서도 "하지만 학교에서의 도서 구입 또는 폐기는 학생과 학부모 및 교사 등 학교 구성원들로 구성된 도서심의위원회의 전적인 권한으로, 학교 자율성을 최우선 가치로 생각하는 입장에서 학교에서 도서 문제는 도서선정심의위원회의 전적인 판단을 존중한다"고 답변했다.
이어 "지금 학교에서는 폭력이나 딥페이크 범죄 및 성희롱 등의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상황으로, 성과 관련된 범죄들이 많아 적절한 독서 지도를 통한 주의 환기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며 "교육적 차원에서 연령별 또는 학생들의 발달 단계에 따라서 권장할 도서나 독서 지도가 필요한 도서는 있을 수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교육현장에서 제대로 교육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조국혁신당 강경숙(비례) 의원은 "4개월 사이에 세 번씩이나 공문을 보내놓고 폐기 목록까지 취합했다는 것은 (교육청이)관리감독을 하겠다는 것으로, 학교의 권한을 중시하겠다는 임 교육감의 말과 앞 뒤가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민주당 김문수(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갑) 의원도 "문화예술·도서·언론에 대한 사전 검열은 인간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인권을 탄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예술성과 창의력을 막는 것으로, 학생들과 국민들에게는 문화예술의 자유를 향유할 권리를 뺏는 것"이라며 "그런 측면에서 이번 경기도교육청의 선정성이나 동성애 등을 이유로 책을 검열해 폐기 처분한 행위는 독재 정권에서나 행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책 뿐만 아니라 폐기 또는 열람제한된 서적들을 원상복구 시켜 학생들이 있는 그대로 읽게 하고, 토론을 통해서 합리적인 성교육을 하는 것과 오히려 교재로 활용하는 것 이런 방법이 훨씬 옳다고 생각한다"며 현재 폐기 논란이 불거진 서적들의 원상복구를 촉구했다.
같은 당 진선미(서울 강동갑) 의원 역시 "전국에서 경기도에서만 해당 책들이 폐기되거나 열람이 제한되고 있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비롯해 ‘눈먼 자들의 도시’ 등 외국에서 상을 받은 책들은 당연히 우리가 더 권장을 해야 된다"고 "경기도의 아이들만 이런 좋은 책들에 의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 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에 대해 임 교육감은 "문화나 예술에 대해 검열을 하는 행위는 시대에 맞지 않는 정책이지만, 학교에서 학교 구성원들이 의논을 통해 결정한 사안에 대해 도교육청이 ‘노벨문학상을 탔으니 다시 사 넣으라’ 등 또다시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또한 경기도교육청의 ‘자율’ 기조에도 맞지 않다"고 답변하며 학교의 자율성을 존중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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