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봉황동 유적' 발굴조사에서 5세기대에 대지 확장을 위한 금관가야의 대규모 토목공사 흔적을 확인돼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김해 봉황동 유적은 금관가야의 왕궁 또는 왕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봉황대 구릉을 중심으로 그 주변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가 여러 차례 이루어졌다.
그간의 조사를 통해 항구의 창고터를 비롯해 야철터·건물터·조개무지·환호·토성·지석묘 등 청동기시대부터 금관가야에 이르는 유적이 확인된 바 있다.
김해 봉황동 유적은 1963년 '회현리 패총' 유적이 사적으로 지정된 뒤 1990년대에 진행된 봉황대 구릉 일대의 발굴성과를 바탕으로 2001년 두 유적이 한데 묶여 확대 지정됐다.
또한 김해시민들에게 ‘가야왕궁터’로 알려진 봉황대 구릉 동편의 경사면과 평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대규모의 패각 성토층이 확인되어 그 성격 규명을 위한 세부조사를 진행해 왔다.
그 결과 봉황대 구릉 북동편의 저지대를 다량의 조개껍질을 섞어서 경사지게 켜켜이 다져 쌓아 대지를 조성 및 확장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 구조물은 가야 당시의 토목기술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에 따라 24일 오후 2시 김해 봉황동 유적 발굴현장에서 그동안의 조사 성과를 공개하는 설명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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