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에 불어닥친 지방은행의 위기
우리나라에서는 '지방은행', 일본에서는 '제1지방은행', '제2지방은행', 중국에서는 '도시상업은행', '농촌상업은행'으로 분류되고 각기 불리는 이름은 다르지만, 어느 한정된 또는 지정된 지역을 중심으로 영업하는 은행이라는 점, '경제불황 속 호황 업종'이라는 금융업계에서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다는 점에서 3국의 지방은행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지방은행의 위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IMF 외환 위기 이후 10개의 지방은행 중 절반에 가까운 4곳이 퇴출당하였고, 일본도 1990년대 초 거품경제 붕괴 이후 지방은행의 성장이 정체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일본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지역 중점 산업들의 침체, 지역 인구 감소 및 고령화 등으로 경영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의 경우 지방은행의 역사가 짧아 2019년 이전까지는 이렇다 할 지방은행의 위기는 없었으나, 2019년 네이멍구 바오샹은행의 파산을 시작으로, 헝다그룹 파산 사태, 중국 지방부채 위기 등이 연달아 등장하며 많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지방은행들의 위기에 대해 각국 정부와 지방은행들은 여러 대응 방안을 내놓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대구은행이 iM뱅크로 시중은행 전환을 하였으며, 지점 출점 규제를 완화해 2015년 이후 지방은행들의 경기도 진출이 가능해졌다.
일본은 아베 정권 이후 지속해서 지방은행의 경영통합을 장려해 지방은행의 수를 줄이고, 규모의 경제를 꾀하고 있으며, 지방은행의 통합을 위해 지방은행을 독점금지법의 예외로 삼는 특례법을 2020년 통과시켰다.
중국은 각 시 단위에 설치된 도시상업은행 및 농촌상업은행을 통폐합하여 각 성 단위의 대규모 은행으로 재편하고 있으며, 민간 자본의 지방은행 투자를 장려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을 하고 있다.
지역 경제 침체·다윗에게 골리앗과 싸우라 등 떠미는 시스템 문제
무엇이 지방은행을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가? 첫째는 지역 경제의 침체와 인구 감소, 고령화 등 지역 경제 환경의 변화가 있겠다. 실제로 지역 경제와 인구의 규모는 지방은행의 지점 영업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상대적으로 지역 경제와 인구 규모가 작은 지역의 지방은행은 수익원을 찾아 수도권 등 다른 지역으로 적극적인 지점 확장 전략을 펼쳤다. 상대적으로 경제 및 인구 규모가 큰 영남지역의 지방은행(舊 대구, 부산, 경남은행) 전체 지점 중 수도권 지점의 비중은 3~5% 수준이나, 호남지역의 지방은행(전북, 광주은행) 전체 지점 중 수도권 지점의 비중은 수년 전 20%를 초과한 적이 있을 정도로 지역 간 차이가 크다.
일본의 경우, 장기 침체와 장기 제로금리 정책으로 인해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도쿄 수도권에 기반을 두거나 일부 유력 지역의 지방은행 몇 곳을 제외하고는 지점 확장에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 수준이며, 적자를 기록하거나 기반 지역의 지점조차 줄이고 있는 형편이다.
중국은 금융당국의 규제가 매우 까다로워 다른 지역에 지점을 설치한 경우를 찾기 어려우나, 그간 중국 지방은행들의 양적 성장과 지점 확장 속도를 볼 때, 당국의 규제가 없었다면, 동부 연안 주요 경제 지역으로의 적극적인 진출과 과당경쟁이 일어났을 것이다.
둘째는 규제 환경의 변화이다. 정부는 규제 강화나 완화를 통해 은행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2006년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단체 금고 선정이 수의계약에서 공개입찰로 전환되면서, 지방은행의 주요 수익원인 지방자치단체 금고가 경쟁 대상이 되었으며, 몇 년 전까지도 지방자치단체 금고 입찰 경쟁에 큰 관심이 없었던 시중은행이 최근에 큰 관심을 보이면서 자산규모나 출연금 규모에서 열세인 지방은행의 입지가 위협받고 있다.
정부는 규제 완화를 통해 2015년 지방은행의 경기도 진출을 열어주었으나, 시중은행에 비해 인지도, 자금력, 이자 경쟁력 등이 열세인 지방은행의 성장이나 수익 개선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일본의 경우, 1988년 금융의 자율화가 이루어진 이후, 지방은행의 경영이 사실상 모든 규제에서 벗어났으나 거품경제 시기 무리한 지점 확장과 부실을 경험하고, 3대 '메가뱅크(미즈호, 미쓰비시 UFJ, 미쓰이스미토모 은행)'와의 경쟁에서 열세를 보이며, 자율시장 아래에서 기반 지역에 원치 않게 '고립'된 모양이 되었다.
다만, 메가뱅크들이 3대 도시권(도쿄, 오사카, 나고야)에 주로 집중하면서 지방은행이 여전히 지역 금융의 터줏대감 역할은 하고 있으나, 지역 경제의 침체, 제로 금리하에서 지방은행의 성장과 확장은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중국은 당국의 규제가 여전히 엄격하고, 그 변화가 적어 이 부분에서는 생략한다.
셋째는 기술 혁신에 의한 경쟁 심화이다. 인터넷 전문은행(카카오뱅크, 토스뱅크 등)과 시중은행들이 자금력과 유리한 이자를 앞세워 디지털 뱅킹으로 고객들을 유치하면서, 지방은행들의 생존 경쟁이 더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지방은행들도 디지털 뱅킹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것은 아니나, 지역 인구의 고령화에 의한 필연적인 대면 업무를 위한 영업점의 유지로 비용 경쟁에서 밀리게 되고, 자금력의 한계로 유리한 이자를 제공하지 못하므로 큰 고객들의 유치에 실패함으로써 수익 경쟁에서도 밀리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일본도 우리와 마찬가지이며, 알리페이나 위챗페이 등 거대한 핀테크 기업과 압도적인 인지도와 자금력으로 중국 내에서 확고한 신뢰를 받는 중국 4대 은행(공상, 건설, 중국, 농업은행)과 경쟁해야 하는 중국의 지방은행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중국 지방은행은 디지털 뱅킹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아 우리나 일본에 비해서도 경쟁에서 훨씬 열세이다.
종합하면 경제와 인구 규모는 수도권이나 주요 도시권에 비해 작고, 인구는 더 많이 늙어있으며, 심지어 지역 경제는 활기가 돌지 않는 지역을 터전으로 삼아서 살고 있는 늙고 병든 다윗에게 자금력, 이자 경쟁력, 디지털 경쟁력까지 모두 갖추고 공격해 오는 골리앗을 상대로 어떤 지원도 없이 싸우라 등 떠미는 형세다.
지방은행, 기반 지역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조성해야
'지방소멸'과 지역 간 불균형 발전은 한·중·일 모두의 화두이다. 지방은행의 설립 목적은 지역 자금의 지역 재투자와 대형 시중은행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지역 중소·영세기업에의 자금 공급에 있다. 실제로 지방은행은 중소기업 의무 대출 비율이 60%였고, 시중은행은 45%였다. 최근에야 지방은행과 시중은행 모두 50%로 일원화되었다.
지역 불균형 발전과 지역 경제의 침체는 오랜 시간 동안 지역에 이바지해 온 지방은행들에 부실률 증가, 수익 악화로 돌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경쟁에서 압도적 우위에 있는 거대한 경쟁자들이 나도 먹고 살기 힘들다며, 그동안 안 먹고 아껴놨던 내 식량을 내놓으라 한다.
자유 시장 경제하에서 기업 간 경쟁은 필연적이다. 경쟁 과정에서 기업들이 퇴출당할 수 있다. 하지만 예외도 있어야 한다. IMF 외환 위기 이후 지방은행이 퇴출당한 경기, 강원, 충청에서 지방은행의 재설립 문제가 지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지방은행의 필요성과 지역 내 금융 공급 등 경제적 기여는 확인이 된 셈이다. 하지만, 실현되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한번 없애기는 쉬워도 다시 세우기는 매우 어렵다.
지방은행은 지방에 살고 싶다. 지역 내에서 충분히 수익을 만들 수 있는 지방은행은 밖으로 눈을 돌리지 않는다. 밖으로 눈 돌리지 않고도 잘 성장해 왔으며, 국제 기준에도 부합하는 우리나라 제1금융권의 건실한 기업들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경제 격차가 심화하고 있는 현재 각 지역의 지방은행은 해당 지역 최대의 기업이자 지역 내 유일한 대기업이기도 하다. 지역 청년들에게는 취업에 있어 선망의 직장이다.
지방은행의 성장은 지역 내 고용을 늘리고, 간접적으로는 중소·영세기업에의 금융 공급을 통해 지역의 경제 성장과 고용을 창출한다. 지역 불균형을 완화하고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지방은행이 기반 지역에 집중하며 지속해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 필자 소개
이재천 박사는 중국 국가기관인 중국과학원에서 <한국, 중국, 일본 지방은행의 다지역 영업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는 동국대학교 지리교육과 강사로 재직 중이다. 지방은행과 지역 불균형 발전, 중국 및 일본지역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수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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