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 좌파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제기되어 왔던 탄핵이 동력을 모아갈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그리 과도하지 않아 보인다. 정권 취임 이후 지지율은 역대 최악이다. 지난 총선 참패 역시 역대급 패배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총선 이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영수회담을 제안했고, 국정브리핑도 열었다. 보기 드문 일이었고 드디어 정권의 기조가 바뀐다는 기대가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민심과의 괴리를 한 번 더 확인시킨 이벤트에 불과했다.
이후 당정 갈등은 심화됐고, 급기야 여당 대표가 '정권이 민심과 동떨어졌다'고 직격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총선 이후 참패의 원인으로 지적됐던 국정 기조는 바뀌지 않았고, 여당을 보는 최고 권력의 인식 또한 요지부동이다. 정권은 여당 대표를 '고립'시키고 나아가서 '고사'시키기로 작정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제2의 이준석 플랜'이 가동 중일지도 모른다.
상황을 악화시킨 건 이것만이 아니다. 대통령 부인의 의혹이 호사가들의 말에 그치지 않고 조금씩 정치적·법률적 에너지를 얻어간다는 사실이다. 물론 특검법은 대통령의 재의요구권에 막혀있지만 한계가 있어 보인다.
탄핵은 헌법 제65조에 의하면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로 한정되어 있다. 대통령 탄핵은 대통령제 민주주의에서 선출된 대통령을 끌어내릴 수 있는 권한을 입법부에게 부여한 것이다. 그러나 이 권한은 '예외적인 경우'에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상식이며 '제도적 자제'에 해당하는 규범이기도 하다.
물론 규범은 법과 달라서 반드시 지켜야 되는 건 아니지만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확립된 관행'과 '규범'의 준수임은 말 할 나위도 없다. 보다 엄격하게 말하면 탄핵은 절대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악명 높게 혹은 위험하게 권력을 남용했을 경우에만 적용해야 한다(<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저)"
문제는 지금의 정권의 행태를 국민들이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사법적 판단은 탄핵에 의해 직무가 정지되고 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이 된 이후에나 가능하기 때문에 어차피 탄핵이 '헌법과 법률' 위반을 전적으로 전제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주권자의 인식 속에 공직자가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고 느끼는 정서와 생각이 동시에 발현되기 시작하고 이러한 조짐이 이슈화될 때 야당은 최대한 이를 활용하려 할 것이다. 물론 법의 허점을 이용하거나, 과도하게 권한을 남용하고, 법을 선택적으로 집행하는 행위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원론적인 지적이 공허해 보이는 이유는 대선 기간에 이런저런 의혹으로 사과해야 했던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의혹이 정치의 블랙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독선과 불통이 민심 이반을 초래했다는 진부한 지적보다, 더 심각하게 김 여사 리스크가 정치를 삼킬 것 같은 기세다.
김 여사의 여러 의혹이 정권에 대한 '정서적 탄핵' 사유가 될지언정 대통령 부인은 공직자가 아니므로 탄핵의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김 여사의 각종 의혹은 진화하는 추세이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서 이른바 '쩐주'라는 손모 씨가 2심에서 유죄로 바뀌면서 김 여사 관련설이 더욱 힘을 얻는 형국이다. 야당은 공천개입 의혹도 특검법에 포함시켰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에 막혀 번번이 입법화에 실패하고 있지만, 검찰이 명품백 수수 사건을 불기소로 처리한 상황에서 김 여사의 여타 의혹 특검이 더욱 명분을 얻게 될 것이다. '야당이 사법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해 대통령 탄핵을 의식한 특검을 밀어붙이는 것'이라는 여권의 방어논리는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여권은 시국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성찰해야 한다. 나아가 민심의 흐름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여권의 지지기반인 영남과 고령층에서조차 해병대원 특검과 김 여사 특검 찬성 여론이 높다는 현실을 언제까지 외면할 수 있을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고 진실과 현실이 가려지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김 여사 사과 건에 대해 '대통령이 사과했으니 국민들이 이해해야 한다'는 한덕수 국무총리의 발언은 민심과 동떨어진 집권측 인식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 때 자녀의 사법처리를 지켜봤다. 민심이 얼마나 냉혹한지, 그리고 민심에 정면으로 거스를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는 우리 정치가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위기는 빨리 대처할 때 최소화할 수 있다. 정치에 빅뱅이 또 올 수 있다. 결국 대통령제에서 키는 대통령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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