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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상속인임에도 엄마의 정보를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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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상속인임에도 엄마의 정보를 알 수 없었다

[보호출산제로 보호받는 고통] 친생부모의 정보와 입양인의 정보는 분리될 수 있는가

30대 중반이 되어서 내가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엄마가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솔직히 별로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내심 '역시 그럴 줄 알았어!'라고 생각했다. 평생 풀리지 않을 것 같던 미스터리가 해결된 것 같았다. 어린 시절부터 단추 하나가 잘못 끼워진 셔츠를 입고 있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어느 병원에서 태어났는지 정확히 말해주지 않았다. 나는 아빠처럼 눈에 쌍커풀이 없었지만,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면 엄마도 아빠도 닮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와 아빠의 눈썹은 짙은데 내 눈썹은 왜 옅은지 유전적 단서를 찾아보려 했다. 생전에 뵌 적 없는 외할머니가 눈썹이 옅었던 것은 아닌지 엄마에게 몇 번이나 물었다. 가족앨범에서 내 이목구비는커녕 눈썹 숱조차 닮은 사람도 없었다.

'나 입양된 거 맞대!' 하고 가까운 친구들에게 말했을 때 친구들은 나보다 훨씬 더 충격을 받았다. 내가 부모님과 닮았는데 그럴 리가 없다며 재차 확인하기도 했다. 30년 넘게 서로의 얼굴을 보고 살았던 우리는 분명 표정과 말투, 분위기가 닮았을 테지만 나는 평생 무언가 어긋나 있다는 것을 그냥 알았다. 그래서 엄마에게 뜬금없이 '나 입양했지?' 하고 물은 적이 몇 번 있었다. 엄마는 부인했지만 말이다.

이 사실을 입양인과 입양 부모를 주로 만나시는 상담사 선생님에게 말씀드렸을 때, 선생님은 이전에도 다른 입양인들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고 알려주셨다. 한국어가 모국어이고 양부모님이 한국인이며 평생 한국에서 자랐는데도 불구하고 국내 입양인인 나는 미묘한 디아스포라적 감각을 느끼며 자라왔다. 부모님은 내가 입양됐다는 사실을 평생 모르고 살아가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이다. 내 몸의 감각은 이미 이야기된 적 없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에 베이비박스ⓒ연합뉴스

처음 입양기관에 전화를 걸었을 때 나는 수화기 너머로 내 이름이 아닌 식별번호로 내 존재가 불리는 것을 들었다. 내 번호는 K89-16XX였다. 9월생인 내가 1600번대라는 것으로 1989년에만 3천여 명의 입양인이 있다는 것을 추측해볼 수 있었다.

빠른 시일 내로 입양기관에 방문하기로 했다. 입양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듣고 싶었다. 나는 왜 입양됐는지, 내 진짜 생일이 언제인지, 혹시 다른 이름이 있었는지, 입양된 날짜가 언제인지 알고 싶었다.

그중에서도 엄마에 대한 정보가 가장 궁금했다. 엄마는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 모든 진실을 이야기해줄 사람이 더 이상 없었다. 나는 엄마가 왜 나를 입양하기로 결심한 것인지, 당시 어떤 고민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했다. 나와 또래였을 30대 중반의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입양기관을 찾았던 것인지 알고 싶었다.

입양기관은 두 가지 서류철을 꺼내 보였다. 하나는 나의 출생 정보와 관련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입양 과정과 양부모님 정보에 관한 것이었다. 첫 번째 서류는 매우 얇았고 두 번째 서류는 아주 두꺼웠다. 기관은 출생 정보에 대한 공적인 자료를 먼저 보여줬다. 내가 태어난 곳, 출생 시 몸무게, 거쳐간 위탁가정의 수, 사회복지사가 지어주었다는 이름 같은 것들 말이다.

친생모를 비롯한 친생 가족의 대략적인 정보도 알려주었다. 나에게는 위로 네 명의 형제가 더 있다고 했다. 그게 끝이었다. 친생 가족의 정보는 더 제공할 수 없으며 연락을 원하면 친생모에게 등기를 보내 자신의 정보를 공개할 의향이 있는지 물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친생모가 아니라 친생 가족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기에 당혹감이 앞섰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이후 나는 입양 과정과 양부모님 정보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기에 해당 자료 열람을 원한다고 했다. 엄마의 유일한 상속인이고 공공기관에서 엄마의 정보를 모두 열람할 수 있었기에 당연히 열람이 가능할 거라 기대했다. 나를 직접 낳았든 낳지 않았든, 평생 나의 엄마이기만 했던 사람이 입양기관에서는 '양어머니'가 되어 있다는 것이 낯설게 느껴질 뿐이었다.

▲보호출산제가 여성의 모성과 아이의 인권을 지켜주는 법인가. 임신, 출산을 유지하기 힘든 여성의 어려움엔 눈 감고 이 제도 하에서 태어난 아동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권리마저 빼앗긴 이등시민을 만드는 법이다. 영화 <브로커>의 한 장면. ⓒ <브로커>

두꺼운 서류 안에는 양부모님의 상담 기록이 보관되어 있다고 했다. 하지만 기관은 이 정보가 개인정보이기에 열람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엄마가 돌아가셨고 유일한 상속인이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바로 눈앞에 있는 서류를 열어볼 수 없었다.

나는 아동권리보장원을 통해 입양정보 공개 청구를 신청했다. 제공 가능한 정보는 크게 입양인의 배경정보와 친생 부모의 인적정보로 나눠져 있었다. 친생 부모의 인적정보는 친생부모 동의 하에 공개가 가능하다고 적혀 있었다. 입양인의 배경정보에는 '입양일, 입양 사유, 입양인의 입양 전 성명, 출생일시, 입양 당시 친생 부모의 나이 등 입양 배경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었다.

신청서를 작성하며 입양인의 배경정보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 는 내용을 적었다. 내 입양 배경에는 친생 부모의 입양 배경도 있지만 양부모의 입양 배경도 존재할 테니 말이다. 잘 접수가 됐는지 전화 문의를 했다. 담당자는 잊어버릴 때쯤 되면 청구 결과가 나올 거라고 했다. 현재 정보공개청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입양인이 너무 많다는 이유였다.

몇 달이 지나 정말 잊을 만할 때가 되자 전화 한 통이 왔다. 입양기관의 연락이었다. 한창 일하던 중이라 전화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발신 번호를 보고 황급히 밖으로 나가 죄를 지은 사람처럼 소곤거리며 전화를 받았다. 이번에는 수화기 너머로 누군가 내 이름이 아니라 입양 전 이름을 부르며 통화가 가능한지 물었다. 나는 마민지였다가 K로 시작하는 번호였다가, 다시 어떤 낯선 존재가 됐다.

▲7월 12일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열린 '뿌리를 알 권리 보장'을 위한 입양인 정보공개소송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입양기관은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공개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나 역시 같은 말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돌아가셨고, 나는 엄마의 유일한 상속인이라는 것, 그리고 기관이 보여주지 않는 정보는 엄마의 개인정보이기도 하지만 나의 개인정보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기관은 '그건 입양인들의 주장'일 뿐이라며 전화를 끊었다.

친생 부모뿐만 아니라 양부모의 정보 역시 내 힘으로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은 내 정보이자 내 권리였지만, 기관은 그것이 그저 나의 주장일 뿐, 내 정보도 내 권리도 아니라는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아동권리보장원 역시 동일한 답변을 해왔다. 내 삶의 뿌리를 알고 있는 친생 부모와 양부모가 살아서 진실을 알려주지 않는 이상 내가 더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내 국내 입양인 수는 8만여 명, 해외 입양인 수는 비공식적으로 25만여 명에 달한다. 이 중에 자기 자신에 대한 정보를 온전히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입양인들이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애쓰다가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까? 화가 났다. 내 몸은 여전히 디아스포라적 감각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한국어가 모국어이고 양부모님이 한국인이며 평생 한국에서 자랐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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