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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다음은 한국일까?

[인문견문록] <제3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되었다>

에마뉘엘 토드의 책 <제3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되었다>(김종완·김화영 옮김, 피플사이언스 펴냄)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분석의 끝판왕이다. 특히 인류학적 통찰을 덧붙인 분석은 대가의 모습을 엿보게 한다. 일본 아마존의 책 광고를 보니 10만부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책을 펼치자마자 '전쟁의 책임은 미국과 나토에 있다'란 제목이 눈길을 끈다. 현실주의 정치학의 대가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의 주장을 인용한 문장이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일까?

이야기는 독일통일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통일은 소련의 양해하에 이루어졌다. 당시 미 국무부 장관이었던 베이커는 "나토를 동쪽으로 1인치도 확장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런 약속이 무색하게 나토는 두 차례에 걸쳐 대대적으로 동진한다. 2008년 루마니아에서 열린 나토정상회담에서 조지아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공식적으로 논의되었다. 그때까지 나토의 동진을 감내하던 러시아는 발끈했다. 러시아가 분노한 것은 지정학적 이유 때문이었다. 푸틴은 즉시 "조지아와 우크라이나의 나토가입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힌다.

이후 우크라이나에서는 2014년 2월 '유로마이단 혁명'이 발생한다. 친러정부를 불법적으로 무너뜨린 쿠데타였다. 미국의 개입이 큰 역할을 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병합한다. 또한 동부 돈바스를 중심으로 반정부군이 활동을 개시한다. 우크라이나 뒤에는 카터 시절 안보보좌관 브레진스키의 지정학을 따르는 네오콘이 있었다. 그는 우크라이나없이 러시아제국은 존립할수 없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를 러시아로부터 떼어내는 것이 미국 네오콘의 핵심 목표였다. 미국의 대표적 지성 제프리 삭스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네오콘 30년 프로젝트의 정점이라고 말한다.

우크라이나는 예상 밖의 선전을 해왔다. 이런 선전에 대해 토드는 인류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토드의 말이다.

"러시아의 최대 오산은 우크라이나사회의 저항을 오판한 것이다. 이는 우크라이나사회가 러시아와 다르다는 인식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류학적 기반에서 보면 우크라이나 사회는 러시아와 서로 다른 사회다. 내 전공인 가족시스템으로 설명하자면 러시아는 '가족공동체'(결혼 후에도 부모와 동거, 부모 자식관계는 권위주의적, 형제관계는 평등)사회이고, 우크라이나는 '핵가족'(결혼 후 부모에게서 독립) 사회이다. 러시아와 같은 가족공동체 사회는 평등 개념을 중시하는 질서정연한 권위주의 사회이며, 집단행동에 능하다. 이런 문화가 공산주의를 받아들이고, 현재의 푸틴 대통령이 이끄는 '러시아의 권위적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중략) 한편 우크라이나사회는 일찍이 공산주의를 만들어낸 러시아 사회와 다르다. 단편적인 데이터뿐이지만 대부분 핵가족이고 개인주의적 사회다."(상기 책 인용, 미인용 경우 동일)

토드가 제안한 학설은 이런 것이다. 가족 구조가 정치·경제체제(이데올로기)와 친화력이 높을 경우에만 양자가 단단하게 결합한다. 근대 이후 각 사회의 이데올로기는 농촌 사회의 가족 구조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외혼제 가족공동체분포도가 공산권 지역과 겹친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가족 구조가 거시적 사회시스템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19세기 프랑스 역사가 르부아볼리외에 의하면 가부장제 대가족과 농촌 공동체 '미르'(мир)를 통한 자치가 러시아 농촌의 특징이었다. 권위에 대한 존중도 있지만 서로 간에는 매우 평등한 공동체였다.

르부아볼리외는 이런 가족 구조가 공산주의와 친화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꿰뚫어 보았다. 소러시아(우크라이나 중부)는 가족 구조의 측면에서 러시아와 달랐다. 스탈린 시대 농장집산화에 대한 반발이 소러시아 지역에서 특히 강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외혼제 가족제도는 벨라루스와 발트3국에서도 강했고 이들 지역 모두 공산주의혁명에 처음부터 우호적이었다. 외혼제 가족공동체는 게르만인의 직계가족과 몽골의 부권제조직이 충돌해 발생한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소련 붕괴 후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토드의 말이다.

"러시아는 1990년대에 위기의 시대를 맞지만 국가재건에 성공했다. '국가에 의거한 질서'라는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가 완전하게 제어하는 군대 재건에도 성공했다. 그에 비해 우크라이나는 독립한 지 30여년이 지났지만 제대로 기능하는 국가를 건설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에는 '국가'라는 전통이 없었기 때문이다. 군대도 미국과 영국의 지원 없이는 재조직할 수 없었다."

푸틴의 바램과는 달리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공을 계기로 국가로서의 정체성이 형성되어가는 중이다. 프랑스혁명의 수출을 염두에 두었던 프랑스군의 전유럽 확장을 계기로 오히려 유럽민중들 사이에서 민족 정체성이 형성되었던 것과 비슷하다. 일본의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이 민족 정체성은 타자와의 갈등을 통해서만 만들어진다고 본 것과 유사한 상황이 우크라이나에서도 생겨나고 있다.

미국은 왜 우크라이나를 희생양으로 삼았을까? 저자에 따르면 냉전 해체 이후 미국에게는 두가지 목표가 있었다고 한다. 첫 번째는 러시아의 해체다. 두 번째는 러시아와의 긴장을 통해 유럽과 러시아의 결합을 막는 것이다. 두 개의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지역이 우크라이나였던 것이다. 네오콘의 목표는 '유라시아 재통일' 움직임을 막는 것이었다. 서쪽에서는 유럽과 러시아가, 동쪽에서는 일본과 러시아가 접근하는 것을 막아야했다. 토드는 이렇게 판단한다.

"평화적 관계가 구축되어버리면 미국의 필요성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미군의 존재감을 유지하기 위해, 다시 말해 유라시아에서 미군이 필요한 상황을 억지로라도 유지하기 위해 미국은 유라시아에 군사적·전략적 긴장이 지속될 필요가 있었다. '세계의 안정에 미국이 필요하다‘는 레토릭이 진정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세계의 불안정이 미국에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어샤이머는 종국에는 러시아의 승리가 분명하다고 판단한다. 러시아에게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달리 사활적 이익이 걸려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판단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종결되면 그것으로 끝일까? 토드는 미어샤이머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한다. 토드는 이렇게 말한다.

"미국이 전쟁을 하는 진짜 목적은 미국의 통화와 재정을 세계의 중심에 계속 두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게 생존이 걸린 안보적 의미의 생명선이라면 다른 의미로 미국에게도 핵심 이익이 걸려있는 문제가 되었다. 미국의 경제는 실물이 배제된 채 진행되는 가상의 경제다. 이 시스템에서 페트로달러를 기반으로 발행되는 미국 재무부채권이 핵심이다. 가상의 경제를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미국에 대한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우크라이나가 패배하게 되면 미국에 대한 신뢰는 붕괴된다. 이렇게 되면 가상경제시스템도 무너지게 된다. 러시아만이 아니라 미국에게도 이번 전쟁은 사활을 건 싸움이 되었다. 즉, 제3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것이다.

저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민주주의와 전제주의의 갈등으로 보기보다는 '부권제 시스템과 핵가족 쌍계제 시스템의 대립'으로 본다. 또한 현재의 러시아와 중국을 전제주의로 판단하기보다는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결여되어 있는 권위적 민주주의로 본다. 한편 미국, 영국 사회에서의 불평등 확대는 '절대핵 가족'이라는 평등을 경시하는 가족 구조로부터 유래한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이들 나라에는 불평등에 제동을 걸 정신적 가치가 결여되어있다. 서구는 자유주의 과두제 진영이며 러시아, 중국은 권위적 민주주의 진영이다. 절대 선과 절대 악의 대립이 아닌 것이다.

토드의 빼어난 통찰이 돋보이는 부분은 전쟁이라는 현상 이면에 잠재해 있는 인류학적 가족 구조와 이런 가족 구조가 주조해내는 정치 구조의 차이가 결국 물리적 충돌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잘 설명하는데 있다. 필자가 그동안 써 온 칼럼의 핵심 내용은 서구적 자유민주주의란 결국 수면 위에 명멸하는 포말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지식인들에게 서구식 자유 민주주의란 우리가 최종적으로 도달해야할 목적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마자 RT(아르티, 러시아의 국제 보도전문채널)가 유럽에서 즉각 퇴출된 것만 보더라도 이념형으로서의 '자유 민주주의'는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유 민주주의라는 허위 의식에 사로잡히면 진보의 길을 벗어나게 된다. 독일에서는 가장 진보적인 녹색당이 루소포비아의 최전선에서 맹활약한다. 극우로 불리는 프랑스의 국민연합이 오히려 루소포비아와는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면 이제 세계는 선과 악, 진보와 보수가 불분명해지는 지경에까지 온 것이 분명해 보인다.

토드의 탁월한 분석과 설명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잘 모르는 대중에게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미국과 영국, 그리고 서구의 위선과 악의에 대해서는 많이 서술하지만 정작 러시아의 선의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는다. 역사학자 김기협은 <프레시안> 칼럼에서 "해양세력은 평화파괴세력이다"라고 일갈한 적이 있다. 러시아는 그런 평화파괴세력에 언제나 맞서왔다. 촘스키는 자신의 책 <촘스키 은밀한 그러나 잔혹한>(노암 촘스키 지음, 권기대 옮긴, 베가북스 펴냄)에서 이렇게 단언한다.

"소련제국은 자기네 식민국가들보다 오히려 더 가난했던 인류 역사상 최초의 제국이다."

소련이 얼마나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는지를 20세기 최고의 역사가로 불리는 에릭 홉스봄은 자신의 책 <극단의 시대 20세기 역사>(에릭 홉스봄 지음, 까치 펴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혁명운동들을 배반했다고 소련을 비판한 중국 공산주의 정부가 제3세계 해방운동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의 면에서 소련에 필적할 만한 기록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은 기묘한 일이다."

중국은 자신들이 가난했던 시절부터 변함없이 글로벌사우스를 지원해왔다. 중국이 글로벌사우스의 지식인들로부터 존경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중국조차 소련에 비할바는 못 된다고 홉스봄은 지적한다.

우크라이나 사회는 철저히 무너지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서도 파탄국가, 실패국가로 남겨질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의 처절한 실패는 지정학적 단층선에 위치한 국가의 잘못된 선택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오는지 우리에게 알려준다. 윤석열 정부는 반중·반러노선을 '선택'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가 걱정되는 이유다.

▲ <제3차 세계대전은 이미 시작되었다>(에마뉘엘 토드 지음, 김종완·김화영 옮김, 피플사이언스 펴냄) ⓒ피플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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