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재 참사가 일어난 아리셀이 군용 리튬 1차 전지를 생산하던 업체로 알려진 가운데, 군이 빈번한 폭발사고를 통해 리튬 전지의 위험성을 인지하고도 대책 마련을 소홀히 해 참사의 한 원인을 제공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4일 화재 참사가 일어난 아리셀은 코스닥 상장사인 에스코넥의 자회사로 두 회사의 대표이사는 동일 인물이다. 에스코넥은 자사 홈페이지에서 "'에스코넥 아리셀'은 전지 분야 최고의 연구 인력들이 모여 독자기술로 개발된 리튬 1차 전지"라며 해당 제품의 적용 분야 중 하나로 "군용장비"를 들고 있다. 이번 화재가 발생한 장소도 경기 화성시에 있는 아리셀 공장 내 '군 납품용 리튬 전지'를 보관하던 곳으로 알려졌다.
방사청 관계자도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아리셀이 생산한 제품이 국군에 납품되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과거 군에서 리튬 1차 전지로 인한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했고, 군도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 2014년 김광진 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당시 육군본부에서 받은 '리튬형 배터리 최근 5년간 폭발 및 이상 현상 발생건수'를 토대로 2010~2014년 총 62건의 군 내 리튬 전지 폭발사고가 일어났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후 국방부는 공기아연전지 등 대체 전지를 도입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같은 지적이 나온 후로부터 10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국방부와 국방기술품질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1월에서 2023년 9월 사이 육군과 해병대에서 리튬 전지 화재사고가 총 31건 발생했다.
특히 2021년 3월에는 경기도 한 부대의 통신창고에 보관 중이던 리튬 전지에서 화재가 발생해 61종의 통신장비 총 4141개가 소실되는 일이 있었다.
고용노동부령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안전보건규칙)'에서도 리튬은 위험물질 중 '물반응성 물질 및 인화성 고체'로 분류된다. 노동부 물반응성 물질은 물과 상호작용해 자연발화하거나 인화성 가스를 위험 수준으로 발생하는 고체·액체 혹은 혼합물을, 인화성 고체는 연소나 마찰에 의해 화재를 일으키거나 연소에 기여할 수 있는 고체를 뜻한다.
리튬 1차 전지의 전해액으로 쓰이는 염화티오닐도 안전보건규칙상 위험물질 중 '급성 독성 물질'에 해당한다. 급성 독성 물질은 피실험동물이 4시간 흡입했을 때 50퍼센트(%)가 사망하는 농도가 증기 1리터당 10밀리그램(mg) 이하인 화학물질을 뜻한다.
이같은 위험성에도 군이 편의성을 이유로 안전을 도외시해 아리셀 화재 참사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지적이 전문가를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학교 안전관리학과 교수는 24일 페이스북에 2019년 한 해 동안만 군용 리튬 1차 전지 폭발 사고로 창고 4곳이 잿더미가 됐다는 내용의 2020년 언론 보도를 인용하며 "오늘의 참사는 YTN이 4년 전 적확하게 경고한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
그는 "물론 사업주 아리셀과 그 경영책임자에게 가장 무거운 책임이 있음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이(리튬 1차 전지의 위험성)를 군과 국방부가 사실상 무시하고 배터리 소재 변경을 추진하지 않았고 군납업체(아리셀)에 그 위험성을 환기하거나 감독하지도 않은 것이 근본 원인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강 교수는 이에 대해 "군수당국이 리튬 염화티오닐 1차 전지 발주처일텐데 공급망(supply chain) 상위 사업자가 납품받는 제품에 쓰는 물질을 바꾸지 않으면 하위 사업자는 그걸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그는 "폭발 사고가 반복됐음에도 군이 리튬 염화티오닐 1차 전지를 계속 사용하는 것은 군수품을 생산하는 노동자와 이를 사용하는 장병의 안전은 고려하지 않는 조치"라며 "현행법상 군의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겠지만 질책성 조사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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