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세의 고령 남성이 마지막 주민이었다. 결국 요양 센터로 입소했다. 그리고 그 동네엔 아무도 없었다.
2021년 <흑뢰성>으로 일본 미스터리 소설 관련 시상식 9관왕을 휩쓴 대가. 이제 거장 칭호를 붙여도 아깝지 않을 요네자와 호노부의 새 소설 <I의 비극>(문승준 옮김, 내친구의서재)이 나왔다. 2019년 나온 소설이지만 국내에는 늦게 발매됐다. 한국보다 먼저 고령화와 소멸을 맞은 일본의 지역 사회 실상을 그린 미스터리다. 제목에서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오마주했다. 책 내용 역시 이에 조응한다.
난하카마시. 네 곳의 지방자치단체가 합병한 인구 6만의 도시다. 이곳에 미노이시라는 마을이 있다. 고령화의 결과로 아무도 살지 않는 마을이 됐다. 새로운 시장이 이곳에 타지의 사람들의 이주를 지원해 마을을 되살리자는 'I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주인공인 공무원 만간지 구니카즈는 이 프로젝트를 떠맡은 인원 3명으로 구성된 '소생과'의 직원이다.
시범 케이스로 총 12가구가 선정됐다. 소생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그런데 온갖 불의의 사고가 이어진다. 그 결과 입주민들은 미노이시를 결국 등지고 다시 떠나간다. 미스터리한 일이다. 우연일까?
<I의 비극>의 우선 포인트는 '공무원'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최근 국내에서 공무원 인기가 시들하다. 민원인의 온갖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는 이들이 나타나고 있다. 소설을 보면, 만간지 역시 극한직업을 견뎌간다. 워낙 중요한 프로젝트이기에, 만간지에게는 주말도 허락되지 않는다. 새로 이주한 이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온갖 일을 견뎌야 한다. 참, 사람 할 짓 못 된다 싶다.
두 번째 포인트는 군상극이라는 점이다. 한국에서 이 소설에서와 같은 소멸이 일어났다고 가정해 보자. 아무도 없는 곳으로 굳이 이주할 이들이 얼마나 될까. 소설에는 자녀를 둔 젊은 부부, 은퇴자, 독거하는 남성 등 다양한 면면이 등장한다. 갈수록 가팔라지는 한국의 지방 소멸 기울기를 생각하면, 비록 출판사는 '사회파 소설'로 홍보하지만, 아무래도 미노이시는 현실을 반영한 연극 무대라는 생각이 더 든다.
이 같은 특징 위로 요네자와 호노부의 기질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의 뒤에 숨은 서늘함이 <I의 비극>에도 여전하다. 평범한 사람들의 악의는 소소한 데서 묻어난다. 책은 세밀한 설명을 통해 악인이라고 설명하기는 어려운 평범한 우리 이웃의 작은 악의가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가를 조명한다. 굳이 말하자면 이 책은 '성인판 <빙과>'다.
마을 재생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온갖 사고로 인해 프로젝트는 실패했다. 단순화하자면 <I의 비극>은 이 같은 실패담의 나열이다. 마지막 단락에 접어들기 전까지 인상은 이랬다. 그리고 진짜 이야기는, 책을 관통한 미스터리는 마지막에야 밝혀진다.
이 책은 공포소설이다. 미스터리를 푸는 열쇠는 철저히 현실적이다. 등골이 쭈뼛해질 정도다. 현실을 이 정도로 적나라하게 그린 미스터리를 근래 본 적이 있나 싶다. 앞서서는 이 책은 '사회파 소설'로 지칭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했다. 이 책은 다큐멘터리고, 사회 보고서이며, 예언서다. 요네자와 호노부는 진지하게 묻는다. 소멸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각오를 해야 하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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