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세월호 참사 10년 만에 '정부의 구호 조치 부실에 대한 청구 자체가 부적법하다'며 각하 결정을 내렸다. 다만, 헌재 재판관 9명 중 4명은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 이행'을 들어 반대 의견을 냈다.
헌재는 지난달 30일 세월호 참사 희생자 및 유가족들이 "정부의 구호 조치가 부적절해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낸 헌법소원 심판 청구 사건에 대해 재판관 5대 4 의견으로 각하 결정했다고 지난 2일 밝혔다. 각하는 청구 요건 등 형식적인 면이 부적법할 경우 본안을 판단하지 않고 재판을 마치는 것을 말한다.
헌재는 "세월호 사고는 2014년 4월 16일에 발생했고, 구호조치는 심판청구가 제기되기 전에 종료됐다"며 "심판 청구는 권리보호 이익이 없던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헌재가 헌법소원 사건의 본안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적법 요건을 모두 갖춰야 한다. 헌법소원 적법 요건은 청구인 적격,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 기본권 침해성, 침해의 자기관련성·직접성·현재성, 권리보호 이익 등이다.
헌재는 또 "구체적인 구호조치의 내용의 민·형사 책임을 법원이 이미 인정했다"면서 "이 사건에서 헌법적 해명의 필요성을 이유로 예외적인 심판청구 이익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예외적 심판청구 이익이란, 침해 사유가 이미 종료됐더라도 헌법 질서의 수호·유지를 위해 중요하거나 침해 사유가 반복될 위험이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심판청구 이익을 말한다. 세월호 관련자들의 위법성이 인정돼 법적 책임을 물었으므로 별도로 판단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기영·문형배·이미선·정정미 재판관은 반대 의견을 냈다.
이들은 "세월호 사고와 같이 재해에 준하는 대형 해난사고로 국민의 생명권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국가의 기본권 보호 의무 이행에 관한 문제는 앞으로 반복될 가능성이 있고, 대형 해난사고에서 국가의 생명권 보호 의무가 제대로 이행되는지 여부에 대한 헌재의 확립된 결정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월호 사고에 관한 법원 확정판결이 있지만 이는 관련자 개개인의 형사 처벌과 국가배상 인정 여부에 관한 것으로, 피청구인의 헌법상 기본권 보호의무 위반 여부가 문제되는 이 사건 심판 청구와 서로 다른 헌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 '예외적 심판청구 이익'과 관련해 "헌법소원심판은 헌법 질서의 수호 유지를 위해 긴요한 사항이어서 그 해명이 헌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경우나, 그러한 침해 사유가 앞으로도 반복될 위험이 있는 경우 등에는 예외적으로 심판청구 이익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특히 "정보 파악과 취득, 현장 구조 방식, 해경지휘부의 판단 및 지휘, 대통령과 청와대의 대응에 관한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함에 따라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에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조치가 이뤄지지 못했다. 사정이 이와 같다면 구호 조치는 과소보호 금지 원칙(너무 적게 보호하면 위헌)에 반해 희생자들에 대한 생명권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므로 결국 유가족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지난 2014년 12월과 2015년 1월 "세월호가 기울기 시작한 때부터 완전히 침몰하기까지 국민의 생명을 구호할 의무를 진 피청구인(국가)이 신속하고도 유효·적절한 구호조치를 취하지 않은 부작위로 인해 기본권이 침해됐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법 제38조는 심판 사건을 접수한 날부터 180일 이내에 결론을 내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강제력은 없다. 통상 법정 처리 기간 180일을 넘긴 사건은 '미제 사건', 2년을 넘긴 사건은 '장기 미제 사건'으로 분류되는데, 이번 세월호 사건의 경우 10년 가까이 헌재에 계류돼 '최장기 미제 사건'으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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