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임순례·이정향·변영주·이경미·윤가은 등에게는 배양토가 된, 배우 신민아·공효진 등에게는 등용문이 된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정부의 지원 예산 삭감으로 존폐 기로에 놓였다.
이숙경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은 14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지원 예산이 50% 정도 줄어든 지금, 진짜 문을 닫느냐 마느냐의 상황"이라며 "올해 영화제는 1억2000만 원의 적자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특히 "정부가 매년 지원하던 영화제 지원 예산을 절반가량으로 줄이고 정부 지원 영화제를 대폭 축소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영화제'라는 플랫폼을 통해 얻어가는 '연결'의 에너지와 '성장'의 에너지가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영화제 관계자들의 이 같은 위기감은 지난해 9월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를 통해 2024년도 영화제 예산안이 발표되면서 예견된 일이다.
당시 영진위는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배포, 타 기금 확보와 전년보다 증액된 예산(734억) 편성을 발표했다. 그러나 세부 지원 예산은 절망적이었다. 지역 관련 지원 예산과 국내외 영화제 육성 지원 예산이 각각 100%, 50% 삭감됐으며 기존에 지원하던 40개의 국내·국제 영화제도 통합해 축소하겠다고 한 것.
전국 영화제 관계자와 관객들도 이례적으로 '영화제 지원 예산 삭감 철회'를 외쳤다. '영화제 연대'는 공동 성명을 통해 "영화제는 영화 창작의 동기와 목표가 되는 기초 사업"이라며 영화제 지원 예산 삭감은 영화 창작의 직접 동력을 떨어뜨리고 영화 관객의 다양한 체험과 향유권 침해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2023년 한국영화산업 결산보고서에 따르면, 한국독립영화의 개봉 편수는 131편인 반면 제작 편수는 1574편에 이른다. 실제로, 산업이 외면한 영화 대부분이 영화제를 통해 관객과 만나는 셈이다.
영진위는 현장의 문제 제기에 간담회를 개최했으나 "정부가 세수 부족 등의 이유로 긴축재정 방침을 정했고 그에 따라 각 정부기관들의 예산을 일괄적으로 삭감한 것"이라며 "예산 편성에 결정권이 없다 보니 한계를 가지고 갈 수밖에 없다"는 면피에 그쳤다.
"선과 선을 잇고 손과 손을 모아 영화제를 힘껏 응원해 달라"
영진위의 예산 삭감은 영화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지난 달 25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부산국제단편영화제는 영화제 개막 사흘 전까지도 국비 지원 여부가 정해지지 않아 진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다행히 지원을 받게 됐지만, 지원 규모는 예년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결국 인건비와 홍보비를 줄여 겨우 영화제를 치렀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또한 영화제 규모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 위원장은 "올해도 일주일간(8월 22~29일) 영화제를 진행하지만 예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상영관 수는 줄여야 할 것 같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는 "27년간 이어온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역할을 생각하면 최소한의 것은 지켜야 하지 않겠느냐"며 "영화 생태계의 다양성을 책임져온 작품 수와 사실상 감독의 제작 지원금으로 쓰이는 상금은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했다.
이에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오는 22일 후원의 밤을 준비하고 있다. 후원의 밤 '선과 선, 손과 손'을 통해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고 영화제가 처한 문제를 공유한다는 계획이다. '선과 선, 손과 손'은 '선과 선을 잇고 손과 손을 모아 영화제를 힘껏 응원해 달라'는 의미로 조직위원회 위원인 나희덕 시인이 아이디어를 냈다.
이 위원장은 "올해 후원의 밤은 '긴급' 후원의 밤이다. 재정이 한 번도 넉넉한 적은 없었지만, 영진위의 지원 예산 삭감 문제가 이례적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라며 "이번 후원의 밤은 '선과 선, 손과 손'이라는 연결을 통해 외부의 변화에 너무 민감하게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단단하게 만드는, 그걸 시작하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솔직히 암담하지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라는 플랫폼이 개인의 것이 아닌 오랜 시간 여러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현재 위기를 공유하고 또 다음 시간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를 공유하고 시작하는 자리"라고 덧붙였다.
"영화제가 올해로 26회째다. 사실 27년간 26번의 영화제를 진행해 온 것도 훌륭한데, 이후의 시간을 또 어떻게 맞이할 지가 저희의 과제일 것 같다. 여성주의, 일상에서 여성을 다루는 방식 등 현재는 스타일도 많이 달라졌다. 그런 것들이 영화제 안에서 어떻게 재현되어야 할까? 우리는 어떤 식의 일터이면서 플랫폼이 되어야 할까? 이런 고민이 '선과 선, 손과 손'이라는 후원의 밤의 중심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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