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와 어도어/민희진의 분쟁은 계속 진행 중이다. 이 칼럼이 나간 후에도 상황이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아니 한국 대중문화산업에서 이렇게 화제가 되고 논란을 일으킨 사건이 얼마나 있었을까. SM 엔터테인먼트의 경영권 분쟁만 해도 이만큼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지 않았다. 심지어 유명 대중예술인이 세상을 떠났을 때의 화제성도 이번 분쟁에 미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번 분쟁은 하이브와 어도어/민희진 사이에서만 이어지는 게 아니다. 콜로세움에서 피 흘리며 싸우는 검투사를 지켜보는 관중까지 시시비비를 가리며 싸우고 있다. 우리는 지금 두 개의 콜로세움을 동시에 체험하며 어떤 식으로든 참전 중이다. 세상에 싸움 구경이 제일 재미있다지만 이런 싸움은 전무후무하다.
이번 분쟁을 대중음악계의 문제로 좁혀보면 산하에 여러 레이블을 둔 대형엔터테인먼트 기업의 멀티레이블 체제, 멀티레이블 시스템의 팀 사이 차별성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 프로듀서 간의 역할을 어떻게 배분할 것이냐를 이야기해야 한다. 한 기업에서 경영진 간 의견이 충돌할 때 이를 어떻게 조율할지 생각해 보기 충분한 사건이기도 하다. 지금처럼 서로의 잘잘못을 만천하에 공개해 모욕을 주는 방식은 이전투구처럼 느껴진다. 이번 분쟁을 지켜보는 이들 중에 한쪽 편을 드는 경우도 있지만, 회의를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렇게 싸우는 방식과 싸움을 통해 드러나는 모습이 케이팝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낼 뿐 아니라, 케이팝을 향한 대중의 기대와 믿음을 떨어뜨린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분쟁에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더 있다. 그 이야기를 제대로 짚기 위해서는 양쪽의 주장 가운데 의미 있는 지점을 잘 추리고 되새겨야 한다. 민희진이 실력 있는 여성이기 때문에, 혹은 그가 약자여서 그의 편을 들어야 한다거나, 그의 기자회견이 속 시원했기 때문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는 태도만으로는 이 문제를 제대로 풀 수 없다. 그가 감정적으로 기자회견을 했기 때문에 그의 주장을 다 무시해서도 곤란하다. 하이브 쪽의 대응이 차분하고 논리적이라 더 옳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실 민희진은 전혀 약자가 아니다. 재산 뿐 아니라 회사 내 위치를 생각해도 그렇다. 어떤 직장인이 공개적으로 욕설을 섞어 가며 회사의 고위간부를 비난할 수 있겠는가. 평직원 처지에선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의 실력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고, 골프/룸살롱 문화를 비판한 지적은 무조건 옳더라도 이번 분쟁에는 회사 내 최고위층의 다툼이라고 냉소할 만한 여지가 없지 않다. 더더욱 옥석을 정확하게 가려야 할 이유다.
민희진이 기자회견을 통해 언급한 내용 중에 케이팝의 마케팅 방식, 특히 음반을 많이 팔기 위해 사용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이미 그동안 적지 않은 비판이 있었다. 팬 사인회 응모권을 넣는다든가, 팀 멤버들의 포토카드를 수집욕을 자극해 팬으로 하여금 음반을 여러 장 사게 만드는 방식만이 아니다. 자신의 아이돌을 차트 상위권에 올린다는 명목으로 레이블이 팬들의 과다 소비를 자극하는 현 케이팝의 홍보 방식은 팬들의 관심과 애정을 쥐어짜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차트 자체를 왜곡했다. 하이브의 간판인 BTS가 진정성 있는 모습을 잃고 대중적인 음악으로 선회했던 모습 또한 긍정적으로만 보기 어려운 부분이다. 민희진의 기자회견 중에 화두로 삼아야 할 발언이다.
하지만 민희진의 주장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다. 민희진이 주장한대로 회사 내의 다른 아이돌이 뉴진스를 모방했다고 단언하기는 곤란하다. 레퍼런스 없는 창작은 불가능하다. 지금처럼 다양한 작품/상품이 쏟아지는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뉴진스가 어떠한 참고나 모방도 하지 않은 백퍼센트 새로운 캐릭터/서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는 뉴진스 팬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민희진이 기자회견에서 아이돌 오디션에 참여한 이들을 폄하하고, 뉴진스를 내 새끼라고 부르는 모습 또한 사려 깊은 기획자의 태도로는 보기 어렵다. 이 발언에서 그가 비난한 '개저씨'의 모습이 민희진에게 투영됐을 뿐 아니라 왜곡된 가족주의의 그림자까지 스쳐 보인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순수하고 열정적인 예술가의 태도를 가진 이라고 아무렇게나 말해도 되는 게 아니다. 이런 자의적이고 편파적인 태도 역시 케이팝의 건강한 성장을 가로막는 원인 중 하나다.
이번 분쟁을 지켜보는 이들의 반응까지 함께 살펴봐야 하는 이유도 동일하다. 누군가의 업적/정체성/역할이 그의 정당성을 자동 보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시시비비를 정확하게 가리지 않고 일방적으로 편을 드는 대중의 분위기가 감지된다. 우리 사회에 팽배한 진영논리나 능력주의는 이번 분쟁에서도 숨겨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불구경하듯 열광하고 편을 갈라 조롱하는 태도는 전혀 건강하지 않다. 이번 분쟁이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만들지 않는 이는 하이브나 어도어만이 아니다. 르상티망으로 가득한 것처럼 보이는 지금 우리 사회의 대중심리 또한 건강하지 않다.
이번 분쟁을 지켜보며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케이팝 제작 시스템을 손보아야 할 때라는 위기감이다. 그렇지 않으면 케이팝 공멸의 시작이 될지 모른다. 무엇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게 먼저이고, 모두가 편가르기/구경꾼 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번 충돌을 변화의 갈림길로 만드는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달려있다. 이 당연한 사실을 인정해야 문제가 풀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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