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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지난 지금 유가족들은 다시 난민이 되었다"

[세월호 기억과 기록] ④ 김익한 명지대 명예교수

다시 4월, 그리고 16일이다. 누군가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10년이었다. 길다면 긴 세월이지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기억으로 자리잡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 그리고 세월호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이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반면, "세월호, 그만하라"며 할만큼 했다는 목소리도 여전히 흘러나온다. 왜 아이들의 죽음을 매번 끄집어내느냐며, 잊고 살자고 한다. 그것이 유가족들에게 가능한 일일지는 의문이다.

세월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망각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과거의 일들을 잊는 것과 동시에 그 '일들'이 발생한 이유나 원인마저도 지워버린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프레시안>에서 '기억'과 '기록'이라는 주제로 인터뷰를 준비한 이유다. 지난 10년 동안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그리고 '기록'하기 위해 노력해온 이들을 만났다.

세월호 참사 추모의 핵심 키워드는 '기억'이다. 참사 희생자들이 가장 많이 살았던 경기도 안산에서는 매년 4월 16일 '기억식'이 열리며, 추모 시설에도 '기억저장소', '기억교실', '기억전시관'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유가족의 눈물이 한창일 때부터 희생자에 대한 기억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아카이빙(archiving)에 애쓴 인물이 있다. 국내 1호 기록학자인 김익한 명지대 명예교수다.

김 교수는 참사 발생 한 달 뒤 찾은 진도 팽목항에서의 경험 이후 세월호 참사를 자신의 일상으로 받아들였다. 서울과 팽목항을 오가며 유가족의 슬픔을 같은 부모의 입장에서 공유했고, 안산에서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시민 네트워크'를 만들어 공동체 중심지 역할을 했다.

자연스럽게 세월호 참사는, 4.16은 김 교수의 일상이 됐다. 김 교수의 집 현관에는 단원고 2학년 9반 오경미 학생의 어머니가 딸에게 쓴 편지 캘리그래피가 성모상과 함께 나란히 놓여 있다. 유가족들이 연 장터에서 빼앗아(?) 온 뒤로 몇 번의 이사가 있었지만 경미는 늘 성모상 옆에 있다.

김 교수는 또 매년 4월 16일이면 아이들에게 편지를 쓴다. 그저 그런 푸념만 늘어놓을 때도 자기반성이 담길 때도 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더해 가는 망각 앞에 기억을 위한 기록만큼 강력한 힘을 가진 것은 없기 때문이다.

김 교수와의 인터뷰는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5일 서울 마포구 문화제작소 '가능성들'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 김익한 명지대 명예교수(문화제작소 '가능성들' 대표이사) ⓒ프레시안(이명선)

"세월호 잊었다고, 자책도 부끄러워도 하지 마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년이 지났다'고 운을 떼며 소회를 묻는 질문에 김 교수는 대뜸 "세월호가 4.16이 망각되는 것(잊히는 것)은 자연 발생적인 현상이다. 참사 10주기라고 해서 '1, 2, 3주기 때보다 세월호를 너무 많이 잊고 있다'고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세월호가 우리 기억 속에 이성적으로는 살아남아 있어도 감정과 일상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사회의, 국가의 잘못이다. '애도의 의례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희생자에 대한 기억, 즉 애도(哀悼)는 추상적인 단어로만 있을 뿐 실제적인 애도 행위로 이어지지 않는다.

지난 10년간 세 번의 정권이 바뀌었지만, 그 어떤 정권도 세월호를 온전히 기억하려고 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은 말할 것도 없고, 문재인 정권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 기회를 스스로 놓아버렸다. 4.16생명안전공원만 해도 10년 가까이 방치되고 있지 않나. 윤석열 정권은 10.29 이태원 참사에서도 봤듯이 기본적인 애도조차 할 줄 모른다."

"그 결과 10년이 지난 지금 유가족들은 다시 난민이 되었다. 개인적 상실의 고통뿐 아니라 사회적 상실의 고통을 갖고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 이는 심각한 문제"라고, 김 교수는 비판했다.

김 교수는 "그럼에도 유가족들이 10년이란 세월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프랑스 현대 철학자 질 들뢰즈식의 '비커밍'(becoming, ~되기, 생성)이 이뤄졌기 때문"이라며 4.16합창단과 4.16기억저장소를 예로 들었다.

"합창단 실력이 무지하게 늘었다. 단순히 노래 실력이 늘었다가 아니라 한 명 한 명의 목소리를 하나의 목소리, 큰 목소리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다. 이들에게 진상규명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목표이며, 합창은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애도 행위다.

기억저장소 소장인 도언이 엄마 이지성 씨도 처음에는 아카이브가 뭔지 몰랐다. 그런데 이제는 매년 초가 되면 자금 동원과 전시 실행 등을 기획하며 기억저장소를 운영하고 있다. 미래 세대를 위한 기록과 보존이라는 애도 행위를 비커밍한 것이다."

4.16합창단은 이번 10주기 기억식에서 전국 각지의 시민 4160명과 대합창을 했다. 일반 시민들뿐 아니라 '이소선합창단'(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이자 노동운동의 대모인 故 이소선 여사의 뜻을 잇는 합창단), '인천 5.3합창단'(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5.3 인천민중항쟁'의 민주시민 정신을 계승한 합창단) '광주 1987합창단'(1980년 5월 광주, '오월정신'을 기리는 합창단) 등의 참여를 이끌며 두 번째 앨범 <너의 별에 닿을 때까지 노래할게>를 발표했다.

4.16기억저장소는 유가족과 시민이 함께 만드는 기억공동체로, 기억교실과 기억전시관을 운영하고 있다. 기억교실은 단원고 2학년 교실과 교무실을 공간 기록으로 보존한 곳이다. 기억교실 외부인 복도와 계단 형태까지도 단원고 모습 그대로 재현했다. 이에 2021년 12월 국가지정기록물로 지정됐으며, 매년 3만여 명의 시민들이 찾는다.

기억교실은 현재 유네스코 세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 등재를 준비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면 유네스코가 해당 기록물을 당사국이 보호하는지 직접 검토‧관리한다. 또 국제기구 보호를 통해 참사의 고통과 아픔을 전 세계에 공유하게 된다.

김 교수는 지난 14일 기억교실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에서 "4.16 기억교실의 특별한 점은 참사의 주체(희생자와 유가족)가 기록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라며 "세월호 참사는 10년이 지났어도 지금 사회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파악해 우리 사회에 변화를 줄 수 있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하루 앞둔 4월 15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 4.16기억교실을 찾은 추모객들이 외부에 설치된 참사 희생 학생들 캐리커처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매년 4월 16일, 아이들을 생각하며 일기를 쓰자"

기억저장소에서는 3년 전부터 '4월 16일' 일기를 수집하고 있다. 4월 16일의 일과 그날 만난 사람, 스쳐간 생각 등을 직접 쓰거나 음성으로 녹음하거나 이미지로 찍어서 기억저장소(416archives@gmail.com)로 보내면 된다.

김 교수 또한 매년 4월 16일 일기를 쓴다. 그는 "일기라는 기록 행위를 통한 자기화는 '애도 의례화'의 가장 쉬운 방식 중 하나"라며 "참사 10주기를 계기로 전 국민이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매년 4월 16일 아이들을 생각하며 일기를 쓰자. 일기가 어려우면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도 된다. 그냥 4월 16일 하루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나열하기만 해도 된다. 그렇게 4.16을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참사의 교훈을 나의 일상에서 기억하는, 하나의 애도 행위가 된다.

학교에서도 세월호 참사, 4.16과 관련한 글 쓰기를 했으면 좋겠다. 수업 시간에 안전교육을 하고, 안전사회를 위한 법을 제정하는 것 외에도 글 쓰기와 같은 자기화가 있어야 참사와 재난에 대한 경각심이 생긴다."

▲ 김익한 명지대 명예교수의 '4월 16일' 일기. 김 교수의 일기는 인터뷰 사흘 후인 지난 17일 건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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